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자주, 생각보다 아주 많이, 하지만 아주 담담하게 죽음을 생각한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죽음'을 생각하게 된 건. 사실 살아있으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건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대부분 유한한 삶을 무한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평균수명만큼은 보장되어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실상 우리 주변에 많은 죽음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5년 후, 10년 후, 하다못해 할머니가 되어서 해야 될 일까지 꼼꼼히 계획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보다 한참 어릴 때 이야기다. 나에게 죽음은 먼 이야기였다. 보장된 미래가 있었다. 그것이 핑크빛이 아닐지라도, 충분히 핑크빛으로 바꿀 수 있을 만큼 내겐 충분히 주어진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작은 고모부가 돌아가시면서 나에게는 죽음이 너무나 가까워졌다.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의 표정과 울음과 슬픔을 오롯이 봐야 했다. 누군가의 슬픔이 가라앉지 못하고 숨 쉬는 것처럼 함께하는 장면들을 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 죽음이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한동안 할머니 꿈을 참 많이도 꿨었다. 어느 날의 할머니는 내가 알던 할머니의 모습이었고, 어느 날의 할머니는 내가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울다가 일어나는 일도 있었고, 가슴이 먹먹해져 한동안 어둠 속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일도 있었다. 뚜렷하게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아마도 나는 그 슬픔의 언저리에서부터 죽음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시작한 것이다.
오늘도 퇴근길 나는 나의 죽음을 생각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나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회사를 다니다가 퇴사를 하더라도 회사가 망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나의 위치는 나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이 변할 만큼 역사적인 순간에 있지 않다. 다만, 지금 관여하고 있는 일이 워낙 많기 때문에, 그리고 관여하고 있는 모든 일에서 나의 역할이 아주 조금 중요하기 때문에, 만약 내가 지금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갑자기 죽어버린다면, 그렇다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민폐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머물자 아주 조금 욕심이 났다. 삶에 대한 욕심 말이다. 무한한 삶을 꿈꾸지 않지만, 가능하다면 내가 지금 관여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은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싶다. 그래야 나와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힘들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가족들에게는 어떤 일이 생길까? 만약 내가 오늘 죽는다면 나는 죽기 전에 내가 벌어놓은 돈이 많이 없으니, 내 보험료로 내가 진 빚을 좀 갚아달라 말하고 싶다. 재정적으로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 아주 다행히 보험을 들어놓은 게 있으니 그것으로는 충분히 나의 채무들이 모두 정리가 될 것이다. 지금은 가족들에게 공개하지 않은 나의 재무상태를 나는 죽기 전에 하나하나 말해주며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말해주고 싶다.
혹자는 죽음 앞에서 무슨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에도 부족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우리 집 가정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죽음을 이렇게 자주 생각하게 된 이후로 나는 가족들에게 더 많은 애정표현과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물론 나도 사람이기에 감정적으로 부딪치고 싸우는 건 어쩔 수없지만, 죽기 전에 사랑해라는 한 마디가 아쉽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건, 조금이라도 가족들이 나로 인해 불필요한 짐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유서를 따로 쓰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지금 당장 할 것이다. 그것이 사랑한다는 말이든, 고맙다는 말이든, 나는 지금 할 것이다. 그것을 유서에 남기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는 유서는 남기지 않을 것이다. 유서에 꼭 남겨야만 하는 중요한 이야기도,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나에게는 없다.
죽음을 이렇게 자주 생각하면서 나는 오늘을 살게 되었다. 미래를 꿈꾸기보다 나는 현재를 살며, 과거를 그리워하지도, 미래를 꿈꾸지도 않게 되었다. 오로지 오늘을 산다. 오늘의 내가 죽더라도 괜찮을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산다. 후회 없이 산다는 건 거짓말일 것이다. 어떤 식으로 살든 나는 분명 죽는 순간 후회할 것이다. 인생은 연속적이기에 분명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많은 일들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내가 못다 한 일을 처리하느라 힘들지 않도록.
나는 아주 자주, 생각보다 아주 많이, 하지만 아주 담담하게 죽음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