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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Nov 10. 2018

최은영의 단편소설 모음집
<내게 무해한 사람>



나는 현실적인 소설을 좋아한다. 실제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 현실의 사람처럼 그 사람만의 개성을 지니고 있고 뚜렷한 허점을 안고 있는 인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다 읽고 나서도 특정 인물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도는 입체적 소설이 좋다. 그것은 아마 소설로나마 사람의 진심을 느끼고 싶은 나의 소망 때문인지 모른다. 같은 이유로 에세이 장르를 유난히 좋아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은영의 단편소설 모음집 <내게 무해한 사람>은 캐릭터 구성이 현실적이지 않다. 그래서 사실 인물들에 깊이 공감하지 못했다. 단편적인 이미지만 내보일 뿐 살아 숨 쉬는 사람 같은 느낌은 주지 못했다. 작가는 인물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단편적인 사실만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얕은 공감과 상황 묘사가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켰다.     



그런데도 소설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상위권의 자리를 지켰던 것에 의문이 생겼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마케팅의 승리였다고 생각한다. [문학동네]라는 거대 출판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소설의 흥행을 가져왔던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작품성이나 재미가 있는 책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쓰다 보니 본의 아니게 과격한 평을 쓰게 되었다. 애정을 담아 썼을 저자에게 한편으로 송구스러운 마음이다. -2018년 6월 30일 출간된 최은영의 단편소설 모음집 <내게 무해한 사람> 책리뷰.        


  



# 최고-모래로 지은 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는 총 7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 가장 깊게 읽었던 파트는 네 번째 단편소설 ‘모래로 지은 집’이다. 이 책에서 가장 분량이 길기도 한 소설이다.      



‘모래로 지은 집’은 동갑내기 공무와 모래, 선미가 서로 친해지는 과정과 이들을 둘러싼 미묘한 갈등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SNS 친구였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되는 해 실제로 만나 친해졌고 한동안 매우 가깝게 지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나는 몇 가지 상황에 공감을 했다. 하나는 모래의 일방적인 호의였다. 그녀는 공무, 선미와 낯선 관계였음에도 지속적으로 먼저 연락을 했고 만남을 주도했다. 그런 노력이 있어 결과적으로 그들은 가까운 관계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쉬운 행동은 아니었다. 상대방의 방어적인 반응에도 상처를 받지 않고 꾸준하게 마음을 주어야 가능했다.      



그런 모래의 모습에서 지난날의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든 관계를 지켜보고자 애를 썼던 지난날. 나의 노력이 괜한 짓에 불과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순간, 내 마음에 큰 상처가 났었다. 일방적으로 마음을 주는 것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 알기에 모래에게 동정심이 일었다. 결국 그녀도 원래 그랬던 사람이 아니라 애써 노력해왔던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나니까 더더욱.     



다른 하나는 공무의 입대였는데 이건 군대 얘기만 나오면 자동적으로 그때를 떠올리는 대한민국 예비군의 병 같은 것이다. 그때 나는 누구와 연락을 하고 편지를 주고받았는지 떠올렸다. 답답한 곳에 갇혀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큰 괴로움을 주었던 시절이었다. 공무도 그랬던 것처럼 군대는 여러 생각에 잠기기 참 좋은 곳이었다. 생각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 별로-아치다에서.

가장 별로였던 단편소설은 마지막 수록 소설 ‘아치다에서’였다. 일단 왜 브라질 사람 랄도를 주인공으로 정했는지부터 의문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인물에 대해 쓰다 보니 몰입은 자꾸 깨졌고 자세하지 못한 상황 묘사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또 하필 공간적 배경은 왜 아일랜드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작가조차 잘 모르는 상태에서 썼는데 독자들이 어떻게 그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읽을 수 있겠는가.      



솔직히 말해 하나하나가 다 엉망이었다. 주인공 하민의 직업이 간호사인데 대체 그 직업에 대해 자세히 알기나 한 것인지 그녀가 겪었던 상황에 대해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그녀가 아일랜드로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랄도가 아치다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부실했다.      



그런데 <내게 무해한 사람>에 수록된 최은영의 단편소설이 전체적으로 다 그랬다. 인물의 디테일함은 떨어지고 단편적인 이미지만 드러냈다. 나는 이런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 <내게 무해한 사람> 속 좋은 글.




나에게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영혼은 “안전제일”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헬멧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상처받으면서까지 누군가를 너의 삶으로 흡수한다는 것은 파멸. 조끼를 입고 헬멧을 쓴 영혼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벼랑 끝에 달린 로프 같아서, 단지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안도감을 준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모래도 내게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에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준다는, 나를 세상에 매달려 있게 해준다는 안심을 준 사람이. 그러나 모래에게도 내가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나는 무정하고 차갑고 방어적인 방법으로 모래를 사랑했고, 운이 좋게도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았다. 사랑만큼 불공평한 감정은 없는 것 같다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무리 둘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누군가가 비참해서도, 누군가가 비열해서도 아니라 사랑의 모양이 그래서. 




2018.11.10.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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