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의 결혼

감성에세이집 13편

by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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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집 13편 '후배의 결혼'



"그래서 상대방이 소중한 사람이라면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만나

연을 유지해야 한다."



얼마 전, 한때 친하게 지냈던 여자 후배가 곧 결혼을 한다며 청첩장을 보내왔다.

‘오빠 결혼식에 올 거지?’


먼저 연락을 보내오는 일이 손에 꼽았기에 처음엔 고마운 마음이 일었지만 역시나 용건이 있는 연락이었다. 안 그래도 후배의 결혼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왔던 터라 사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왠지 모르게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그러려 한 건 아니었겠지만 필요할 때만 찾는 느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하자 나는 답을 확실히 주지 못한 채 대충 얼버무렸다.


아직 나이가 어려 지인의 결혼이 그리 빈번한 일이 아니었지만 나는 그 적은 경우마다 고민이 되었다. 결혼식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다른 친구들은 그저 별 고민 없이, 그냥 얼굴 보러 가는 거지, 라며 편하게 말하곤 하던데 나는 무언가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했다. 단순히 얼굴을 보러가는 거라면 그 대상이 한둘이 아니지 않나. 게다가 그 이유뿐이라면 상대방이 그다지 중요치 않은 사람 같아 싫었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 할 거면서 의례적으로 남들 따라 가는 건 현재의 관계를 속이는 것 같았다.

사실 단순히 금전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아직 마땅한 벌이가 없고 안 그래도 부모님이 주는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죄인인 마당에 결혼식 부조금은 엄두도 못 낼 큰 금액이었다. 언제부턴가 대학생은 3만원이면 된다는 속설이 퍼졌는데, 이젠 그것도 옛말이었다. 밥값만 해도 3만원이 훌쩍 넘는 세상 물정에 그 금액으론 아무래도 눈치가 보였다. 그렇다면 무조건 홀수에 맞추라는 5만원인데 그걸 내면 몇 날 며칠을 굶어야 할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결혼식에 가려 부모님께 부탁드리는 건 더욱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사실 제대로 된 벌이가 있었다면 가지 않았을 결혼식에도 찾아가고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해도 마음이 중요한 거라 꼬집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우리야 마음일 수 있어도 결혼 당사자들은 현실이었다.

“평소에 그렇게 가둬야 너 할 때 오는 거야.”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부모님 세대에는 지금의 우리와 다른 관념이 있는 듯했다. 사돈의 팔촌의 그 자식의 경조사까지 챙기는 윗세대의 문화는 내가 살아온 배경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것처럼 그래야 우리 자식의 결혼식에 그들이 하객으로 오는 거랬다. 일종의 보험을 들어두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그런 문화에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다. 결혼식의 주인공이 정작 누구인지, 하객이 꼭 많아야 좋은 것인지,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래야 인간관계가 유지되는 거라면 그냥 나는 아예 결혼식을 하지 않으련다. 아니면 정말 진심으로 축하해줄 소수의 지인만 초대해 소박하게 하고 싶다. 겉보기엔 그래 보여도 그게 진정한 결혼식 아닐까. 분명 혹자는 이런 내 생각에 어리다, 철이 덜 들었다, 딱지를 붙일 것이다. 그런데 뭐가 맞는 것인지, 뭐가 올바른지, 분명 고민해봐야 한다.

평소에는 아무 연락도 없고, 서로 굳이 연락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다가 막상 결혼식이 다가오니까 초대되는 게 왜 당연한 걸까. 후배가 현재의 사람이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테지만 나는 그녀를 이미 과거의 인연으로 규정지었다. 그러나 단지 이런 이유로 결혼식에 불참을 한다면 후배는 그것을 관계 절단의 표시로 받아들일 것이다. 결혼을 할 때 인간관계가 정리된다는 어른들의 말처럼, 나를 정리대상으로 툭 밀어 넣을 것이다. 물론 상대방의 입장에선 서운할 수야 있겠지만 후배와 나는 애초에 그 정도의 깊이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이렇게 계속해서 스스로를 합리화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무척 고민이 된다는 뜻이었다. 개인적인 연이었다면 나의 선택이 그저 개인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후배는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었고, 언제든 어디서든 충분히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녀를 만났을 때 얼마든지 반갑게 인사할 수 있지만 후배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막상 그런 상황이 일어났을 때, 또 왜 오지 않았냐 내게 추궁을 했을 때, 나는 후배에게 뭐라 얘기할 수 있을까. 솔직하게 너는 그 정도의 사람이 아냐, 라고 과감하게 말할 수 있을까. 참 어렵다.


그래서 상대방이 소중한 사람이라면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만나 연을 유지해야 한다. 그 한 번이라는 횟수가 얼핏 적어 보이지만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닌다. 그렇게 해서라도 만남을 지속한다면 그 사람은 어디까지나 현재의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 정용하/2017.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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