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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Oct 14. 2017

그들이 기억하는 히스 레저
내가 모르는 히스 레저

[브런치무비패스] 아이 앰 히스 레저 & I Am Heath Ledger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출처 = 아이 앰 히스 레저


감독 : 아드리안 부이텐후이스, 데릭 머레이 

제작 : 존 바비잔 

배급 : 오드 

배우 : 히스 레저, 나오미 왓츠, 이안, 벤 하퍼, 벤 멘델슨, 디몬 하운스, 에밀 허쉬, 캐서린 하드윅, 에드워드 래크먼


아이 앰 히스 레저 영화정보 




그들이 기억하는 히스 레저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슬펐다. 슬픈 느낌이 아니라 진심으로 슬펐다. 나는 히스 레저의 팬도 아니다. 그를 인상 깊게 본 사람 중의 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의 모든 작품을 다 보았던 것도 아니고 그를 잘 알지도 못한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의 죽음을 두고 많은 이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냈을 때도,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없으나 더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아이 앰 히스 레저 시사회에 다녀왔다. 영화관 곳곳에 히스 레저의 얼굴이 붙어 있었고, 스크린 속에서 히스 레저가 말을 걸고 있었다. 마치 그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히스 레저가 말을 걸었다. 


"안녕, 우리는 이제부터 여행을 떠날 거야. 나랑 같이 갈래?" 


출처 = 아이 앰 히스 레저


그의 앳된 얼굴 속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고, 호기심이 있었고, 웃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간 얼굴을 보는 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그는 죽었다. 그렇다.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있는 사실. 히즈 레저는 이미 죽었다. 스크린에 등장하는 저 사내만 그걸 모르는 듯싶었다. 영화가 시작됐고, 내가 모르는 그의 어린 시절이 나왔고,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차례차례 스크린 앞에 나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기억하는 히스 레저가, 내가 모르는 히스 레저가, 그들이 사랑하는 히스 레저가, 내가 보았던 히스 레저가, 그들이 슬퍼하는 히스 레저가, 히스 레저가 이야기하는 히스 레저가 그곳에 있었다.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수준급의 체스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매 순간을 기록했다. 그림도 잘 그렸고, 음악 또한 좋아했다. 나중에는 레이블 회사까지 차릴 정도로 음악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음악 하는 친구들을 키우는 일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의 집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모두가 편하게 와서 쉬었고, 파티가 열리는 날이 많았다. 배역에 대한 몰입도가 대단했고, 늘 새로운 역할을 맡아 도전하기를 좋아했다. 잠이 거의 없었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시간을 가리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아이디어를 들어달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째서인지 자신이 일찍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할 일은 많은 데 남은 인생은 별로 없는 거 같아."

"죽음이 다가오고 있어." 


그는 점점 더 잠들지 못했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수면제를 먹어도 잘 들지 않았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을 촬영하던 중이었고, 그즈음 날씨가 좋지 않아 많은 스텝들이 독감으로 고생했다. 히스 레저 역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히스 레저는 그날도 수면제를 먹었다. 다만, 그 날은 같이 먹으면 안 되는 약도 섞여 있었다. 2008년 1월 22일. 히스 레저가 사망했고, 그의 죽음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잘 나가는 배우들에게 늘 붙는 마약설이 가장 유력했으며, 다크 나이트의 조커 역할을 맡으면서 우울증이 심해졌다는 이야기도 돌았고, 사실은 그가 게이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물론, 그 소문은 그가 출연했던 브로크백 마운틴 때문이었다. 


"그는 삶을 사랑했고, 쾌활했고, 언제나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지인들은 그런 소문이 얼마나 그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는지 이야기했다. 나는 한 번도 유명한 사람의 누구, 혹은 유명한 누구로 살아본 적이 없어 잘 몰랐다. 하지만 히스 레저의 부모님이 이야기하는 그때의 상황을 들었을 때, 우리는 너무 쉽게 타인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히스 레저는 대단한 배우였다. 전 세계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죽음은 온전히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너무나도 공적인 영역이었다. 세계인들과 죽음을 공유해야 됐다는 히스 레저의 아버지의 말이 묵직하게 들려왔다. 자기들 생각대로 이야기를 만든다는 이야기 또한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죽음조차도 '이야깃거리'가 되어 버리는 현실을 그들은 얼마나 오랜 시간 받아들이고 걸러냈을까. 그가 죽은 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한 듯 보였다. 




