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세이집 15편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내 사람'을 가려내고 싶었던 것 같다."
10월 13일.
내 생일이다. 지난 지 3일이 되어서야 블로그 상에 고백한다. 사실 거창한 일도 아니기 때문에 ‘고백’이란 단어를 빌리는 것도 부끄럽다. 그냥 나는 내 생일을 언제라고 다른 사람에게 떠벌리는 게 이상하게 부끄러웠다. 내겐 더없이 소중한 날이지만, 그들에겐 그저 보통의 하루일 테니까. 그래서 생일이란 말을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세상이 좋아져서 참 좋다. 굳이 내가 털어놓지 않아도 SNS가 친절하게 나의 소식을 모두에게 알려주니까. 덕분에 이번 스물여섯 번째 생일은 적지 않게 축하를 받았다. 감사한 일이었다.
요상한 성격 탓에 남들에게 생일을 털어놓진 못하지만, 그래도 기대는 한다. 이게 무슨 모지리 같은 소리인가 하면, 나도 친한 친구의 생일이 언제인지 모르면서, 그들이 내 생일을 용케 알아내 축하해주길 기대한다. 말하기 꺼리는 마음 반, 축하받고 싶은 마음 반이랄까. 나도 왜 이런 마음이 이는지 모르겠다. 내가 하는 행동임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 간혹 있는데 이 경우가 그랬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 생일도 사전에 언급하지 않았다.
생일 당일. 기대를 하지 않겠다 굳게 마음먹었지만, 나도 모르게 굉장히 큰 기대를 하고 있었던 듯하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한 일이 바로 축하메시지가 누구에게 왔고, 또 몇 통이나 왔는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메시지가 꽤 쌓여 있었다. 대부분 친한 지인들이 앞다퉈 축하를 해주었다. 아침부터 축하를 받으니 신선한 공기가 방안을 맴도는 듯 기분이 상쾌했다. 역시 생일이 좋아. 그중에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 받은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일상에 치여 서로의 안부조차 묻지 못하다가 생일이란 핑계로 오랜만에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어 감사했다. 그들의 축하메시지가 유난히 반가웠다. 생일이 좋은 이유가 이런 점 때문이 아닌가 싶다. 평소 연락을 잘 주고받지 못하던 친구에게 공짜로 먼저 연락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내 사람’을 가려내고 싶었던 것 같다. 나와 마주치고 관계 맺는 사람은 무척 많고, 그중 내가 친하다 여기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 그렇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상대방은 나의 마음과 다를 수 있었다. 그런 의심 때문에 나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편하게 주질 못했다. 나만 피곤하게 만드는 이런 의심을 왜 하느냐, 결국 상처 받기 싫기 때문이다. 마음을 주었다가 괜히 내 마음과 같지 않았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기 싫으니까. 한데 생일은 그러한 의심을 일부분 씻게 해주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중 몇 사람은 확실한 ‘내 사람’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내가 봐도 참 피곤한 인생이다. 스스로는 정이 많기 때문이라 여기고 있다.
이번 생일은 친구들과 보냈다. 내 생일이라서 만난 건 아니었고, 스무 살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오랜만에 보는 자리였다. 그런데 어찌 알았는지 직접 케이크를 사서 축하를 해주었다. 여러모로 뜻 깊은 자리였다. 역시 가장 좋은 축하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축하였다. 작년도, 재작년도, 혼자 집에서 생일을 보냈었는데, 좋은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생일도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집에 있어도 가족들이 생일을 챙겨주었다. 또, 물론 그 마음도 굉장히 감사하다. 그런데 아직 가족들이 챙겨주는 생일보다 친한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는 생일이 무언가 조금 더 특별했다.
한 살을 더 먹으면 먹을수록 생일을 그저 조용히 보내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은근 생일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래도 되었다. 어쩌면 일 년 중 유일하게 내가 주인공이 되고, 축하받을 수 있는 날인데. 조금 기대하고, 바라고, 따지면 어때. 그러기에 하루는 짧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생일은 무심하게 지나가 버렸다. 이제 내년 생일을 기다려본다. 내년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보낼 수 있기를.
2017.10.17.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