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세이집 11편
"그동안 나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지만,
막상 그런 일이 닥치고 보니,
불안은 어느새 잊히고,
근거 없는 확신이 그 자리를 메웠다.
그러면서 극단적인 가능성을
의식적으로 부인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악몽과도 같은 극단적인 장면이 눈앞에 드리운다. 넋 놓은 채 거리를 걷다가 졸음운전을 하는 자동차에 치이는 게 아닐지. 아닌 밤중에 전화가 와 부모님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게 아닐지. 내 몸이 건강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픽 쓰러지는 게 아닐지. 높은 건물 위에서 떨어지는 물체에 정수리 부분을 맞게 되는 게 아닐지. 이처럼 집 밖에서는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살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수시로 주위를 살핀다.
어째서일까. 별다른 트라우마도 없었다. 크게 아팠던 적도, 주위의 소중한 누군가를 잃어본 적도 없었다. 친외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 일찌감치 돌아가신 것 외에는 상을 치러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내 주위 사람들은 대개 건강하고, 잘 살았다. 그저 행복하기 그지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잃게 되진 않을까 불안하기만 하다. 만약 정말 그랬을 때 내가 그 심리적 타격을 견뎌낼 수 있을까. 현재 상태가 너무 완전하기에 반대로 그만한 크기의 불안감이 뒤따라 왔다. 그리고 그 불안의 파도는 시시때때로 나를 뒤흔들어 놓았다.
일주일 전 우리 집안에 큰 소동이 벌어졌다. 영영 듣고 싶지 않았던, 바로 그 소식. 우리 집 강아지가 건강에 이상신호를 보인 것이었다. 나는 강아지를 안고 집 근처 동물병원에 갔다. 그리고 거기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다. 그 길로 바로 신촌에 있는 동물의료센터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그곳에서 한 시간 남짓 진료를 본 끝에 병명 ‘요도결석’이란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수술은 불가피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긴급한 상황에서도 나는 대단히 침착하고 담담했다. 의사의 말에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헐레벌떡 뛰지도 않았고, 불안에 떨지도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강심장의 소유자여서가 아니라, 무언가 안일한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었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확신에 찬 건지, 아니면 불감한 건지, 나는 이상하리만치 낙관적인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강아지가 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좀 아프다 말겠지. 잠깐 그러다 괜찮아지겠지. 강아지가 아픈 병에 걸렸는데도 나는 금방 이겨내고 돌아올 거란 환상 비슷한 것에 빠져 있었다.
그동안 나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지만, 막상 그런 일이 닥치고 보니, 불안은 어느새 잊히고, 근거 없는 확신이 그 자리를 메웠다. 그러면서 극단적인 가능성을 의식적으로 부인했다.
물론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강아지는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기운도 어느 정도 돌아오고, 건강을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안일한 생각이 강아지에 대한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십 년 가까이 집을 지키며 동고동락했던 몽실이(강아지 이름).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고등학교 사춘기 시절에도 내 옆을 지켜주었던 존재는 몽실이뿐이었다. 인생의 큰 빚을 진 존재인데 막상 몽실이가 아팠을 때 함께 있어주지 못한 것이 크게 미안했다.
생각을 다시금 고쳐먹은 계기가 되었다. 이 세상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단지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지.
작가 정용하/2017.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