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2일. 올 한 해를 정리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다. 물론 아직 한 달하고도 열흘 정도 남아 있지만, 내 마음은 이미 한 해의 끝에 서 있다. 올해 나는 무엇을 했을까.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났고 누구와 이별했을까. 돌이켜보니 참 많은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누군가 올해를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돌이키고 싶은 순간도 여럿 존재하지만 그렇다 해도 나는 꽤 유의미한 한 해를 보냈다.
지난 2월 정든 대학교를 떠나면서 그동안 학교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무척 궁금했다. 원래 멀어지면 그 존재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던가. 일단 나는 그곳이 무척 그리워질 줄만 알았다. 그리고 그 그리움을 오래 이기지 못한 채 금세 학교로 돌아가 재학생인 마냥 캠퍼스를 기웃거릴 줄 알았다. 그러나 올해, 단 한 번도 학교를 찾지 않았다. 푼돈이지만 돈을 벌고 있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고 전보다 여유로워진 생활에 만족했기에 대학교가 그립지 않았다. 대학생이었다면 또 돈에 허덕였을 테고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아야 하는 처지를 날마다 비관했을 테니까.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의 현실이 늘 감사하기만 하다.
올해 참 많은 사람을 새롭게 만났지만 그 인연이 지금 이 순간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만남과 헤어짐이 그 어느 때보다 명확했던 한 해였다. 이제 새로운 인연과 깊어지는 일이 드물어졌다.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는 노력도 전보다 현저히 줄어들었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싶어 한 모임에 들어갔던 적이 있지만 결국 그들과의 인연도 오래가지 않았다. 때론 그러한 현실이 답답할 때도 있다. 이제 새로운 인연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 하나가 생겨버린 걸까. 아니면 가까워지기엔 우리의 일상이 너무 바빠진 탓일까.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단 증거일까. 그렇게 된 이유를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확실한 건 전보다 사람에게 시간과 마음을 쓸 여유가 없어졌다는 것. 그것이 꼭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 때문만은 아닐지라도 무엇인가 마음의 여유가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저 나 하나만으로 벅찬 사람이 되었다.
올 한 해를 돌이켜보며 생각나는 한 사람을 꼽으라 하면 나는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나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긴 이는 그리 많지 않지만 그래도 한 사람이 불현듯 떠오른다. 나의 첫사랑. 이젠 첫사랑이라고도 말하기 어려워진 그 빗나간 인연의 주인공. 오래 끌고 왔던 그녀와의 인연은 올해 최종적으로 끝이 났다. 이미 그 일은 올해 초에 일어난 것이지만 그동안 나는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 글로 옮기지 못했다. 슬픈 것을 뛰어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했던 일이기에. 첫사랑의 기억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었는데 그녀와 인연이 틀어지면서 그 기억까지, 좋았던 순간까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첫사랑이란 그저 내게 원래부터 없던 것이 되어 버렸다.
일주일. 그녀와 내가 연인으로서 만난 기간이다. 아니, 연인이라 하기에도 부끄러운 기간이다. 그녀가 전화 통화로 울면서 그만 만나자는 말을 꺼냈을 때, 나는 그녀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커플에겐 허락되지 않는 금기어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확고했다. 연애 초면 사랑에 불타야 하는데 너는 너무 평온하다며, 자신을 진정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며 나를 밀어냈다. 일주일 동안 내가 무엇을 보여줬는지조차 바로 떠올리기 어려웠다. 나를 보여주기엔 턱없이 부족했던 시간이란 것밖에.
