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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사이다 Jul 10. 2024

백수가 활기찬 하루를 보내는 법

최근 노는 백수가 되니 무엇이 좋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사실 헬스 PT 선생님이 운동 세트 사이에 질문한 거라 제정신에 답변하진 않았다. 은퇴한 사람처럼 살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했던 것 같다. 백수가 되니 시간이 많아졌고 사회에서 나를 증명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은 줄어들었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니! 더 이상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없다니! 마냥 좋을 것 같지만,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시간이 많다는 것은, 나에게 요구되는 것이 없다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준다.


백수가 된다는 결정을 할 때,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회사를 다니면 사회생활을 해야 하고, 사람으로부터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오롯이 내가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하지 않으면, 나는 어떤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생각하게 된다. 만약에 내가 유년기였다면, 이런 상황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전에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탓할 대상이 있었다. 만약 온전히 나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정말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낼 텐데!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시간이 많아져도 삶은 그렇게 쉽게 만족을 주지 않는다. 어느 하루를 게으르게 보냈을 때의 스트레스는 퇴사하기 전보다 퇴사하고 나서가 더 크다.


사회에서의 나의 역할이 없어질 때까지는 이게 그렇게 스트레스받을 일일까 싶었다. 막상 그게 현실이 되고 나니, 나 자신에 대해 더 객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내 스스로 가치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회사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의 존재 가치를 온전히 나 스스로 답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나의 행동이 영향을 끼치는 범위가 단지 나의 삶에 한정되는 것이 삶에 대한 만족감을 떨어트렸다. 나는 무엇을 달성해야 하는 것일까? 달성할 것이 없는 삶은 지속가능한 것일까?


퇴사하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은퇴한 부모님도 나와 같은 고민과 정신적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게 결국 나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 된다. 그 사실이 심리적으로 큰 안정감을 준다. 왜 나 자신을 타인처럼 생각하기가 어려운 것일까? 나 자신을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어떨까? 내가 행복하게 살아가게끔 내가 스스로 도울 수는 없는 것일까?


백수가 되어서 시간이 많은 것은 어떨까? 나는 지각을 잘하는 편인데, 약속까지 남은 시간이 많다고 해서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는다. 얼마의 시간이 남았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그 시간이 되어서야 헐래 벌떡 준비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수십 년의 여유로운 시간이 생겼다고 해보자. 과연 삶이 달라질까? 그렇지 않다. 갓 구운 피자의 치즈처럼 인생이 늘어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백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목표를 만들고 기한을 정하고 삶의 다양한 부분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살아가는 것이다.


퇴사하고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지면서, 몸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여유로운 시간을 대충 늘어지게 보내면, 분명 건강이 안 좋아지게 된다. 인간의 몸은 움직이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매일 성취감을 느끼고, 몸을 바쁘게 움직이게 만들 목표가 필요했다. 나에게 가장 큰 효과를 준 것은 운동과 요리였다. 건강이 안 좋아진 다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아프지 않기 위해 살 수도 있고, 나를 움직이게 만들 동기를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다. 나는 죽지 않기 위해 사는 삶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가치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테슬라 같은 기업을 창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테레사 수녀님 같은 사람들만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매일을 가치 있게 사는 것의 가장 첫 번째 단계는 몸에 집중하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과 몸에 들어가는 음식에 신경 쓰는 것. 그래서 매일 운동을 하고, 매일 3끼를 다 해 먹으니까 잡생각이 다 사라졌다. 하루하루 느끼는 성취감이 정말로 생겨났다. 헬스도 요리도 나에게는 새로운 분야라서, 관심을 가지고 접근을 하니 재밌고 매일 성장하는 재미가 있다. 요리를 하면 몸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고, 운동을 하면 먹는 즐거움이 생겨난다. 그래서 요즘 나의 유튜브 피드는 요리로 뒤덮였다. 그렇게 삶에 대해 열심히 고민했지만, 몸을 계속 움직이는 것만큼 삶에 도움 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뭘 하든 좀 깊이 빠져드는 경향이 있어서 요리에 스트레스 받기는 한다..)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이 주는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많다. 지금 주어진 삶에서 어떤 장점이 있는지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삶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시간이 많을 때는 회사생활을 그리워하고, 회사생활을 할 때는 백수를 부러워한다면, 삶에 만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헬스장에 출근하고, 매일 자기 전에 마켓컬리에서 장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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