내가 기억하는 히스 레저가 


내가 히스 레저를 기억하게 된 건 바로 브로크백 마운틴 때문이었다. 그 영화를 누구와 언제 보러 갔는지도 정확히 기억한다. 가장 친한 친구 두 명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그때는 정말 돈이 없었고, 영화를 보고 나면 집에 걸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영화관에서 집까지 걸어가려면 걸어서 1시간을 가야 했는데, 우리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영화를 보자고 결정했고 영화관에 들어가 수중에 남아있는 돈을 탈탈 털어 영화를 봤다. 그게 바로 브로크백 마운틴이었다. 영화 소재가 파격적이었던 건 물론이고, 영화 자체도 너무 좋았다. 하지만 내가 눈여겨보았던 건 바로 히스 레저였다. 저 사람은 진짜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연기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그렇게 온몸으로 고통을 연기하는 사람을 나는 처음 보았다. 영화를 보고 우리는 집에 걸어갔다. 영화 이야기를 했고, 걸어가면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고, 집에 언제 도착하냐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출처 = 아이 앰 히스 레저


출처 = 아이 앰 히스 레저


그 뒤로 히스 레저의 이름은 몇 번이나 화제가 되었다.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당연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 역할을 맡으면서부터였고, 그다음으로 화제가 된 것은 바로 그의 죽음이었다. 나는 그저 그를 한 명의 배우로 인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와 그의 연결고리는 영화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작품을 통해서 그를 봤고, 작품을 통해서 그를 평가했다. 대체로 연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이 앰 히스 레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 명의 배우가 아니라, 한 명의 사람이었다. 나는 왜 그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을까. 마치 스크린에 등장하는 다른 세계에 사는 한 존재로만 생각했다. 나는 그를 너무 늦게 알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내가 그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28.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어리다. 이미 너무나 큰 배우였기에, 그렇게 어린 나이에 죽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들이 슬퍼하는 히스 레저가

히스 레저가 이야기하는 히스 레저가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한 것 중에 하나는, 히스 레저를 통해 아주 많은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데뷔한 사람도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사람도 있었고,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의 삶을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히스 레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어주는 사람. 


출처 = 아이 앰 히스 레저


출처 = 아이 앰 히스 레저



"인생을 설계한다고 했을 때, 무너지는 건 설계에 없거든요."


그는 미쉘을 만나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삶도 살았다. 하지만 그를 가장 완벽한 행복으로 이끌어주던 아버지로서의 삶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미쉘과 헤어지고 그는 많이 무너졌다. 하지만 그 고통까지도 연기했고, 그는 계속해서 배우의 삶을 살았다. 우리의 인생에 무너지는 건 설계에 없다는 말이 내 머리를 쳤다. 그렇다. 누가 인생에서 고통스러운 순간을, 무너지는 순간을 계획한단 말인가. 우리는 늘 앞으로, 멀리, 높이 나아가는 것만 그린다. 히스 레저의 인생계획에도 그런 순간들만 존재하지 않았을까. 배우로서의 삶, 감독으로서의 삶, 남편으로서의 삶, 아버지로서의 삶, 친구로서의 삶, 아들로서의 삶... 그 어느 곳에도 그는 무너지는 삶을 설계해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그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시작하여 죽음으로 다다른다. 영화를 보며 문득 왜 이 영화가 지금 개봉됐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메모장에 끄적였다. 


'근데 왜 히스 레저 작품이 지금 나왔을까?'


영화는 그의 죽음을 떠올리며 슬퍼하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이야기를 담으며 끝이 난다. 스크린에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얼마 뒤, 히스 레저가 인터뷰하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만약 누군가 당신의 영화를 만든다면 어떨 거 같냐는 질문. 그러니까 지금 당장이 아니라, 한 10년 후 즈음? 그러자 히스 레저가 답한다. 글쎄요, 지루할 거 같은데요. 히스 레저가 사망한 지 10년이 다가오고 있다.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그는 또 얼마나 많은 궤적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었을까. 이뤄질 수 없는 가정만 안타깝게 반복된다. 만약에... 만약에...라는 말들만이 머릿속에 맴돈다. 그가 떠난 이후에야 그를 알게 되었다. 그가 떠난 이후에야 그를 보게 되었다. 조금 더 일찍 그를 더 알았다면, 한 명의 배우가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 그를 알았다면 어땠을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스크린을 응시하다 묵직한 마음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 해당 리뷰는 브런치무비패스를 통한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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