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존재는 복합적이다. 내 안에는 (1) 내가 모르는 나 (2) 내가 아는 나 (3) 꾸며낸 나라는 존재가 있다.
만약 내가 아는 나는 적고 1과 3이 상대적으로 너무나 많다면, 나는 나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도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그 어느 순간도 “나”로서 살아있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미래에 또다시 “언젠가는”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삶은 지속적으로 내가 누군지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수많은 기쁨과 슬픔과 고통의 순간들에 꾸며낸 나와 내가 모르는 나를 만나게 된다. 생각보다 용감한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남에게 관심 없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가면 나는 또다시 2번을 잊어버리고 다시 1번과 3번으로 돌아간다.
내가 신경 쓰는 다른 사람들 또한 동일한 상태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사람의 말들이 과연 진짜 그들의 이야기와 생각일까? 나는 지금까지 그 이야기들에 맞춰서 나를 꾸며냈는데 그 이야기들이 모두 가짜라면 어떨까? 언젠가 그걸 깨닫게 되지 않을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맞추려고 노력하고 통념과 상식에 맞춰서 행동하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맞춰 나 자신을 잃어버릴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진짜 나는 누구인가? 그저 매일 알아갈 뿐이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그 존재는 유동적이라고 생각한다. 변한다. 따라서 그저 매일 알아갈 뿐이다. 지금 생각하기에 나는 이런 사람 같다.
- 스스로 생각하기를 추구하는 사람. 남들의 생각에 따라 생각하기보다는 내 머리로 생각해 봤을 때, 정말 그러한지를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의심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단지 남의 생각은 남의 생각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스스로를 초월해서 인격이 확장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 요즘에는 나는 도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과 세상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만들면서 뛰어넘어버리고 싶다.
- 세상을 따듯함이라는 색으로 칠하고 싶은 사람. 나는 20대에 인생의 목표를 따듯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정한 적이 있었다. 소름 끼치게 차가운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서일까? 겉으로 따듯한 것이 아니라 진짜 따듯한 사람이 되고 싶다.
- 현재에 존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미래의 무엇인가 때문에 현재 충분히 의미있는 것을 포기하거나 미루려고 하지 않는다. 이야기할 때도 항상 상대방과의 대화에 존재하려고 노력한다. 정말 어렵지만 정말 보람차다.
한편으로는 내가 어디에 두려움을 느끼는지 또한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주는 것을 두려워한다. 연민과 공감이라는 감정을 많이 느끼기 때문에 내 앞에서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면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
- 과하게 세상의 짐을 짊어지려고 하는데, 나 또한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버릴까봐 두려워서 그렇다. 나는 나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데, 그렇다면 기꺼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이건 어쩌면 폭력적인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써온 결과일 것 같다. 가장 원초적인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지키려고 강한 척하는 것 같다.
- 끝이 있다는 생각에 조급해지곤 하는데, 중간에 멈춰버리면 지금까지 열심히 했던 것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서 그렇다.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을 만드는데에서 스스로 가치를 얻는 것 같아서 아무래도 무가치한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