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정용하 May 07. 2018

[감성에세이] “잘하는 게 없어요”

에세이집



"나는 여전히 잘하는 게 뭐고

좋아하는 게 뭔지 잘 모른다.


다만 나에게 딱 맞는 게 뭔지는,

몸이 알고 있다."






[감성에세이] “잘하는 게 없어요”     



어렸을 땐, 아니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나이가 들면 남들 앞에 내보일 만한 게 하나쯤은 생길 줄 알았다. 그 믿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아니, 적어도 좋아하는 게 뭔지는 스스로 깨달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너무 순수했나 보다. 그런 ‘자연스러움’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잘하는 건 절대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이십대 후반의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후천적 노력보다 선천적 재능이 더 절대적이라는 믿음이 커져만 갔다. 그렇다고 개인이 노력한 부분에 대해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노력으로 따지면 요즘 사람들, 어디 노력 안 하는 사람이 있나. 죄다 ‘노오력’하면 이룬다는 말만 귀 따갑게 듣고 자라온 사람들인데. 그러나 확실히 노력보다 선천적 재능이 개인의 삶에 더욱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한데 그런 선천적 재능, 내겐 주어지지 않은 것 같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이것을 현실의 핑계로 삼으려는 건 결코 아니다. 아니 그냥, 그렇다고. 잘하는 게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거다. 굳이 진주알 뒤지듯 나에게서 없는 걸 찾으려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런 게 있었으면 이미 세상 앞에 드러나고도 남았을 테니까.   



   



그렇다고 현실을 마냥 비관적으로 볼 수는 없다. 나는 이런 마음가짐을 갖기로 했다. 잘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보는 걸로. 남들 앞에 내보일 만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했다. 블로그, 글, 독서, 인디음악 등이 떠올랐다. 이것들로 당장 밥 벌어 먹기는 영 글렀다. 그래도 가능은 한 거니까. 혹시 알까, 하다 보면 정보가 쌓이고, 노하우가 생기고, 틈새시장이 보일지. 그런 생각으로 하다 보니 어느덧 블로그를 삼 년째 이어오고 있다. 사실 아직도 ‘전문적’이라고 말하기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그냥 전보다 조금 나아졌다는 정도?     




또 가능한 것들 중에는 나에게 딱 맞는 게 있다. 마찬가지로 맞다 해서 능력이 담보돼 있진 않지만, 그래도 할 때 편안해지고 휴식이 되는 것들이다. 능력을 떠나 일단 할 때 좋다. 나 같은 경우엔 그게 블로그고, 글이다.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것들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꾸준히 하는 것뿐이다. 조금씩 실력을 키워나가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세상이 알아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임하고 있다. 과연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까. 또 다시 틀린 답을 쓰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무렴 어때, 나의 인생인데.      






사실 나 같은 마음으로 살려면 꽤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게다가 인생에서 포기해야 할 것들이 여럿 생긴다. 내가 봐도 확실히 일반적인 부류의 생각은 아니다. 성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금세 조바심이 생길 수 있고, 이 시간에 다른 걸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끊임없이 마음속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 것에서 벗어나야만 ‘나만의 삶’을 살 수 있는데 그게 쉽지 않다.      




나는 여전히 잘하는 게 뭐고 좋아하는 게 뭔지 잘 모른다. 다만 나에게 딱 맞는 게 뭔지는, 몸이 알고 있다. 나는 그렇게 몸이 느끼고 이끄는 대로 살고 싶다. ‘돈’, ‘안정’, ‘직장’은 포기해도, ‘나의 삶’은 절대 포기 못한다. 지금 당장 써먹을 게 없으면 뭐 어때. 인생은 9회말 2아웃 3볼에 결정 날 수도 있는 거고, 아예 결정자체가 나지 않는, 결승선 없는 마라톤일 수도 있는 건데. 영화의 결말도 중요하지만, 나는 전체적인 스토리를 더욱 좋아한다.   





2018.05.07.

작가 정용하

매거진의 이전글 [감성에세이] 길흉의 불협화음, 그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