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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Feb 13. 2016

타인을 위한 기도

- 언젠가 나를 위한 기도 




구급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구급차가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을 제안한다. 마찬가지로 소방차 소리가 우리의 평온을 깨뜨릴 때마다, 우리는 소방차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나 집을 구할 수 있게 빨리 현장에 도착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경찰들이 시간에 맞춰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해야 한다. - 랍비 조셉 텔루슈킨,『죽기 전에 한 번은 유대인을 만나라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손을 붙잡고 성당에 다녔던 경험 때문에, 나에게 기도라는 것은 의무에 가까웠다. 나에게 기도라는 행위는 때로는 너무 귀찮고 번거로운 일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기도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언제나 기도 하셨다. 할머니는 언제나 많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바람 잘 날 없었던 가족들은 언제나 할머니의 기도 대상이었다. 기도하던 할머니가 떠난 자리에, 수녀님이 된 고모는 할머니를 대신하듯 기도하고 있다. 나는 이따금 성당에 나가기도 하지만, 할머니처럼 성실하지는 못하다. 하지만, 그런 내가 벌써 몇 년 전부터 해오던 기도가 있다. 


몇 년 전, 지인의 추천으로 읽은 책 한  권으로부터 나의 기도는 시작되었다. 나의 기도는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시작된다. 나는 아주 잠깐이라도 하던 일을 멈추고, 타인을 위해 기도한다. 한 번도 본 적 없고, 마주한 적 없는 그들을 위해서.   


모두 무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구급차 사이렌 소리에 불편한 기색을 냈던 시절이 있었다. 그저 시끄러운 소리로만 치부하고 만 것이다. 그 소리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소리라는 것을 나는 잊고 살았었다. 나는 비교적 운이 좋았기 때문에, 살면서 직접적으로 재난현장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도 몰랐다. 나는 중요한 것을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처럼, 그렇게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런 내가, 직접적으로 위험에 닥쳐서 잊고 살았던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된 건 아니었다. 책에서 소개된 사례가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새벽, 그녀는 지나가는 소방차의 사이렌 때문에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고 한다. 24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는 당시 자신의 반응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잠을 망친 소방차의 소음에 불평과 짜증을 내보인 것이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그녀는 한 동네에 사는 가장 친한 친구가 전날 밤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 랍비 조셉 텔루슈킨,『죽기 전에 한 번은 유대인을 만나라』


 우리는 사이렌 소리를 듣기만 할 뿐,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가 없다. 저 사이렌 소리가 누군가에게 닥칠 마지막 순간과 누군가의 내일을 지켜주기 위하여 내지르는 거친 숨소리라는 것을 안다면, 나의 어리석은 어린 시절처럼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켜주고자 하는 그 누군가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러지 못할 것이다. 


나는 대단한 것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아니다. 성당에 가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기도를 하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나의 기도는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시작되고 사라지면 끝난다. 모두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타인을 위해 기도한다.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나에게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해준다면 좋겠다고 말이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지만, 나의 안전을 위해, 나의 내일을 위해,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면 좋겠다고 말이다. 짧지만, 아주 잠깐 나를 위해 가던 길을 멈추고 기도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많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살아계시는 동안 아주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고, 가족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고,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다. 할머니의 기도는 나의 기도와 다르게 잔잔한 호수처럼 깊었다.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때 즈음에 나는 할머니 곁에서 잠이 들었다. 할머니의 기도 소리가 그리울 때, 나는 성당에 간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할머니를 위해서 기도한다. 


누군가를 위해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때, 우리는 기도를 한다. 지금 나의 기도는 타인을 위한 것이지만, 나는 언젠가 그 기도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를 위한 것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모두 무사하게 해달라는 나의 기도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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