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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Aug 22. 2018

[감성에세이] 나도 하루빨리 그 속에 뛰어들고 싶다




"피하지 않겠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랬고, 아버지, 어머니가 그랬듯, 나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모든 의무를 당당히 짊어진 채 품격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런 가운데 끊임없이 나만의 길을 파고들어 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인물로 거듭날 것이다. 좁게는 부모로부터의 독립, 넓게는 자유의지 실현이라 정리할 수 있겠다." -'[감성에세이] 나도 하루빨리 그 속에 뛰어들고 싶다' 중에서






[감성에세이] 나도 하루빨리 그 속에 뛰어들고 싶다




대학교 졸업한 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한 지도 팔 개월에 다다른다. 집, 일, 집, 일,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시간의 흐름이 매우 빠르게 느껴진다. 네 달 남은 올해도 이대로 금세 지나갈 것 같다. 



아직 나는 ‘그 속’에 뛰어들지 않았다. 반만 걸친 상태다. 일하는 곳에서 어떠한 업무도 책임지지 않으며 그저 시키는 일만 소화한다. 여섯 시가 땡-하면 가장 먼저 사무실을 빠져나오는 게 나다. 나에게 맡겨진 업무도 그다지 많지 않아 근무시간 여덟 시간 중에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도 상당하다. 빈 시간엔 주로 책을 읽거나 웹 서핑을 한다. 그런다 한들 누구 하나 내게 핀잔을 주지 않는다. 나는 아르바이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시간을 나름 즐기고 있다. 처음엔 눈치를 많이 봤는데 이제 (아르바이트 치고) 고참에 속하기 때문에 대놓고 책을 읽는다. 덕분에 책도 많이 읽었다.



같은 팀 대리님은 내게 올해까지 함께하자고 권유를 했다. 업무는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빠지면 꽤나 공백이 드러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내게 나쁜 제의라고만 할 수 없었다. 집에서 걸어 오 분 거리 직장을, 게다가 반쯤 노는 듯한 업무 강도의 일을 다른 데서 찾기란 굉장히 어려웠다. 장담하건대, 아르바이트계(?)에서 최고의 ‘꿀알바’가 아닌가 싶다. 요즘 같은 시대에 최저시급에 주휴수당까지 챙겨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네 달째부터 시급이 천 원 정도 오르기까지 했다. 그 정도면 월급으로만 따졌을 때 웬만한 중소기업 초봉보다 많았다. 



한데 나의 마음은 이미 그곳을 떴다. 그곳이 싫어서가 아니라 이제 나도 당당히 ‘그 속’에서 놀고 싶기 때문이다. 반만 걸친 상태로 남들 다 일하는데 나만 ‘깍두기’ 같이 있는 게 나이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물론 스물일곱 살이면 아직 어린 나이이다. 그런데도 나는 하루빨리 ‘그 속’에 뛰어들고 싶다. 



사원으로 취업을 한다면 지금보다 업무 강도는 서너 배 세질 것이다. 일하는 곳도 지금보다 훨씬 멀어질 것이다. 출퇴근 시간 사람들로 숨 막히는 대중교통을 날마다 이용해야 할 것이다. 야근도 밥 먹듯이 할 수도 있다. 또 지금보다 블로그에 신경을 못 쓸 수도 있다. (이것만은 피하고 싶다) 모든 면에서 봤을 때 지금보다 삶의 질이 큰 폭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속’에 뛰어들고 싶다. 대기업이 아니어도 좋다. (이미 그럴 듯한 기업은 포기 상태다) 나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환영이다. 중소기업부터 차근차근 나의 경력을 쌓아 높은 곳까지 올라가고 싶다. 그래서 나의 전문 능력만으로 여기저기서 부름 받는 수준 높은 일꾼이 되고 싶다. 내가 속한 조직의 이름값이 아니라 내 전문적인 능력으로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싶다.



내가 뛰어드려 하는 분야는 ‘온라인마케팅’이다. 콘텐츠 개발과 SNS 운영을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마케팅. 개인 블로그를 운영한 지도 삼 년이 넘었고, 그간 꾸준하게 연구하고 포스팅한 결과, 어쩌다 보니 진로도 블로그 관련 분야로 정하게 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이 분야로 뛰어들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사람의 운명이란 그래서 참 예측하기 어려운 것 같다.



물론 아직까지 다짐에 그친다. 내가 온라인마케팅 분야로 나아갔다가 힘들다고 금방 뛰쳐나올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도 그나마 나의 장점 중 하나가 ‘성실함’이니 어디든 끈기 있게 다닐 거라 스스로를 믿어본다. 첫 직장이 매우 중요한 만큼, 큰 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뛰어난 재능이 없다면, 나의 재능만으로 먹고 살 수 없다면, 사실 일을 즐기면서 한다는 건 꿈같은 얘기다. 남의 일을 한다는 건 재밌을 수가 없다. 고로 나는 즐겁게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은 애초부터 버린 상태다. 어디든 버티겠다는 마음이 가장 크다. 그곳에서 인정받아 승진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래봤자 어깨 위에 책임만 늘어나는 일이었다. 



나는 ‘일’을 배우고 싶다. 일을 하러 가는 곳이니 당연히 일적인 능력을 키우고 싶다. 상사의 인정도, 회사 내 인간관계도 내겐 후차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것에 휘둘린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차가운 도시남자처럼 굴겠다는 말은 아니다. 적정한 균형은 유지할 것이다. 회식이 있으면 (자주는 힘들겠지만) 그 자리를 최대한 즐길 것이고, 나와 잘 맞는 직장 동료가 있다면 마음을 열고 다가갈 것이다. 한데 이 모든 것이 내게 후차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팔 개월 간의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며 배운 점은 일적인 관계는 일적인 관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관계는 쉽게 사적인 관계로 나아갈 수 없다. 일적인 관계로서 적정한 거리를 두어야 뒷말이 돌지 않았다. 괜히 친해져서 실수를 하는 것보다 차라리 차가운 인상을 유지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일적인 관계에서는 말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이야기하면, 나도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생과 인생의 ‘쓴맛’을 느껴보고 싶다. 돌이켜보면 왠지 나만 쉬운 인생을 산 것 같다. 그것보다 내가 의도적으로 그러한 삶을 갈구해왔단 생각이 든다. 현실을 뒤로 한 채 이상에만 사로잡혀 꿈만 꾸었다. 더는 그러면 안 되겠다는 현실자각이다. 나도 이제 ‘사람’이 되고 싶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길을 나도 피하지 않고 지나고 싶다. 그래야 청소년 티를 벗고 진정한 ‘어른’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피하지 않겠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랬고, 아버지, 어머니가 그랬듯, 나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모든 의무를 당당히 짊어진 채 품격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런 가운데 끊임없이 나만의 길을 파고들어 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인물로 거듭날 것이다. 좁게는 부모로부터의 독립, 넓게는 자유의지 실현이라 정리할 수 있겠다.     




2018.08.22.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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