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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Dec 19. 2017

지금의 대한민국을 담은 영화
강철비

[브런치무비패스] 강철비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출처 = 강철비



감독 : 양우석 

각본 : 양우석, 정하용 

제작 : 와이웍스엔터테인먼트

배급 : (주)NEW

배우 : 정우성, 곽도원, 김갑수, 김의성, 이경영, 조우진, 정원종, 장현성, 김명곤, 박은혜, 박선영, 안미나, 원진아, 이재용, 이윤건, 김형종, 김지호 


강철비 영화정보 




폭력의 일상화



"밖에서는 이렇게 난리인데 커피 한 잔의 여유라... 우리나라 대단하죠?"

"폭력이 일상화된다는 건 무서운 거예요." 


내 방 창문에서는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가 보인다. 똑같은 크기의 창문을 가진 집들이 차곡차곡 줄지어 서있고, 저녁이 되면 하나 둘 불이 켜진다. 불이 켜질 때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보이기도 하는데, 멀리서 보면 참 평화로워 보인다. 그 평화로움이 내게도 전해져, 나의 평화로움이 그들에게도 전해질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한 때는 시도 때도 없이 뉴스를 보며 살았다. 세상이 어수선했고, 특히 대한민국은 혼란스러운 나날이었다. 그 혼란의 끝이 어디로 흐를지 많이 걱정되었고, 가짜 뉴스에 현혹되는 일도 많았다.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졌고,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단해주겠다고 나서는 뉴스도 나타났다. SNS를 통해서 세계의 소식을 듣는다. 멕시코에는 지진이 나고, 미국에는 큰 불이 나고, 어딘가에서는 테러가, 전쟁이 일어난다. 그들에 비하면 나의 일상은 지극히 평범해 보인다. 때로는 이런 평화로움을 누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새 그런 기분이 넘치고 넘치다 보면, 모든 사건사고들로부터 무감각해진다. 당장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닌 이상, 나와는 먼 이야기가 되고, 설사 그 일이 내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무능력해지기도 한다. 


출처 = 강철비
출처 = 강철비


강철비에 나오는 많은 대사들 중에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대사가 있었다. 폭력의 일상화. 스크린 속에서의 남한은 계엄령이 떨어지고, 당장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진다. 영화가 시작되고나서부터 주인공들의 주변에는 점점 더 그런 조짐들이 고조화되더니 결국은 전쟁이 코 앞에 닥친 상황까지 오고야 만다. 누군가는 전쟁을 원하고, 누군가는 전쟁을 막기를 원하고, 누군가는 그 사이에서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기를 원하는 상황.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발로 뛰고 온몸을 바쳐서 뛰는 사람들은 사실 많지 않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으며, 자신들이 누려온 평화로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정부를 믿기 때문에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일까? 아니.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고, 막을 수 없고, 어떤 변화가 앞으로 닥칠지 예측할 수 없기에 아주 많은 것들로부터 무감각해졌다고 생각한다. 그 무감각이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이는 것이 아닐까.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들



"분단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에 의하여 더 고통받는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남한과 북한은 하나였던 적이 없었다. 다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헤어진 가족들을 찾는 프로그램이 많았고, 이산가족 상봉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뉴스에서 들렸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역시 전쟁통에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게 되었지만, 우리 집은 헤어진 가족을 찾아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북에서 피난 올 때 가지고 온 땅문서만이 유일하게 북한과 연결고리 역할을 할 뿐이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우리 세대는 그리고 나보다 더 어린 세대들은 전쟁을 경험해본 적이 없고, 전쟁으로 인해 가족들이 헤어지는 경험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남한과 북한은 분단국 가이지만, 분단을 경험한 적 없는 나로서는 그저 텍스트로서만 분단국가가 존재할 뿐, 체감상으로는 확실히 분단국가라는 현실이 다가오지 않는다. 다만,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북한이 없었다면 저들은 어떤 핑계를 대며 정치생활을 이어갈까 그저 그것이 의문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북한에 있다는 그들의 발상은, 새삼 그들이 무능력하게 보인다. 


출처 = 강철비
출처 = 강철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엄철우는 정치적 희생양이다. 임무만 마치면 공화국을 지킨 영웅으로 대접하겠다는 리태한의 제안은 처음부터 거짓이었고, 그 말을 믿고 온몸을 바쳐 북한 1호를 지켰던 엄철우는 결국 리태한에 의해 제거될 운명에 놓이고 만다. 


출처 = 강철비


처음부터 끝까지 누구보다 더 열심히 스크린 속에서 뛰어다녔던 곽철우는 엄철우가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님을 그가 가진 생각과 지식을 바탕으로 엄철우를 설득하고, 상황을 이해시킨다. 물론, 그 역시 자신이 믿고 있던 정보통이 그래서 더 많은 밀담을 나누었던 사람들이 사실은 자신의 이야기를 여기저기 전달하고 있었음을 목격하면서 자신이 미처 몰랐던 현실을 깨닫게 된다. 국가는 국가 하나로써 존재하지 않으며, 수많은 이익들이 연결되어 움직인다는 것을 곽철우가 만나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출처 = 강철비


현 대통령 이의성은 임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불어닥친 북한의 도발을 자신의 마지막 과업으로 생각하면서도, 차기 대통령 김경영에게 휘두를 권력으로도 생각한다. 이의성과 김경영의 논쟁은, 정말 중요한 순간에 한 나라의 대통령이 누구인지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강철비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그렸다 


만약에 지금 대한민국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강철비는 지극히 현재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분단의 상황을 놓치지 않고 이용할 것이고, 주변국들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일 것이며, 누군가는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고, 누군가는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모두가 원하는 결말이 다를 것이고, 조금 더 빠르게 판단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만이 그 변화의 새로운 인물이 될 것이다. 


출처 = 강철비


마지막으로 나는 왜 두 주인공의 이름이 같을지 생각해보았다. 엄철우와 곽철우. 공통점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남한과 북한에서,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공통점은 이름밖에 없었을 것이다.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것만이, 우리가 아주 오래전 하나로 합쳐져 있던 나라였다는 걸 상기시켜줄 것이다. 사는 것도, 먹는 것도, 보는 것도 다르지만 어쩌면 우리는 같은 이름을 가진 것만으로도 우리가 그 언젠가는 통일된 나라에서 만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할지도 모르겠다. 



** 해당 리뷰는 브런치무비패스를 통한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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