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의 책임일까?
누군가는 책임이 있을 것 같은데, 가만히 보고 있자니 누구의 탓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모두의 탓 같기도 한 이상한 모양의 세상이다. 이 사람 말도 맞는 것 같고, 저 사람 말도 맞는 것 같은, 그러니까 '말'은 많은데 진짜 '말'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의미 없는 소리만 많은 것은 아닌지... 쏟아져 나오는 말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사는 세상은 언어 위에서 만들어진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언어로 만들어진 세상에서는 나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금방 휩쓸려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도 잃게 된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지에 대해서 판단하기 어려워지는 순간, 언어의 파도는 기다렸다는 듯이 개개인의 생각과 정체성마저 삼켜 버린다.
예전에는 비교적 남 탓하기가 쉬웠다. 내 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남 탓을 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다못해 조상 탓까지 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사실 요즘은 내 탓을 하기도 남 탓을 하기도 정말 어려운 세상이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특히나 그렇다. 취업 안 되는 게 내 탓 인 줄 알고 부지런히 공부하고 스펙을 쌓았는데, 결국 취업이 안 되는 현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내 탓이 아니라, 정부가 잘못해서 그렇다는 거다. 경제 활성화시키는 것도 실패했고, 일자리 창출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까, 정부 탓이라는 거다.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에 나온 동철의 대사는 한동안 온라인에서 사람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어냈다. 한국의 백수들에게 네 탓 아니니까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고 이야기한다.
요새 취직 하기도 힘들다던데 불황 아니냐 불황. 우리나라 백수 애들 착해요. 테레비에서 보니까 프랑스 백수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다 때려 부수고 개지랄을 떨던데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다 지탓인 줄 알아요. 지가 못나서 그런 줄 알고.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다 정부가 잘못해서 그러는 건데. 야, 넌 너 욕하고 그러지 마, 취직 안 된다고. 당당하게 살어. 힘내 씨발.
- 내 깡패 같은 애인
예전에는 남 탓으로 돌려버리면 마음이라도 편했는데, 지금은 남 탓으로 돌려도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내 탓을 하기에도, 남 탓을 하기에도 바뀌지 않은 현실 앞에서 고군분투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나'인 것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 같은 명확하지 않은 프레임 속에서, 모순되는 말들이 사실 우리 주변에는 많이 흘러나온다.
이번 명절에는 부쩍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취업을 해도 못해도, 마음 불편하고 몸 힘든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취업을 한 사촌동생은 명절 때 쉬지도 못하고, 근무를 하느라 시골에 내려오지 못했고, 취업을 하지 못한 사촌오빠는 이력서를 내고 늦은 저녁에 시골에 내려왔지만, 가족들의 이런저런 물음에 시달리느라 힘들어했다. 눈을 조금 낮춰서 지원해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봐라, 공장에라도 들어가라, 일을 얼른 구해야 할 텐데 어떡하냐 등등의 이야기는 끝이 날 줄 몰랐다. 올해 졸업을 하고 취업전선에 나갈, 내 동생은 벌써부터 고민이 많다. 어떤 이는 인문계를 선택한 덕분에 취업이 안 되는 것에 대해서 후회하고, 또 다른 이는 기술직을 택했지만 예정되어있는 고된 근무환경이 걱정이다.
정년퇴임을 해야 하는 나이에 들어선 아버지들의 이야기도, 이삼십 대의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대기업에 다니는 아버지 친구분들 중에는 버스기사나 택시기사로 전향하신 분들이 많았고, 중소기업에 다녔던 친구분들은 퇴직금도 얼마 되지 않아 노후가 걱정이라는 것이다. 부부가 선생님을 하면 그나마 연금 덕분에 걱정이 없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선생님이 될 수도, 선생님하고 결혼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젊은 시절부터 막노동을 하셨던 큰아버지는 그나마 기술을 배운 덕분에, 오히려 지금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일할 수 있다는 것에 좋아하셨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지금 와서 보니 이만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 이력서를 내려고 봐도, 신입사원을 뽑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신입사원이 아니라 신입 경력사원을 뽑는다. 그게 다 내 탓인 것 같아서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따고 다시 준비해서 이력서를 냈는데, 그 사이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어 버렸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러 갔더니 이 나이가 먹도록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만 쏟아진다. 그 소리를 듣다 보니, 아무래도 너무 억울하다. 이건 내 탓이 아니다. 매년 빼먹지도 않고 이력서 내고, 면접 보러 다녔지만 취직이 안 됐던 그 모든 과정을 면접관 앞에서 주절주절 이야기할 시간조차 없다. 할 말도 없이 고개를 떨구다 나오면, 다음 면접관이 똑같은 질문으로 나를 대한다. 시위를 하러 광장으로 나가자니, 이력서 넣을 시간도 부족하다. 공무원 시험 준비는 끝도 없고, 사람들은 계속 몰린다. 시험에 합격해도, 신호에 걸린 자동차처럼 일단 대기해야 한다.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오르막길 위에서 일단 대기 중이다.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렇게 비탈길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춰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인문계를 선택한 것이 잘못일까? 그러면 왜 그때는 인문계 들어가는 나를 아무도 말리지 않았을까? 중소기업에 이력서를 내가 내지 않았나? 중소기업은 신입사원이 들어가기 더욱 힘들다. 당장 들어와서 회사 일을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들어가면 모두가 행복한가? 삼십 대에 정년퇴직을 시키면, 그럼 나머지 인생은 또 어디 가서 시작해야 하나. 그럼 모든 사람들이 공장에 들어가서 생산직을 하는 것이 옳은가? 어느 정치인의 말처럼 개발도상국에 가서 한 달 살 다 오면 조금 달라지나? 끝도 없는 질문들이 쏟아진다.
언어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나는 나만의 정의를 세우기로 했다. 나의 생각을 정립하는 것이다. 내 탓은, 내가 해야 될 몫을 하지 않았을 때 해야 되는 것이고, 내가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남 탓을 하자고 정리했다. 언제나 내 탓만 하면서 고개 숙이고 다닐 수는 없다.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과 남이 해야 되는 역할을 구분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한다. 언어 위에 지어진 세상에서는 나의 역할과 남의 역할이 쉽게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된 프레임과 선전문구로 현수막이 난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내 탓을 해야 할 때 남 탓을 하기 쉽고, 남 탓을 해야 할 때 내 탓을 하기 쉽다.
나는 폴 발레리의 말처럼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기 위하여, 조금 더 생각하면서 살아가기로 했다. 내 생각이 맞는 지도 물어가며, 남의 생각은 어떤 지도 들어가며, 그렇게 남 탓도 해가며 살아가기로 했다.
용기를 내어서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폴 발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