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꽉 채우려면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by 웅사이다

버릇처럼 꽉 찬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20대에 우연히 알게 된 짐 엘리엇 선교사의 기도문에 영향을 받은 것도 있다. 꽉 찬 삶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짐 엘리엇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기도를 했다.


"저는 오래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주 예수님처럼 꽉 찬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 저를 보내주소서."


오래 사는 것을 원하면 꽉 찬 삶을 살 수 없게 되는 것일까. 차있는 듯 비어있는 듯 정신없이 살다보니 나는 무엇으로 얼마나 차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오래 사는 것을 원치 않는데 그렇다고 꽉 찬 삶을 살고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하긴 어렵다.


꽉 찬 삶이라는 것이 이성적으로 이론적으로 정의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돌아가는 대뇌를 멈추고, 가슴으로 생각해본다. 그러다보니 가슴으로 생각해 본 적이 얼마나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내가 추구하는 것의 첫 번째 단계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머리로 생각하면 온갖 걱정과 불안이 생겨난다. 머리라는 것은 똑똑한 것을 목표로 삼은 듯 모든 것을 예상한다. 하지만, 인간이 아무리 똑똑해봤자 그 머리로 마음을 다스리지는 못한다. 공회전하고 있는 자동차처럼 제자리에서 나아가지 못한다. 제자리에서 오지도 않을 미래를 생각하느라 바쁘다.


무엇이 채워진 삶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리로 생각해서는 삶을 채울 수 없는 것 같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생각하고 인생이라는 계단을 할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삶은 정의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로 채워졌다. 나의 자아라는 그릇의 형태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세상과 사람들을 받아들이면, 이전에는 몰랐던 빛깔이 내 안에 생겨난다.


“그릇”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도자기로 만들어진 조그만 찻잔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삶의 다채로운 빛을 담아낼 수 있는 유리병이 꽉 찬 삶의 이미지일 수도 있겠다. 물을 담아낸다면 담을 수 있는 한계가 명확하다. 하지만 빛을 담는다면 (물리학이 급 떠오르지만 대뇌를 잠재워본다) 담을 수 있는 빛의 양에 한계는 없다.


마음을 열고 보면 세상에는 경이로운 것이 많다. 내 삶의 하루하루에도 놀라움이 있다. 그 놀라움과 경이로움, 청아하게 빛나는 눈동자에 담긴 꿈을 맑게 닦아놓은 유리병으로 담아내고 싶다. 어제보다 오늘 더 밝고 다채로운 빛을 내면에서 볼 수 있다면, 마침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빛을 표현해낸다면 내 인생은 꽉 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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