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감성책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정용하 Nov 25. 2018

이석원 에세이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리뷰



이석원의 신작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 그는 그 동안 어떻게 지냈던 걸까. 그의 첫 번째 에세이 <보통의 존재>가 나온 지도 벌써 어언 십 년. 30대 후반이었던 그는 어느덧 40대 후반의 중년 남성이 되었다. 나이의 변화만큼이나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의 색채 또한 크게 달라졌을 터. 3년 만에 세상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이석원이 과연 어떤 글로 우리의 마음을 달구게 할지 나는 무척 기대가 되었다.     



일 년 전쯤인가 그의 블로그를 통해 곧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고, 책 제목을 투표로 결정하던 모습도 지켜봤던 터라, 조만간 신작이 나오겠거니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늦어진 것 같다. 그만큼 완벽한 상태로 작가는 내어놓고 싶었던 것. 아무튼 신간이 나오자마자 나는 책을 사서 읽었다. 그리고 결과는 역시나 만족스러웠다. 기다렸던 건 나뿐이 아니었는지 현재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은 연일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2018년 11월 12일 출간한 이석원 에세이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리뷰.  


        



# 출퇴근길에 읽기 딱 좋은 책.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중 가장 컸던 생각은 작가가 퇴고를 참 열심히 했구나 하는 것이었다. 글의 완성도만 보았을 때 전편들에 비해 훨씬 안정되고 매끄러웠다. 글이 한층 농익었다. 그것이 작가가 나이 먹어감에 따라 글도 자연스레 익어간 것인지, 아니면 그만큼 애쓰고 심혈을 기울인 노력의 소산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석원의 글은 읽기 편하고 좋았다.     


 

사실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만 그러했던 건 아니고, 그것이 이석원 에세이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출퇴근길에 가볍게 읽기에는 딱 좋은 책이다. 그것이 쉬운 능력 같아 보여도 읽기 편하게 쓴다는 것이 글쓰기에 있어 가장 상위 능력이다. 그래서 더욱 이석원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은 이석원의 첫 작품 <보통의 존재>와 비슷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다르게 느껴졌다. 그중 가장 다르게 느껴졌던 건 앞서 언급했듯 글 자체의 농익음. 글의 완성도가 한층 좋아졌다. 한데 나는 이 점이 좋기만 했던 건 아니다. 이석원 특유의 색채가 조금은 옅어진 느낌이랄까. 글의 완성도는 좋아졌지만 특유의 일기 같은 문체는 조금 사라졌다. 굉장히 솔직하고 부드러웠는데 이제는 보통의 작가처럼 그저 글을 잘 쓰는 작가가 된 듯한 느낌, <보통의 존재>가 ‘날 것’이었다면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은 깔끔한 한정식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이번 책이 글 자체로선 더 후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역시 마음이 더욱 가는 건 <보통의 존재>였다. 물론 이번 에세이도 놀랄 만큼 솔직하다는 것은 변함없다.          


  



# 따듯한 글. 인간적이라 좋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추운 날 뜨듯한 난로 옆에 손을 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의 글은 현실적이지만, 비관적이지 않다. 애써 위로하려 들지 않지만, 크게 위로가 된다. 너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며 위로를 남발하는 여느 에세이와는 다른 질적 가치가 있다. 그는 그냥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뿐인데, 그것이 꼭 내 이야기만 같아 뜨끔하게 된다. 그의 글에 숨겨 두었던 나의 상처가 고개를 쳐들고, 그것이 너의 진심이라며 속마음이 들키게 되는 기분. 그렇게 행복한 삶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대로 살 만한 삶이라는 것을, 부족한 사람은 나뿐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느낌이다. 나는 그런 게 좋았다.      



이석원은 인간적이다. 좋은 면만 보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인데 그는 있는 그대로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낸다. 힘들 땐 힘들다고, 좋을 땐 좋다고 말한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왜 틀렸는지 하나하나 차근히 꼬집는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증오심이 아니라 충분히 상식적인 접근이라 공감이 간다.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에 끌리는 이유는 나도 그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나이, 직업, 위치에 상관없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태도. 끝까지 겉멋이 들지 않는 자세. 나의 진심을 잊지 않으려는 용기. 다른 사람을 위하는 존중과 호의. 이석원은 그 모든 것이 갖춰진 사람이었다.           





