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 대한 기대

by 아스파라거스



나는 멀티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맥북을 켜고 일을 하거나 밥을 먹는 와중에도 꼭 유튜브처럼 소리 나는 무언가를 켜두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가 김영하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 그를 접한 것은 여러 저명한 사람들이 나와 책에 대해, 어떤 주제에 대해,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는데. 그 당시에 나는 김영하 작가가 작가라는 것도 몰랐다. 그저 오디오에 집중해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흘려보낼 뿐이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아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자기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부정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좇고 싶은 이미지대로 생각할 뿐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다면 사과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미친 거 아닐까? 낮은 목소리로 덤덤히 말하는 그가 같은 인간으로서 이리도 섹시해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떤 삶을 살아가야 얻을 수 있는 매력인 걸까 감히 짐작도 되지 않았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리 여행을 갈 계획이었던 나는 또 조승연 작가를 알게 되었다. 이 말 많고 귀엽고 박학다식한, 초등학생미가 넘치는 남자는 뭘까. 나는 파리 영상을 다 보고도 올라와있는 그의 영상을 마치 취미로 뜨개질하듯 시간이 날 때마다 보고는 했다.

이제는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함이 아닌, 이 사람이 오늘은 또 어떤 걸로 떠드나 (내적 친밀감이 너무 쌓여서) 흐뭇한 미소로 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영상을 하나 둘 섭렵해 갈 쯤이면 두 작가의 세월의 흔적이 너무나도 극명하게 보인다. 내가 그들을 알게 된 것이 꽤 최근의 일이니, 그들의 8년 전 영상을 실컷 웃으며 보다가도 2,3개월 전 영상으로 넘어와 어느새 드리워진 흰머리나 세월의 흔적들을 찾기라도 하면 마치 내가 키운 자식인양 눈물이 고였다.

그들을 오래전부터 알아온 팬들이라면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일 텐데, 나에게는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엄마의 젊은 시절을 보고 온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세월의 흐름이 내가 사랑하는 그들을 비껴가기를 , 그들에게 영생이 있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마음이 내게도 들 줄이야.

그들이 아델라인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세월은 흘러가는 것을.

내가 서글펐던 것은 그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달변 하던 것들이, 내게 막대한 영향을 주었던 어떠한 것들이, 세월이라는 바람에 못 이겨 말을 아껴갈까 해서였다.


나는 아직 나이도 제대로 먹어 본 적 없으면서 매번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 순간순간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대하는 최선의 방법일지 모른다. 고등학교 때 교복 위에 다른 집업을 입거나, 최대한 교복티가 안나는 것이 유행을 하곤 했는데,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30이 되고 40이 되어 지루한 이 나날들을 그리워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때 되짚어보는 나의 순간순간들이 그냥 고등학생 그 자체였으면 좋겠다. 고등학생 티가 나는 것은 이때뿐이리라. 그 생각이 들었던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정말로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다녔다. 후에 생기부에도 그런 점들이 실린 것을 보아 나는 꽤나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 누구도 세월을 비껴갈 수는 없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어벤저스처럼 느껴지는 작가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말이 안 된다. 내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해 본 적이 없어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글을 읽고 누군가가 좋아진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나는 소설이나 자기 계발서 읽기를 두려워하는데, 처음 2,3페이지를 읽고도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 책은 완독을 해도 나에게 의미가 없었다. 아무것도 나에게 남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의 열변이 내 안에서는 가루로도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 두려워 책 읽는 것을 기피했었다. 그러다 제목만으로 눈길을 끌었던 책이 있었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앉은자리에서 다 읽었다. 이 유쾌한 남자의 책의 표지에는 초록색 배가 놓여있을 뿐 단출했다. 그런 점들이 더 마음에 들었다. 지금으로 치면 내 눈앞에 나타난 정말 멋진 남자가 인스타에 달랑 사진 2,3장 올라와있는 것과도 같다. (그것도 셀피가 아닌) 나는 김정운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보았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 역시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노는 것도 인생의 중요한 스킬이라 생각했던 나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웬걸, 표지에 떡하니 뽀글 머리의 어떤 남자가 자신에게 심취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도 한 컷이 아닌, 두 컷으로 나누어져.

작가가 아니고서야 표지에 담겨있을 리 없었다. 그것도 두 컷이나!

김영하 작가, 조승연 작가처럼 영상으로 먼저 접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단순히 그의 글만 보고 내 멋대로 작가의 실루엣을 상상했던 모양이었다. 어떠한 실망, 기쁨 등의 감정이 아니었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 그는 어떻게 놀았던 걸까…? 오히려 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떻게 놀았길래 우리 할머니랑 같은 머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마치 원작 소설을 실사화한 영화 속 주인공의 싱크로율이 안 좋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극성팬과도 같은 마음이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서, 혹여라도 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이 작가는 대체 누구일까? 어떻게 생겨먹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나를 파헤치려들까 무서워져서 쓰는 글이다. 나 또한 싱크로율이 매우 안 좋기 때문이다. 내 글은 대부분 어두침침한 지하실 냄새가 나는데 나의 실제 모습은 또 그렇지가 않다. 이 괴리감으로부터 나는 최대한으로 숨을 수 있는 만큼 숨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