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글이다
순간을_글이다_미련자국_
우리는 같은 버스에 탔습니다.
학교에서 전철 역까지 바래다주는 학교셔틀이었습니다.
우리는 가까스로 버스에 올라타 앞문 계단 세 칸 중 두 번째, 세 번째 칸을 자신의 자리라 나눠가졌지요.
당신과 저 사이는 적막이 돌기에 턱없이 부족한 거리였습니다. 자칫 빠르게 뛰는 저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킬 수도 있었죠. 저는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습니다.
평소 저는 당신의 예쁜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의 눈을 바라볼 때면 메두사의 눈처럼 제가 순식간에 돌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죠. 저는 한없이 깊고 맑은 당신의 눈에서 헤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철 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저는 마지막 기회를 직감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남자답게 당신과 대화를 이끌어나가고, 급정거에 당신이 앞으로 쏠릴 때면 듬직하게 당신을 지켜드리겠다고, 그 짧은 순간에도 저는 머릿속으로 참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곧바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전철타고 집에 가는 거야?"
"응."
"..."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당신은 앞만 보며 저에게 조금의 눈빛도 선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이에 머물고 있던 얕은 적막은 금세 높은 벽으로 우뚝 섰습니다. 여기서 어떻게든 결정을 지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역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조급함의 듀엣이 이토록 엇나간 음의 조화를 이뤄낼 줄이야. 역에 도착할 때까지도 당신은 저에게 단 한 번도 물음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이 당신에게 얼마나 지루한 시간이었을까요. 저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버스에서 내리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뒤따라 내리더니 제대로 인사를 건네지도 못했는데 급히 역 쪽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역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미련이 제 몸에 낙인처럼 남아 지금껏 그 기억을 안고 살았나 봅니다. 과연 지금의 나라면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요?
_정용하_2016_05_10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