#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

아무래도 작가 이석원이 나이를 먹어서일까. 이 책에서는 유독 사랑에 관련한 일화가 전편에 비해 줄어들었다. 늘 그가 쓴 사랑 글에 마음 아파하고 지난 나를 떠올리곤 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럴 기회가 별로 없었다. 아마도 그간 사랑에 빠진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어찌 보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선 참 딜레마적 상황이다. 나도 그러한 현실이 늘 안타깝다. 누군가를 만나고 마음 아파야 역설적으로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인데, 그런 기회가 점점 줄어들어간다는 것이. 그리고 사랑을 해야 사랑 글이 나올 텐데, 사랑에 빠지는 것이 좀처럼 힘들다는 것이.      



그러나 그것 또한 나의 삶이기에 아쉬움을 갖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마찬가지로 이석원 본인도 원해서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닐 터. 그냥 지금 눈앞에 아른거리는 사람이 없을 뿐이다. 그것으로 이 책의 가치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한편 드는 생각은 그러다 보니 소재의 고갈이 찾아왔고, 그것을 찾다 찾다 쉽지 않으니 온갖 것을 다 동원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일상의 작은 순간마저 글의 소재로 만드는 것이 작가로서 당연한 행위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일상에 대한 감상이 조금은 부자연스러웠던 것도 부인하기는 어렵다. 글쓰기가 생업인 작가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리고 그것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문제 삼을 필요도 없다. 그저 작가가 했을 소재 고민이 잠시 와닿았다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속 좋은 구절.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며 내 뜻과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들. 살면서 맞닥뜨리는 무수한 어긋남. 하지만 괜찮다고. 왜냐하면 삶이란 그럴 수 있는 거니까. 모두가 같은 걸 누리면서 사는 건 아니니까.     





항시 나를 가장 오해하기 쉬운 존재는 오히려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를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안다는 그 확신에 찬 전제가 늘 속단과 오해를 부른다는 걸 알기에, 나는 누굴 안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으려 한다. 당연히 상대도 그러지 않기를 가까울수록 더 바라고. 그건 내가 복잡하거나 대단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든 몇 마디 말이나 경험으로 판단되고, 규정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과

솔직함을 드러내는 것 중

어느 게 더 어려운 일인가요.     





만약, 외로움이라는 게 사람 감정의 어떤 염증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렇듯 밖에서 사람을 만나곤 혼자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 그건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실은 내가 홀로 보내는 시간들이 내 생각만큼 충만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잘 지내고 있다고 느꼈지만 알고 보니 외로움을 애써 누르고 있었던 거다. 


    



15.

그래.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더 중요하다.     





나는 진정성이나 진심, 순수함

이런 말보다는

인간적이라는 말을 더 좋아해.

앞의 말들을 들으려면

누군가의 의구심 어린 시선을 통과해야 하지만

인간적이란 말은

사람의 결함까지 포용해주는 것이기에

좀 더 따스하고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 들거든.  


   



이 멍청아.

빠져나갈 출구를 마련해놓고

하는 사랑은 사랑도 아니다.

사랑을 예감하게 되었을 때

네가 해야 하는 것은 오직 하나.

상처투성이가 될 각오

그거면 되는 것이야.  


   



인연은 운이 아닌 노력의 소산이라 생각은 하면서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엔 언젠가 벼락과도 같은 로맨스가 찾아오길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던 걸까. 한날한시에 같은 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봤다는 우연이 맺어줄 운명 같은 사랑을? 신호등의 파란 불빛이 켜질 듯 말 듯하며 한참을 애를 먹이고 있었다.      





가령 취미 이상의 목표를 가지고 글을 쓰겠다는 사람에게 글을 잘 쓰려면 매일 꾸준히 써라, 하루도 거르면 안 된다와 같은 말들이 과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말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런 조언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미 그러고 있는 사람들,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쓰는 게 글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내가 끝내 바라던 바를 이루고, 내가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완벽한 답을 찾는다면, 그래서 이른바 결론이란 것에 다다르게 되면, 그것으로 난 더 이상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많은 것들이 불완전하고 여즉 결승선에 다다르지 못했기에 이 모든 여정이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니까.    


  



상처는 못나서 받는 게 아니라

더 좋아하기 때문에 받는 거야.

그러니 자책은 필요 없어.     






이런 것도 준다.




2018.11.25.

작가 정용하

매거진의 이전글 에세이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