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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Aug 15. 2018

[감성에세이] 나에게 맞는 삶을 산다



"자신에게 맞는 수준으로 자신만의 삶을 사는 것이 어쩌면 더 행복한 삶 아닐까. 가지지 못한 것에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확실히 가진 것에 충족하는 것이 더 나은 삶으로 여겨진다." -[감성에세이] 나에게 맞는 삶을 산다 중






내 나이 스물일곱에 말이 점점 줄어든다. 대화보다 침묵이 더 좋다. 이제 굳이 애써가며 사람들 있는 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우려 하지 않는다. 말을 하고 싶지 않으면 그냥 입을 닫는다. 그럴 때면 가끔 상대방에게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듣곤 한다. 아무렴 상관없다. 나는 굳이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을 뿐. 상대방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일절 관심 없다.    


  

최근에 그런 말도 들은 적 있다. 왜 네가 먼저 사람들과 거리를 두느냐고. 이왕이면 친하게 지내라고. 그런데 그러기 싫다. 앞서 말했듯, 괜한 데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그것이 거리를 두는 행동이라면 그 사람 말이 맞다. 나는 사람들과 적정한 거리를 두고 싶다. 그래야 피곤하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니까. 나는 내 능력에 맞는 관계를 맺고 있을 뿐이다.     


 

현재 내가 애정과 관심을 쏟을 수 있는 관계는 몇 안 된다. 가족을 제외하면 친한 형 둘, 동네 친구 하나 정도다. 그들을 만나면 나도 보따리 터지듯 원 없이 이야기를 쏟아낸다. 매우 신나게, 마구 웃으면서. 그동안 침묵을 지키면서 쌓아온 이야깃거리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직장 사람들을 적당히 흉보면서 여자 얘기도 하고, 예전 추억거리도 하나씩 꺼내면 그렇게 재밌다. 나는 그들을 만나면 아껴왔던 에너지를 모조리 분출시킨다.      



그만큼, 솔직히 관계에 지친 상태다. 무엇 때문에 지쳤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원래 이 정도의 좁은 관계만 유지할 수 있는 그릇이었는데, 그간 지나치게 도를 넘고 있었는지 아니면 알게 모르게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가 축적되어 왔던 건지. 나와 잘 맞는 사람이라면 지금이라도 내가 먼저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에게 굳이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다가오는 상대방을 억지로 밀어내는 모양새라도 어쩔 수 없다.   


   

관계에 있어 쌍방향적인 노력을 굉장히 중시하는 편이지만, 사실 그것을 뛰어넘는 일종의 궁합은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이미 노력의 여부와 관계없이 나와 상대방의 인연은 정해져 있다. 그 말은 즉슨,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관계가 있고, 상대방이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관계가 있으며, 서로 노력해도 되지 않는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상대방과 내가 어떻게 될 사이였다면 짧은 순간에 이미 판가름 났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애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고.    


  

최근 일주일 만에 헤어진 사람이 있다. 말하기도 부끄러운 기간이다. 그녀가 미안하다며 이별을 통보해왔다. 나는 애써 붙잡지 않았다. 어차피 나도 그녀에 대한 마음이 바로서지 않았을 때였으니까. 사귀기 전 우리는 한 삼 주 정도 썸을 탔고, 나는 그녀가 참 나와 잘 맞고 배려가 깊은 사람이라 느꼈었다. 그때 나는 배려가 깊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물론 지금도. 내가 말하는 배려란 무작정 상대방이 무언가를 해주길 기대하지 않는 마음. 반대로 먼저 자신의 따뜻한 마음을 전할 줄 아는 마음. (웃음). 나도 내 주제 이상으로 너무 원대한 걸 바라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아무튼 나는 그녀가 그런 사람인 줄 알고 먼저 호감을 표시했고, 사귀기로 했었다.      



결과는 일주일 만에 헤어졌다. 역시나 내 바람은 이상에 그쳤고, 결정적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이 없었다. 나도 사귀는 순간부터 우리가 서로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만나는 순간엔 연락도 잘 해보려 하고 자주 만남도 가지려 노력했다. 하지만 박원의 노래처럼 사랑은 ‘노력’으로 되지 않았다. 그냥 맞지 않은 사람 둘이 만난 것일 뿐. 그렇게 나의 짧은 연애사에 한 사람을 추가했다.     


 

현재 나는 나의 관계에 만족한다. ‘내 사람’들도 시간이 부족해 만나지 못하는 지경이다. 그들을 챙기는 것도 버겁다. 사람은 자신이 바라는 것과 가지고 있는 것의 간극을 잘 알지 못한다. 분명 내가 유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폭은 이 정도인데, 바라는 건 마당발이고 ‘인기맨’이다. 그 차이를 자각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끊임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체력의 한계에 부딪칠 것이다. 나도 내가 바랐던 건 마당발이었다. 전화번호부엔 각계각층의 사람들 번호로 넘치고, 저녁만 되면 나를 찾는 연락으로 들끓길 바랐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던 적은 역시나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그런 상태를 버텨낼 재간도 아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수준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그 수준에 맞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누구는 노력이 부족해 이루지 못하는 것이라고 꼬집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이 할 수 있는 그 노력의 수준 또한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에게 맞는 수준으로 자신만의 삶을 사는 것이 어쩌면 더 행복한 삶 아닐까. 가지지 못한 것에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확실히 가진 것에 충족하는 것이 더 나은 삶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가진 것이 별로 없다고 슬퍼하지 말자. 어차피 그래봤자 내가 가진 건 달라지지 않는다. 




2018.08.15.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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