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감성책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정용하 Dec 25. 2018

정재승 <열두 발자국> 리뷰



나는 맹모삼천지교란 말을 믿지 않는다. 맹자는 ‘이사’란 계기가 아니었다 해도 분명 스스로 다른 계기를 만들어 성인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바뀐 환경이 맹자를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맹자로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 사람에게 특정 환경을 만들어준다 해도 없던 것이 새로 생겨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환경에 대한 연구 자체가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정재승은 여느 과학자처럼 인간에게 일관된 행동 특성이 있다고 믿었다. 그는 사람의 특성을 성향 별로 일정하게 정리하려 했다. 사람마다 공통된 특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에 맞는 환경이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개인이 빛나기 위해서는 국가가 그 사람의 성향에 맞게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는 견해를 펼쳤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마다 일관된 특성이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사람은 한 가지의 유형으로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하고 독특한 특성을 지닌 존재다. 물론 개인에 맞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정재승이 말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다. 사람의 성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그에 맞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든 무언가를 시도할 기회와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고민할 시간적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국가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존재로 살아가도록 조립을 시도한다. 자신의 성향대로 움직이고 무언가 시도할 기회를 국가가 허락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제한적인 기회가 따른다 하더라도 시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미 어딘가에서 일을 벌이고 있다. 사실 사람의 성향을 제한한다 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성향의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태어난 팔자대로 살게 될 뿐이다.   


   

대한민국에 타인과 비교를 일삼고, 나서기를 두려워하며, 남들을 따라하려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가져온 민족 특수성도 있겠지만, 그저 우리 개개인의 특성이 그러한 것뿐일 수도 있다. 그냥 그런 생각을 해봤다. 내가 외국에서 태어나 외국 학교를 다녔다 해서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됐을까, 하는 생각. 물론 사고방식, 문화적 태도 등에서 일정 부분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어디서 태어났든 나는 나였을 것이다. 내가 지구 반대편에서 태어나 살았다 해도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아갔을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아무튼 <열두 발자국>에 드러난 정재승의 견해와 나의 것이 다른 부분이 많아 읽는 내내 반박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 지극히 상식적인 선.

<열두 발자국>에는 다양한 실험이 소개되고 있다. 그것을 보면 과학자는 참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 실험이 정재승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결정장애’와 관련된 실험을 여럿 소개하고 있지만, 그것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외국 사례를 가져와 우리나라의 현실을 논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각 나라마다 현실과 상황이 있는 법인데 단순히 실험 사례로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게다가 정재승이 <열두 발자국>에서 주장하는 바는 지극히 상식적인 선 위에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 잦은 실패에도 쉽게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나 공부를 노는 분위기 속에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이미 그러한 정도의 문제 인식은 일반 사람들의 뇌에도 다 심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좋은 제도와 환경이 왜 쉽게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의 주장은 현실적 고려 없이 지극히 학문하는 사람 입장에서 바라본 시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냉철한 현실분석과 자기만의 주장이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그렇게 새롭거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책 표지에 나와 있는 것처럼 ‘생각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신선한 지적 충격’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 과학을 쉽게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열두 발자국>이 좋았던 이유는 내가 기피하기만 했던 과학을 쉽게 풀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설명하는 과학은 어렵지 않다. 물론 과학적인 지식이 많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이는 분명 정재승만의 능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반 사람들은 과학자가 아무리 과학을 쉽게 이야기한다고 해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과학을 기피한다. 과학의 ‘과’자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정재승이 이야기하는 과학은 재밌다. 그가 소개하는 실험은 흥미롭다. 그것이 전체 과학의 티끌만치도 안 된다고 해도 나는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러한 시도조차 한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미래가 융합사회라고 한다면 분명 정재승과 같은 사람이 가장 높이 평가될 것이다.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로 거듭날 것이다.   


