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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Nov 27. 2017

[감성에세이]
첫사랑은 지워지지 않는다

감성에세이집 19편

[감성에세이] 첫사랑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 일이 있은 후, 아무한테도 이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꺼낸다면 혹여나 내 첫사랑이 욕을 먹을까봐. 그리고 사실 그 정도로 큰일도 아니다. 그 날의 일이 적어도 내겐 큰 충격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예전처럼 나의 생활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지 않았다. 그 일이 별일이 아니라며 속으로 얼마나 나를 달래었는지. 그런데 그 일이 어떻게 별일이 아닐 수가 있겠는가. 그 말이, 그 대화가, 어떻게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고 자신할 수 있겠냐고. 누군가에게 소리치고 싶었고, 화라도 내고 싶었다. 한데 누가 이 속앓이를 받아줄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블로그란 공간이 내게 있어 더욱 소중하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속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니까. 그런 솔직한 면이 나를 구질구질하고 지질한 사람으로 만들어놓을 수는 있지만, 원래 인간의 밑바닥 이야깃거리가 다 그런 거다. 글로나마 털어놓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랴.      



타인 앞에 솔직할 수 있는 공간은 여기뿐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나대로 내 가슴속에 있는 응어리를 해소해야 했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굳이 글을 쓰진 않았을 거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없을뿐더러 상대방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어버리는 짓인데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아무튼 나는 첫사랑을 잊지 못했다. 아니, 상처는 다 잊었고 좋은 기억만 남았다. 첫사랑이라 해봤자, 고작 짝사랑이었을 뿐인데, 나는 그녀의 많은 면을 아직 잊지 못했다. 일단 그녀의 번호를 여태껏 갖고 있다. 군대에서 그토록 자주 누르던 번호라 가족 외에 유일하게 외우고 있는 번호이기도 하다. 그래서라 하면 뭔가 매끄럽지 않지만, 그래서 가끔 그녀에게 안부 문자를 남긴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그녀는 그럴 때마다 반갑게 받아주었지만, 당연히 그렇다고 특별한 여운을 남기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녀에겐 현재 남자친구가 있다.      



최근에도 그녀에게 안부 문자를 남겼다. 그리고 짧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뜸을 들였다. 그때부터 나의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나의 마음은 2014년 그때로 돌아갔다. 그 당시 나는 그녀의 연락을 받기 위해 하루 종일 집밖을 나가지 않은 채 침대 위에서 핸드폰만 붙잡고 있었는데. 그 기억이 잠시 뇌리를 스쳤다. 잠시 후 그녀는 긴 톡을 보내왔다.      



문자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오랫동안 나 모르게 블로그를 지켜봐왔고, 남자친구가 있는데도 자주 내가 생각난다고. 그런 자신이 혼란스럽고 이게 단순히 팬심인지 관심인지 모르겠다고.   


   

아, 그렇다. 나는 이 모습 때문에 그녀를 그토록 열렬하게 좋아했던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용기. 그것이 확실하지 않은, 애매한 마음이라 할지라도, 그러면 그런 대로 마음을 전달할 줄 아는 사랑스러움. 그녀는 정말 세상에 별로 없는 드문 여자였다.      



그녀는 내가 이렇게 글로 남기는 걸 무척 싫어하겠지. 자기가 나쁜 사람 되는 것 같다고. 분명 혹자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 뭐라 하는 사람에게 반문하고 싶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그토록 솔직한 마음을 전달한 적이 있었는지, 최소한 그럴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냐고.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나쁘다 말할 정도로 깔끔하고 떳떳한 인생을 살아왔냐고.      



물론 남자친구가 있는데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이, 한국 정서에는 맞지 않을 수 있겠다. 그런데 무엇보다 확실한 건, 그 말을 했다 해서 달라질 건 없다는 거다. 우리의 사이가 이 사건을 계기로 가까워질 리 없었다. 그녀에겐 남자친구가 있었고, 나는 그녀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다.      



운명은 항상 우리를 빗겨나갔다. 내가 전역하기 직전 짧은 휴가라도 나갈 수 있었다면, 내가 조금 더 빨리 전역을 했었다면, 그녀가 인천아시안게임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다면, 최소한 지금의 모습과 다른 양상이지 않았을까. 나는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4년 전의 나와 다르다. 그런 말로 마냥 설레어 하지 않고, 헛된 희망을 품지도 않는다. 심장이 요동칠 정도로 그녀를 향한 애틋함이 되살아났지만, 그렇다 해서 내 생활에 있어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멍청한 짓이라 할지라도 다시 한 번 운명을 기다려보려 한다. 아 물론, 그녀가 나를 선택해줄 때까지 기다린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런데 사람의 앞일은 모르는 거다. 영화의 열린 결말 정도로 그냥 남겨두려 한다.    


  

사소한 말이라 하더라도 마음으로 듣는 그녀. 자기 자신이 지금 어떤 감정 상태에 놓여 있는지 알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할 줄 알며, 그만큼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서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그녀. 내가 당장 어찌할 도리는 없지만, 그녀 덕분에 순수함을 잃어버렸던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만 남았다.      



그녀는 나를 원래의 나로 돌려놔 주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다시 한 번 되새겨 주었다. 첫사랑의 그녀가 나의 이 에세이를 볼까. 혹여나 보더라도 글은 말보다 더욱 진실하기에, 나의 마음이 그녀에게 잘 전달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 이 이야기를 털어놓아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다.



2017.11.27.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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