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오묘한 밤

by 웅사이다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표현하기 어려운 날이 있다. 감정에 대한 질문은 항상 어렵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어렵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다니는데, 사실 그게 나에게 되뇌이는 말이 아닐까 싶다. 깊게 생각하고 행동해서 무엇인가를 이룬 뒤에 내가 뭘 했는지 모르겠을 때가 많다. 겨우 일어나서 아장아장 걷고 난 뒤에 어리둥절하는 아기 같달까.


모를거면 왜 깊게 생각하고 어리둥절해할 거면 왜 행동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행동한 뒤에 따라온 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미지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두렵지만 눈을 뗄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것과 같은 기분일 수도 있다. 어쩌면 마주하고 싶지 않은 무엇인가를 직면했을 때의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맞다. 결국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밑에 깔려있기 때문에 그 위에 어떤 감정이 덧입혀져도 해석이 안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어렸을 때부터 습관처럼 두려웠다. 겁이 많은 성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돌적인 성격은 아니었고 분쟁을 좋아하지 않았다. 고작 화낸다는 게 엄마한테 정도였는데, 엄마한테 내가 화내고 내가 돌아서서 안아줬던 기억이 난다. 마음이 여렸던 것일까. 남자로 살아가는 동안 감정은 많이 무뎌지고 두려움을 내비치지 않는 것을 배워갔다. 사회인이 되어서는 무엇인가를 달성하는 것에만 열중했는데, 그동안에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두려움인지 불안인지 모를 감정을 느낄 때면 참 연약한 인간이 된 것 같아 슬퍼진다. 이걸 슬퍼하는 나 자신도 애처롭다. 사람을 따듯하게 대하고 싶으면서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은 또 싫은 걸까. 어느 상황에서도 불안을 느끼지 않고 평온해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간에게서 멀어지는 것 같다고도 느낀다. 나이가 들고 성장하면 불안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렸을 때만큼이나 지금도 나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건지 나도 정확히 모른다. 모를 때도 있는 것이다. 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전혀 모르게 될 때도 있고 모른다고 생각하고 글을 적었는데 그 끝에 작은 깨달음을 얻을 때도 있다. 지금 어쩌면 나는 내가 어떤지 표현할 말을 찾고 싶어서 글을 적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오늘은 알아내지 못할 것 같다. 뭐 그럼 어때. 괜찮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했을 두려움과의 싸움은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커져가는 것 같다. 살짝 뛰었을 때 바닥에 떨어지면 아프지 않지만 저 멀리 위로 올라갔다가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일까. 애초에 과거에 비해 올라갔다고 생각하는 사고 자체가 두려움을 만든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를까? 더 높고 낮음이 없을지도 모르는데, 나 스스로를 높여가며 두려움이라는 놈을 내가 만들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릴 때에 비해 성장했다고 생각하며 살지만 사실 9살 어린아이가 마음속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몸은 어린데 어른이 되고 싶어서 아빠의 옷을 어색하게 걸친 아이처럼 많은 사람이 어른이라는 옷을 걸치고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지 않나. 우리는 사실 9살 어린이, 거기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내 안에 있는 9살 어린이를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편해진다. 그때의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피아노 치는 것도 좋아했다. 맛있는 거 먹는 것을 좋아했고, 아마도 로봇도 좋아했던 것 같다. 평범하다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하지도 않았고 특별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때 세상을 더 있는 그대로 봤던 것도 같다.


마음이 불안한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상어 조각을 하염없이 바라보지 못한다. 정신이 있는 곳에 몸이 있고 몸이 있는 곳에 정신이 있던 때였다. 지금이라고 그렇지 못할 것은 없다. 그러려면 어쩌면 조금 머리를 덜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멀리 온 것 같은데 거기서 거기인 느낌이다. 하지만 그때도 잘 살아갔듯이 지금도 잘 살아가고 있다. 마음은 편안히 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불안하면 소리 좀 지르고 인간답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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