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감성, 하루의 기록
칙칙한 불타는 금요일
그런 날이 있다. 왠지 집에 바로 들어가기 싫은 날. 분명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퇴근시간만 애타게 기다렸었는데 막상 퇴근시간인 여섯시 반이 되자 이대로 들어가기 싫어졌다. 아마 나의 몸도 알아차렸던 것 같다. 이대로 집에 들어간다면 홀로 있는 공간에서 내가 얼마나 불안에 떨어 할지. 때때로 집 안 불을 환하게 켜고 있어도 완연한 어둠이 나를 덮쳤다. 그럴 땐 혼자인 게 너무나 싫었다. 집에 들어가면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될 것이고, 그 누구도 나를 찾지 않을 것이며, 사방이 틀어 막힌 원룸에 갇히고 말 것이었다.
1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개찰구 앞에서 나는 문득 멈춰 섰다. 나의 속도에 맞춰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무작정 뒤따라오던 한 남자도 나의 급정거에 깜짝 놀라며 멈춰 섰다. 뭐야. 땅딸막하고 머리숱이 적은 그 남자는 인상을 쓰며 나를 한번 째려보더니 다시 가던 길을 갔다. 이 시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은 물밀듯이 개찰구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저마다 스마트폰만 바라본 채 그렇게 무색무취의 표정으로 앞사람을 따라갔다. 그들은 곧장 집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어떤 이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을 테고, 어떤 이는 혼자 사는 골드미스로 집만 들어가면 혼자 맥주 캔을 여러 개 깔지도 몰랐다. 어떤 이는 자기 애인을 만나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을 테고, 또 어떤 이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씻지도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 밤새 게임을 할지도 몰랐다. 대부분 혼자인 게 뭔지도 모른 채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금요일이었다. 금요일이란 게, 그리고 내일이 휴일이라는 게, 나를 더더욱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 꺼리게 만들었다. 이내 마음을 먹고 바지 뒷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구석진 곳으로 나와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렸다. 나와 어느 정도 연이 있지 않는 한, 심지어 금요일에, 급작스럽게 만나줄 이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감안하고 ‘ㄱ’순부터 찬찬히 살펴보았다. 지금 시간이라면 서울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서울권 친구라면 일단 전부 연락이 가능했다. 가장 먼저 ‘김진수’. 나의 유일한 고등학교 친구이자 동네친구. 하지만 말이 동네친구이지 그는 동네를 떠나 있는 일이 잦았다. 아마 오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다음 후보는 ‘나영준’. 한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났지만 안타깝게도 최근에 연락이 드문드문 해졌다. 이제 와서 만나자고 할 수도 없는 법. 왠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박예지’. 모처럼 금요일에 내 손으로 약속을 만드는 건데 이왕 볼 거 여자를 불러 술 한 잔 하고 싶었다. 아, 맞다. 그녀는 기독교인이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겠지만 술 한 잔은 힘들 것 같았다. 그나마 내가 있는 곳에서 만나기 쉬운 사람은 ‘정수찬’. 그도 가산디지털단지에서 일을 했다. 한 때 회사 동기였고 지금은 근처 회사로 이직을 했다. 비록 그에게 연락한 지는 좀 됐지만 지금 한다고 해서 어색할 것 같진 않았다. 나는 마음을 굳히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퇴근했어? 한 잔 할 텨?”
“지금? 가산이야?”
“응.”
“아, 잠시만. 내가 바로 다시 걸게.”
전화를 끊자 강물처럼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사람들의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어떠한 생각도 머릿속에 닿지 않았다. 그저 원래부터 그 자리의 장식물이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내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계속 쥐고 있었다. 수찬의 전화를 기다리는 그 일 분 일 분이 마치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 진동이 울렸다.
“야, 어떡하지. 오늘 야근할 것 같다. 다른 애랑 마셔야 할 듯.”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밝게 웃으면서 그의 전화를 끊었다. 다시 연락처를 뒤졌다. 정준상······. 한보라······. 홍······. 에이, 집이나 가자. 나는 스마트폰을 다시 바지 뒷주머니에 꽂아 넣고, 한참 만에 발걸음을 떼었다. 사람들을 따라 전철 개찰구 사이로 카드를 찍고 지나갔다. 승강장으로 이어진 계단을 밟고 천천히 내려갔다. 그리고 승강장 위 어느 지점에 멈춰 섰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대학생 때나 연애할 때나 직장을 다니는 지금이나 나는 항상 그 자리였던 것 같은데 주위의 사람들은 이상하게 하나둘 떠나갔다. 먼저 연락도 해보고 자존심을 버려가며 꽁무니를 쫓아다니기도 했는데 막상 내가 필요할 땐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나는 500ml 맥주캔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술안주로 즐겨 먹는 바나나콘까지 집어 들었다. 망설여졌다. 오늘 같은 기분이라면 왠지 두 캔 정도는 마셔야 할 것 같았다. 다시 맥주가 진열되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500ml? 355ml? 고민 끝에 355ml 맥주캔을 하나 더 집어 들었다. 계산대 위에 맥주캔 두 개와 과자 한 봉지를 내려놓았다. 이십 대 초반의 남자 점원이 계산을 도와주었다.
“봉지에 넣어드려요?”
“네. 넣어주세요. 고생이 많으십니다.”
나는 남자 점원한테 최대한 밝게 웃어보였다. 축 처진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그 누구에게라도. 남자 점원은 고갯짓으로 나의 인사를 받더니 봉지 안에 산 물건들을 정성스레 넣어주었다. 나는 봉지를 받아들고 다시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고생하세요.”
도심 속 차들은 어딜 가나 꽉꽉 들어차 있었다. 금요일이라 역시나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은 많았다. 특히 연인의 비율이 월등했다. 부스럭부스럭. 조용히 걷고 싶었는데 비닐소리가 요란하게 삐져나왔다. 맥주캔이 두 개니깐 혼자 마시는 것처럼 보이진 않겠지. 아무렇지도 않다고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지만 정작 그늘이 내려앉은 길로 걸음을 재촉했다. 내가 죄지은 것도 아닌데. 오늘 같은 날엔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진 실내 호프집에서 맥주 한 잔 하고 싶었다. 숨 막히는 밤더위에 야외 어떤 곳이라도 마음에 드는 장소는 없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어디 가서 마시지.’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