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집 [흘러가는대로]
[감성에세이] 친구의 수는 몇 안 되지만 지금이 좋다
올해 들어 시간 없단 핑계로 보지 못했던 친구들을 자주 보고 있다. 평일에는 일을 하다 보니 따로 약속을 잡지 못했다. 주로 친구를 만나는 날은 금요일이다. 금요일엔 밤을 새도 좋다는 마음으로 매주 무조건 약속을 잡았다. (당연히 대부분 술 약속이었다.) 내겐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시간이 많을 땐 이 사람 저 사람 다 볼 수 있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꼭 보고 싶은 사람을 보거나 나를 보고 싶다며 연락해오는 사람만 골라 봤다. 그러나 알다시피 후자의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마다 관계를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이 다 다른 것 같다. 이십 대 초반만 하더라도 인맥을 넓히는 데 참 애를 썼었는데, 본래 나는 그렇게 많은 관계를 수용할 그릇이 못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관계에 힘들어했던 거겠지. 나는 관계의 그릇이 작다. 그걸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현재 볼 사람만 보니까 참 마음이 편하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마음을 쏟을 수 있어 참 좋다. 진즉에 왜 그러지 못했을까.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자주 보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이번 주에 ‘A’를 봤으면 다음 주에 ‘B’를 보고, 그 다음 주에 다시 ‘A’를 보는 식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상태에 진즉 싫증을 느껴 모임을 찾아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했을 텐데 이젠 그러고 싶지가 않다. 이미 모임은 지겨울 대로 다녀봤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끔 일상에 환기가 되곤 하지만, 말 그대로 가끔일 뿐이었다. 이제 비로소 내게 맞는 관계의 폭을 찾았다. 그 폭을 넘어서면, 나는 자동적으로 피로감을 느꼈다.
먼저 연락하지 않는 사람은 이제 완전히 걸러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고 만나면 썩 즐겁더라도, 받을 줄만 아는 사람과는 관계를 맺기 싫었다. 관계는 기본적으로 양방향이었다. 일방적인 관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데 받기만 하는 사람은 꼭 받기만 하더라. 그런 사람에게 내가 뭐하러 시간을 써.
나는 주로 연락하는 사람 외에는 카톡 프로필을 다 ‘숨김’ 처리한다. 그러다 보니 내 친구목록에는 가족 제외하고 여섯 명밖에 뜨지 않는다. 물론 이마저도 시시때때로 바뀌었다. 그러나 나는 현 상태에 만족했다. 내가 집중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명확해 좋았다. 친구의 수가 뭐시 중헌디. 만나면 즐겁고, 소중함을 공유하고, 더할 나위 없으면 된 거지. 불확실한 ‘100’명보다 확실한 ‘6명’이 내게 훨씬 안정감을 주었다. 이제 그 안정감이 좋은 건, 꼭 나이가 들어서일까.
2018.05.14.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