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이 왜 지금까지 뜨지 않은 건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고수리의 에세이,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작품성으로 따진다면 그 어떤 책보다 표현력과 완성도가 좋은 책인데 이 책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 마음도 있다. 혹여나 내가 이 책의 리뷰를 씀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의 존재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 그러면 정말 기쁠 것 같다. 고수리 작가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혹시 감성적이고 따듯한 에세이를 찾고 있었다면 마땅히 이 책을 추천 드린다. 감탄해 마지않을 책이다. -20대 책 추천, 에세이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리뷰.
나도 평소 에세이를 즐겨 쓰곤 한다. 그렇기에 그녀가 쓴 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나는 알고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말에만 몰두하게 된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상대방을 이해시키려는 노력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우선하게 된다. 자칫 나의 생각에만 빠지기 쉽다. 그런데 글을 쓰는 행위는 감정과 생각의 모양을 다른 사람이 알아보기 쉽게 그려나가는 것이다. 결국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말을 상대방에게 완전히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내 할 말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한데 작가 고수리는 자신이 겪은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한다. 독자 입장에서는 그 상황이 실감나게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작가의 감정까지 온전히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그녀의 글을 읽으면 그냥 마음이 편안해진다. 따듯함이 마음 위로 스멀스멀 올라온다. 배우고 싶은 능력이다.
작가 고수리는 아마 소설을 써도 잘 쓸 것이다. 표현력이 너무 좋아 이 책이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라 해도 믿겠다. 과거의 기억을 장면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게 신기하다. 작가가 실제로 겪었던 경험인지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그 정도로 글의 수사는 완벽에 가까웠다. 아니, 여기서 다시 드는 의문.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왜 안 뜬 거지.
글에 비춰진 작가의 인생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매일 같이 술에 취해 들어오는 폭력적인 아빠. 그럴 때면 늦은 밤 엄마, 동생과 함께 피난을 가다시피 집을 도망쳤던 지난날. 친구들과 정든 고향을 떠나 전라북도로 전학을 가게 되었던 학창시절. 금전적인 문제로 취업에 성공하고도 고시원에 살아야 했던 20대 시절. 단편적인 사실만 보면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인생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불우하지 않았다. 그녀가 써내려간 글의 색채는 결코 어둡지 않았다. 어둡고 슬픈 이야기도 그녀는 밝고 아름답게 써내려갔다. 그래서 그녀의 삶이 그렇게 불우하지 않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혹 그런 게 아닐까. 그녀는 어린 시절 누구보다 힘들고 괴로웠지만 그때를 좋게 생각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이라고.
아무튼 글만 보면 그녀의 삶은 결코 어둡고 슬프지 않았다. 그래서 한편으로 삶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가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아픈 기억은 아프기만 한데 그녀는 아프지 않다고 스스로 주문을 외는 것 같았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말해줘야 내가 그 감정에 공감하고 애틋한 마음이 샘솟을 텐데, 마치 남에게 일어난 일처럼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가 어색하고 괴리감이 느껴졌다.
나의 삶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매일 같이 사람들끼리 하하 호호 웃음을 주고받지도 않는다. 아침에는 그저 출근을 하느라 바쁘고 하루 종일 아무 생각 없이 일하고 저녁이 되면 퇴근을 해서 집에서 쉰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새로움은 극도로 적어지고 어떤 일에 의해 감정이 오르내리는 경우도 줄어든다. 그냥 이게 인생인가 싶은 순간도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온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여기며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를 보면 하루하루가 예쁘기만 하다. 그녀의 일상엔 정감과 사랑이 넘친다. 삶이 다채롭다. 내가 에세이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작가의 글에 인간의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작가가 했던 지난날의 과오와 실수가 자연스럽게 표출되면서 나의 지난날이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감정의 기복도, 사랑의 아픔도 공감이 가 힘이 났다. 그러나 작가 고수리의 글은 그러한 인간적인 면이 부족했다. 그저 나와는 다른 사람 같았다. 그래서 그녀의 감정에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를 읽으면 마음이 따듯하게 달아오른다. 따듯한 그림책을 읽는 것처럼 뭉클함과 사랑스러움이 깃든다. 그녀의 삶처럼 늘 따듯하게 살 수는 없더라도 그녀의 책을 읽으며 마음 따듯해질 수는 있다.
그녀는 2015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 수상자다. 지금도 브런치에서 활발하게 작가 활동을 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은 두 번째 읽는 것인데 생각해보니 그녀의 브런치를 구독하고 있지 않았다. 왜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내가 무지했다. 그녀는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녀의 행보에 앞으로 관심을 가져야겠다. 내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더욱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미처 잊고 살았지만 삶의 무대에서 누구 하나 주인공이 아닌 사람은 없었다. 그저 좋아서 하는 일, 소박하게 살아가는 일상, 웃는 목소리에 느껴지는 진심, 따듯한 말 한마디에 벅찬 행복, 먹먹한 눈물에 담긴 희망, 그런 소소하지만 소중한 가치들을 알아볼 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진솔한 삶이 펼쳐졌다. 그랬다. 살아가는 우리는 별로 특별할 것 없는, 가장 평범한 주인공들이었다.
아무래도 나쁠 것 없다. 첫눈에 반하든, 자꾸만 봐야 맘에 들든, 처음부터 풍덩 빠져버리든, 서서히 물들어가든, 어쨌든 그건 사랑이었다.
어둠 속이 너무도 희미해 잘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가 있으니까.
2018.11.17.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