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도 좋아하고
사소하게 넘어갈 수 있는 포인트를 캐치해서
놀리는 것도 좋아한다.
근데 그만큼 자학개그도 즐긴다.
(긁히는 포인트도 물론 있음)
꾸미기를 좋아하는 20대 여자가 자기를
망가뜨려가며 웃겨도 괜찮은 이유는
나를 그냥 내려두고 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비웃지 못하면 인생이 얼마나 지루하게
ㅡ 영화 가든 스테이트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사이다.
맞다. 자기 자신조차 비웃지 못하는 삶은 너무 딱딱하다.
내가 지켜야 하는 나의 껍데기가 너무 단단하다.
내 추구미는 슬라임이다.
그냥 흐물 하고 물렁하게 흐엥~ 살고 싶다.
그러나 절대 깨지지도 상처 나지도 않는 삶 말이다.
며칠 전에 조승연 작가의 영상을 보다가
한국인은 왜 웃지 못하고 긁힐까?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조만간 그가 나온 영상 중에 보지 못한 영상이 없을 지경이다. 더 열심히 일해주세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특징을 잡아 웃기면
웃기다가 아니라 놀린다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맞긴 하다. 근데 놀리면 좀 어떤가?
그런 거 없이 어디 쉽게 웃어지는 세상인가?
(물론 선을 넘는 무례함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자존감 높은 친구들이랑 놀면 좀 편하다.
서로 놀려도 껄껄 웃을 수가 있다.
자존감의 문제만은 아닌 듯 하지만
너 저번에 술 마시고 이랬잖아~ 로만 놀려도 정색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
그럼 말이지
조절을 해서 마셔라 이 친구야!
웃을 수 없는 자신의 과거는 실수가 아니라 약점이다.
우리는 약점을 다듬으며 한 발짝씩 나아가면 된다.
놀리는 것과는 다른 결이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과의 스몰토크가
한국인이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느껴졌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의심부터 드는 이 세상이 너무 험악하고 안타깝다.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도 신호등 옆에 서있는 사람과
눈을 맞추며 가볍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날이 올까?
지난여름, 친구랑 역삼역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우리 앞에서
딱 넘어지는 아주머니를 맞딱들였다. 위험할 정도로 넘어지신 건 아니었다.
친구랑 나는 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그랬는지,
날씨가 너무 좋아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아주머니께 말을 걸었다.
괜찮으세요? 안 다치셨어요? 조심하세요 -
톤이 전해지지 않아서 그렇지,
매우 젠틀하고 외국인스러웠다.
우리는 역삼동 보안관을 하기로 했다.
그 뒤로도 그 친구랑 있으면 모르는 사람들이랑
스몰토크할 일이 더러 있었다.
내가 스몰토크를 나누고 나면 옆에 있는 친구로부터
항상 듣는 말이 있는데 ‘너는 참 그런 거 잘해’
전혀 연고가 없는 우연히 마주친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뭐랄까,
게임 속 npc가 알고 보니 중요 인물이었다! 이런 느낌.
자신을 너무 꽁꽁 싸매지 않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럴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것이 먼저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