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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Dec 05. 2017

[감성에세이]
이 모든 게 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

감성에세이집 20편

[감성에세이] 이 모든 게 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


          

나는 요즘 개인적인 만남을 전혀 갖지 않고 있다. 속해 있는 모임의 일정 아니고서는 집에만 콕 박혀 있다. 혼자 있는 게 편안해서이기도 하고, 블로그와 글의 매력에 빠져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인간관계가 더 이상 내게 중요치 않다.     



사람이 더는 내게 확실한 존재가 아니다. 확실하다는 건, 변하지 않는 굳건한 신뢰가 서로를 감싸고 있는 상태인데, 사람은 내게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언제든 어떻게든 변할 수 있는 존재였다. 변할 가능성이 언제든 농후한 대상에게 무작정 신뢰를 보낼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 잘못된 선택의 결과는 언제나 늘 마음의 상처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확실하지 않는 존재인 사람에게 의미 없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물론 확실한 상대를 만날 가능성마저 포기한 상태는 아니다. 운명 같은 인연을 만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연은 확실하지 않은 존재에 그쳤다.      



신뢰관계란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서로, 꾸준한 시간 동안 공들여 쌓아야만 그것이 비로소 형성된다. 그러나 내가 맺은 대부분의 관계는 일방적으로만 아등바등 애를 쓰다 끝이 났다. 상대방은 전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데, 혼자만 기를 쓰고 달려들었다. 그러면 당연히 신뢰는 저 먼 산의 이야기가 된다.      



상대방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그들은 대화를 해보면 딱 알 수 있다. 일단 그들은 먼저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다. 절대 받기만 하지 않고, 'Give & Take'가 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특별한 사람을 잡고 싶다. 한데, 그런 사람은 주위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일단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한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그런 다음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키워, 발견하는 즉시 먼저 다가가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 외의 경우에는 굳이 내가 먼저 다가갈 필요가 없었다.      



이로 인해 지금껏 쌓아온 인간관계의 상당 부분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관없다. 어차피 그들에게 나는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하다면 내게 먼저 연락해오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특정 사람이 내게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라면, 내가 먼저 본능적으로 다가가게 되어 있다. 단, 인맥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확실하지 않은 사람까지 억지로 관계를 끌고 가지 않겠다는 말이다.      



이 모든 게 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상처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일이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맞는지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찾은 결과물이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선의 사람을 만나겠다는 일종의 발버둥이다. 그런 기준 없이 관계를 맺다 보면, 내가 너무 흔들리게 된다. 이리저리 끌려 다니기만 한다. 그런 광경을 그저 방관하고만 있을 수 없다. 나에겐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나 자신을 지킬 의무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한 사람을 너무 만나고 싶다. 운명처럼 내게 찾아올 때까지, 인내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려 한다. 분명 만나게 되는 즉시, 강렬한 무언가에 이끌려 서로를 알아볼 거라 확신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한평생 친구로, 또는 배우자로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벌써부터 흥분이 된다.      




2017.12.05.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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