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세이집 12편
감성에세이집 12편 '붕어빵 아저씨'
"사소한 기억일수록 쉽게 잊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따스한 온기가 묻어 있는 기억은
어느 날 불현 듯 수면 위로 떠올랐다."
요즘 매주 목요일, 합정을 찾고 있다. 두 달 전부터 독서스터디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임은 주로 카페에서 이뤄졌는데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 부근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로 득실거렸다. 골목 끝에 숨겨져 있는 예쁜 카페라도 발견하면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그날 간 카페 또한 분위기가 유난히 예뻤다. 탁 트인 창가와 카페 안으로 불어오는 살랑거리는 바람, 그리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합정의 건물과 좁은 골목길. 이제 낮이 길게 늘어져 7시가 넘었는데도 밖은 환했다. 선선한 날씨와 더불어 그날 읽었던 에세이는 나를 더욱 감성에 젖게 만들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푸르스름해지는 야경이란. 나는 당연히 책에 집중하지 못했다. 시도 때도 없이 창밖으로 시선이 갔다.
‘붕어빵 아저씨는 지금 뭐하고 계실까?’
그 상황에 갑작스레 옛 기억이 튀어나온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실 합정은 고3 시절 문예창작학과 입시학원을 다녔던 터라 익숙했다. 뭐,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때는 글이 어지간히 나오질 않았다. 더군다나 소설 쓰는 연습을 할 때여서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다. 머리를 쥐어짜봤자 나오지 않는 글에 매번 허탈감을 느꼈다. 그때마다 내게 위로가 되었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학원 끝나고 먹던 한낱 붕어빵의 존재였다.
합정역 5번 출구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던 붕어빵 가게.
나는 몹시 더운 날에도, 쌀쌀한 바람이 부는 날에도, 학원이 끝나면 어김없이 붕어빵 가게로 향했다. 그리고 언제나 붕어빵 아저씨는 따뜻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었다.
“자, 오늘은 뭐 먹을 거니.”
“음... 오늘은 단팥 두 개, 슈크림 한 개 먹을게요!”
“어제 keep 해두었던 단팥 1개도 같이 먹고 가렴.”
붕어빵 종류가 비교적 다양해서 먹을 때마다 고민이 되었다. 기본적인 단팥 붕어빵뿐 아니라 슈크림 붕어빵과 당면 붕어빵까지 그 당시 꽤 파격적인(?) 종류가 존재했다. 또, 배불러서 다 먹지 못하는 날이면 붕어빵 아저씨는 ‘붕어빵 keep’을 허락해주셨다. ‘붕어빵 keep’ 제도가 있는 붕어빵 가게는 아마 그곳이 유일했을 것이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한 평도 되지 않는 좁디좁은 공간에서 아저씨와 나누었던 대화의 온기는 여전히 가슴속에 남아 있다. 물론, 대화의 내용은 또렷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간이 지쳐 있던 내게 큰 위로가 되었던 건 분명하다. 나의 말에 적절하게 공감을 해주고, 뒤이어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늘어놓았던 아저씨. 어쩌면 반년이란 힘든 시간을 붕어빵 아저씨 덕분에 이겨냈을지 모른다.
솔직히 그간 붕어빵 아저씨의 기억은 수면 아래 잠들어 있었다. 꾸준하게 합정을 찾았던 동안에도 그 기억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여러모로 봐도 그리 중요한 기억은 아니었다. 그처럼 사소한 기억일수록 쉽게 잊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따스한 온기가 묻어 있는 기억은 어느 날 불현 듯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나저나 붕어빵 아저씨는 지금 뭐하고 지내실까. 다음 해에 그곳을 찾아갔지만 붕어빵 가게는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휑한 빈자리만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붕어빵 아저씨의 따스했던 마음과는 별개로 현실은 잔인할 만큼 냉혹했던 것일까.
“오늘 책 안 읽더라.”
“카페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그냥 그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어.”
카페를 나오면서 독서스터디 동생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창밖만 보고 있으니 아무래도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은 듯 보였나 보다. 그런 게 아니라, 요즘 도통 감성에 젖는 일이 드물어 그 시간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그저 카페의 분위기에 온전히 취해 있고 싶었다. 우리는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자연스레 맥주집으로 향했다. 그 근처의 술집도 대부분 분위기가 좋았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소소한 기억을 쌓을 기회마저 사라지는 기분이다. 문제는 이제 소소함을 소중함으로 느끼지 못하는 마음에 있었다. 더는 가슴속 우물에 감성이 메마르지 않도록 그것을 경계해야겠다. 찬찬히 둘러보면 붕어빵 아저씨가 그랬던 것처럼, 따스한 기운을 내뿜는 사람은 지금도 그 주위를 빛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직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 오늘부터라도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작가 정용하/2017.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