        



# 창의력에 관해.

나는 개인의 창의력이 개발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원래부터 갖고 태어나는 것이지 결코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결과는, 그 원래부터 갖고 있던 것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 모든 사람이 창의적인 사람이 될 필요가 있는가. 꼭 그런 사람이 돼야만 미래 사회에 살아남을 수 있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어느 사회든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기업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밑에서 묵묵히 따라가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 둘을 똑같이 창의적인 사람으로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 자신에게 맞는 영역이 있을 뿐이다.      



<열두 발자국>의 정재승은 창의력이 교육을 통해 개발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보았다. 어떻게 해야 인간의 창의력이 배양될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접근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모든 사람이 창의력 있는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 다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은 다르고, 그것에 꼭 창의력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단순 노동에 특화돼 있는 사람을 보고 창의력을 훈련시킨다면 그것은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교육이 될 것이다. 창의력 있는 사람은 사실 교육이 없이도 어딘가에서 이미 두각을 나타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그 사람의 타고난 기질이기 때문이다.          




# <열두 발자국> 속 좋은 글귀.




여기에도 뇌과학이 들려주는 삶의 성찰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다니는 학교가 너무 싫어서, 지금 다니는 회사가 싫어서 그만두는 건 좋은 의사결정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건 괜찮지만, 지금 이게 싫으니까 그만두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진다는 보장은 없거든요. 대책도 없죠. 그 순간 너무 싫기 때문에 도망치듯 그만두지만, 그 자체가 보상이 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만두는 순간, 자기가 가질 수 있는 전략이 다시 바뀌게 됩니다. 무직 상태이거나 학교도 안 다녀서 빨리 뭔가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 앞에서 본 마시멜로 챌린지의 인센티브 실험처럼 시야가 좁아지고 취직 자체가 중요해져버려 꿈꾸던 무언가에 도전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터널 비전 현상이 벌어지는 거죠. 지금의 자리가 싫다면, 뭘 꿈꿔야 할지 계속 고민하면서 대안을 찾는 자세가 필요합니다.p45     





우리 모두에게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저 사람이 저걸 믿는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나와 다른 의견과 미적 취향에 너그러워야 합니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을 재고하고 늘 회의하고 의심해보는 사람, 그래서 결국 자기객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p53     





박웅현 TBWA 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읽고 “스티브 잡스는 천재가 아니다. 단지 집요할 뿐이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곧 ‘어떤 발상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것이 창조성이다’라는 뜻이라고 봐요. 처음에는 어딘가 좀 부족한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꾸준히 침착하게 전략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세상에 아이디어는 너무 많아요. 하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통합하는 능력을 갖는 것은 쉽지 않아요. 천동설이 난무할 때 지동설을 발표한 코페르니쿠스처럼 끝까지 끌고 나갈 수 있는 ‘견디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넓게 보면 ‘크리에이티비티는 천재에게 나온다’, ‘유전자에 의한 것이다’라는 말은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p387    


 



아인슈타인은 평생 발표한 논문이 23편입니다. 제가 이미 쓴 논문만도 50편이 넘으니, 논문 개수로만 본다면 아인슈타인은 무능한 과학자죠. 하지만 그의 논문 23편 중 노벨상을 받을 만한 게 6편이래요. 세상에 내놓은 것이 많지 않지만 하나하나 내놓을 때마다 심사숙고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걸출한 논문을 쓴 거죠. 하지만 피카소는 손대지 않은 미술 장르가 없어요. 그의 작품 수는 4000점이 넘는대요. 하지만 비평가들이 냉정하게 평가해 피카소의 이름에 걸맞은 작품이라고 선정한 건 40점 정도래요. 4000점 중 40점. 1퍼센트밖에 안 돼요. 그런데 그 40점이 아주 훌륭한 거죠. 정리해보면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창조적 업적을 시도하지만 가끔 좋은 게 나오고, 어떤 사람은 심사숙고해서 몇 작품만 내놓지만 그게 다 수작으로 평가받는 거예요. 단순히 결과물만 보고 “저 사람은 천재야. 정말 창의적이야.”라고 말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스쳐 지나간 일에서 저 사람은 어떻게 저걸 발견하고 해석했을까’에 중점을 두어야 해요.p388




2018.12.25.

작가 정용하

매거진의 이전글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