그녀를 좋아했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만 전과 다른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사랑의 크기였다. 나는 그녀를 처음 좋아했던 그때보다 사랑의 크기로 따지자면 반의 반 정도밖에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스물두 살의 군인이었고, 그녀가 첫사랑이었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저녁 15분 동안의 통화에 목숨을 걸었고, 주고받았던 편지, 사소한 표현 하나에 울고 웃었다. 세상이 그녀로 움직인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던 시절. 어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단순하게 비교할 수 있을까. 사랑의 크기가 그때보다 작다 해서 내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은 것이라고 누가 단정 지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나는 그녀에게 차인 것보다 첫사랑의 기억을 잃은 것이 더욱 아리게 다가온다. 그 기억의 가치는 세상 그 무엇보다 크고, 확실한 건 일주일의 연애보다 훨씬 소중했기에. 그 기억이 아무것도 아니게 된 것이 나는 정말 슬프다.
누군가를 만나고 가까이 지내는 것이 나는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 왜 나만 평범한 연애가 힘든 것일까. 남들처럼 지지고 볶고, 싸우고 화해하고, 웃고 사랑하고, 그런 기본적인 연애 과정이 왜 나는 늘 어렵고 견디기 힘든 걸까.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가장 평범해야 하는 얼굴로 태어나 평범하지 않은 행동과 생각을 하는 내가 무척 한심스럽다고.
다행히 올해 막바지에 나는 귀한 깨달음 얻었다. 주는 행복이 받는 행복보다 더욱 크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늘 사랑받으려고만 몸부림쳤지, 마음을 주더라도 그것을 돌려받지 못하면 관계를 끝낼 생각만 했지, 온전히 그것을 주려고만 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늘 사랑받지 못해 안달난 사람처럼 모든 관계를 계산적으로 해석했다. 너는 얼마만큼 나에게 주었으니 나도 이만큼 주는 것이라고. 너는 나에게 준 적이 없으니 나도 주지 않는 것이라고. 그 피곤한 일을 나는 오랫동안 해왔다. 내게 나름의 변명은 있다. 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처절한 발버둥이었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사랑을 받으려 하면 할수록, 주고받는 것을 따지면 따질수록, 결국 피곤해지는 건 나뿐이었다. 받아도 되지 않는 상처를 받고, 괜한 데 감정 소비를 해야만 했다. 그냥 주기만 하면 되었을 것을. 주는 데 마음을 쏟으면 상대방의 반응과 관계없이 따듯함을 챙기는 건 나였다. 주변 사람을 챙기는 기쁨, 따듯한 말 한마디로 전해지는 온기, 그것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그것을 여태 모르고 살았던 걸까.
어떻게 해야 주위 사람에게 나의 마음을 전할까 고심해보니 별로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만큼 나는 상대방을 위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에게 호의를 베풀겠다는 뜻은 아니다. 마음이 가지 않는 상대에게까지 마음을 전할 여유는 이제 내게 없다. 나는 현재 마음이 가는 상대에게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 사람이 부담스러워하지만 않는다면 그의 반응과 관계없이 호의를 베풀려고 한다. 그것이 내가 마음 충만해질 수 있는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누군가를 위하겠다 말하면서 그것의 대가로 따듯함을 얻으려는 나의 행태가 여전히 계산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스스로 여긴다. 그러나 그것이 습관이 되면, 베푸는 것의 진정한 보람을 느끼게 되면, 나의 마음이 진심이 되지 않을까.
그저 나는 사람 사는 곳에 살고 싶을 뿐이다. 따듯함이 오가고, 인간적인 호의가 넘치는 그런 세상. 그러기 위해 내가 먼저 내 주변을 온기로 가득하게 만들고 싶을 뿐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따듯함을 얻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올해가 이대로 끝이 나도 나는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올해를 충분히 열심히 살았고 많은 일을 해냈다. 이룬 것 중 딱 두 가지만 꼽으라면, 블로그의 성과를 보인 것. 그리고 취업에 성공한 것이 될 것이다. 나는 이미 심정적으로 올해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스물여덟 살의 나를, 2019년의 나를 받아들였다. 그저 내년엔 올해보다 주위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전할 수 있기를, 나의 소중한 사람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를, 나의 생활에 안정이 찾아오기를, 많은 부분에서 성숙하기를, 나의 삶을 꿋꿋이 살아가기를, 오직 빌 뿐이다.
2018.12.18.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