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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Mar 06. 2017

[영화리뷰]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후회 속으로

[영화리뷰]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후회 속으로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     


으레 한 번쯤 들어봤을 구절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수없이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우스갯소리로 갓난아기들도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을 놓고 울지 말지, 또 어떻게 해야 엄마의 손길이 자신에게 닿을지 선택을 한다. 모든 상황이 선택의 연속인 셈이다. 그렇다. 표현이 좀 새삼스럽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선택을 하면서 받는 고통보다 결정을 내리고 나서 뒤따르는 후회의 파도가 나를 더욱 뒤흔들었다. ‘이럴 걸, 저럴 걸’이란 말은 이제 지겨울 정도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내 뜻대로 핀란드로 유학을 떠났더라면. 지금 다니는 대학교가 아닌 다른 대학교로의 입학을 선택했더라면. 과거에도 지금처럼 사람들에게 과한 정을 주려 애를 쓰지 않았더라면. 내가 좀 더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더라면. 좋아했던 그녀에게 자존심을 부리지 않고 그녀를 한 번 더 잡았더라면. 나는 지금 달라져 있을까. 인생이란 어쩌면 선택의 연속이라기보다 후회의 연속에 좀 더 가까운 것 같다. 


     

“스무 살 때는 괜찮아. 많이 놀아도 돼. 잘하고 있어.”    

 

조심스럽게 내뱉는다 해도 결국 꼰대는 꼰대다. 이제 신입생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잘한다는 말을 조언에 섞어 격려인 양 둔갑할 뿐이다.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그럼 네가 한번 진짜 과거로 돌아가 봐’ 라며 관객의 시계를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려놓는다. 그러면서 영화 내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해준다.     

 

그중에서도 젊은 수현(변요한)이 수현(김윤식)을 부르기 위해 팔에 ‘방문 요망’이라는 문신을 그려 넣는 장면은 단연 인상적이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소통을 한다는 발상 자체가 실로 놀라웠다. 그 밖에도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영화 속 장치는 곳곳에 깔려 있었다.     


   

사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가 빛을 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가 내포한 의미에 있다. 영화 막바지로 갈수록 귤껍질 까듯 그 알맹이가 서서히 드러났다. 홍지영 감독은 결론적으로 돌아가도 소용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등장인물 모두가 웃음을 짓는 쪽으로 해피엔딩을 쥐어짜듯 결말이 나긴 했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그것이 아닌가 싶다. 어떤 선택에도 얻는 것과 동시에 잃는 것이 뒤따르니 결국 ‘지금 여기’가 내 인생의 최선이라는 것. 나는 그 의미에 공감을 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삶이 조금은 덜 괴롭지 않을까.     


무엇보다 달라진 태호(김상호)의 행동이 충격처럼 다가왔다. 누구보다 의지하고 생사고락을 함께하던 친구였는데 하루아침에 달라진 그의 태도를 보고, 수현(김윤식)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 중심에는 이별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젊은 태호(안세하)를 향해 못된 언사를 퍼부었던 젊은 수현(변요한)이 있었다. 그 후로 둘은 삼십 년이란 세월 동안 서로를 멀리하게 되었고, 그것이 현재의 수현(김윤식)에 영향을 미쳤다. 무엇이 우선일지 쉽게 판단하지 못하겠다. 소중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소중한 다른 이를 잃어야 하는 삶이란. 씁쓸함이 남는다.



반면에 영화의 부정적인 요소도 존재했다. 홍지영 감독은 아마 결말을 짓는 데 상당한 고심을 했었던 듯하다. 사실 영화가 담는 의미를 일관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선 연아(김성령)를 잃든 수아(박혜수)를 잃든, 둘 중 한 명은 잃은 채로 끝이 났어야 했다. 그것이 맞았다고 본다. 하지만 어떻게든 영화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려다 보니 무리한 설정이 빚어졌다. 의절한 태호(김상호)가 수현(김윤식)의 장례식장에 찾아와 이야기의 전말을 알게 되고, 남은 한 알로 삼십 년 전 과거로 돌아가 젊은 수현(변요한)을 살리는 장면은 과연 옥에 티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수현(김윤식)과 연아(김성령)가 서울대공원에서 극적으로 만나는 시퀀스에는 진한 감동과 함께 긴 여운을 남겼다.  


   

그래도 옛사랑에 미련이 남는 법이다. 몇 번의 선택에 있어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행복했을 수 있다. 적어도 후회보단 후련함이 더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기에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와 같은 책이나 영화가 세상에 나와 우리를 달래주는 것이다. 선한 결말로 마무리한 홍지영 감독의 따뜻한 호의가 새삼 느껴졌다.      

 


2017.03.06.

작가 정용하

[영화리뷰]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후회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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