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은 이 사회에서 합리적 개인주의자로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또는 어떤 사고를 가져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책이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의 대부분을 지지한다. 그의 말이 옳아서가 아니라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자의 삶을 꿈꾼다면 이 책이 훌륭한 지침서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2015년 9월 23일 출간한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 추천사.
나는 세상이 아무리 비리와 불법으로 얼룩진다 해도 법관만큼은 그것과 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무너져 가는 정의를 바로세울 수 있는 마지막 존재가 법관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말 국가적 위신을 떨어뜨린 현직 대통령을 최종적으로 끌어내린 존재도 법관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그들의 권위에 감탄하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물론 그런 법관들도 최근 불법적인 행태가 드러나면서 많은 실망을 주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살면서 큰 일탈을 저질러본 적 없는 나로선 판사를 만날 일도, 그들의 생각을 들어볼 일도 없었다. 그들이 어떤 소신으로 법관의 임무를 다하는지 일반 사람인 나로선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고 그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었다. 그것이 모든 판사의 공통된 생각이 아닐지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었다.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법관 일에 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소수의 깨어 있는 지식인들 덕분에 그래도 나라가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의란 미명 하에 그 반대 견해를 무작정 무시하고 비난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정의를 실현해 나가는 사람이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선한 의도여도 그 행위가 공격적이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결코 선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에서는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으며 저마다의 상황과 입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법에 위배만 되지 않는다면 어떤 의견이든 존중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이 옳다 해서 타인을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행위는 아무리 선한 의도여도 존중받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판사 문유석은 성숙한 민주사회에서 꼭 필요한 지식인이 아닌가 싶다. 그의 글에서는 편협한 시각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의 견해는 확고하지만 그것을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생각대로 세상이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닌 타인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것이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우리는 늘 타인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범주 안에 넣으려고 한다. 그것에서 벗어나면 상대방을 틀린 사람, 잘못된 사람이라 단정 짓기 일쑤다. 누구나 다 각자의 사정과 성향이 있는 법인데 오로지 자신의 기준에서만 타인을 바라보고 규정짓는다. 자신의 기준에서 타인을 바라본다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나와 다르다 해서 그들을 옳다 그르다 판단내리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냥 이건 나의 방식, 저건 타인의 방식, 인정하면 아무 문제없다. 상대방이 꼭 나의 사고 범주 안에 있지 않다 해도 타인을 이렇다 저렇다 판단내리지 말고 그 자체로 두면 된다.
그렇게 생각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일상에서 겪는 많은 불편함을 줄일 수 있다.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나와는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일에서 오기 때문이다. 나와 관련 없는 일에 관심을 끄기만 해도 스트레스 양은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다.
참된 지식인의 품격은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을 무지한 시민에게 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태도를 갖고 있는 지식인은 꼰대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지식인은 자신이 더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만이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틀릴 수도 있으나 자신의 견해는 이렇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지식인이고 존경받을 만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유시민이나 윤종신 같은 사람을 존경하고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데 있다. 그들은 누가 봐도 뛰어나다. 이미 한 분야에서 충분한 전문성을 쌓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의 것이 꼭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냥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이러한 것이라고 자신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시선이 다른 사람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한두 살 차이만 나도 ‘나 때는 안 그랬는데’, ‘내가 네 나이만 됐어도’ 라며 주름 잡는 사람들을 대한민국에선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겪은 것이 누구나 공통적으로 적용 가능한 인생의 혜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보는 것이 삶의 정확한 단면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나는 왜 타인이 나와 똑같은 삶을 살 것이라고 단정하는지 모르겠다. 누구나 다 각자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왜 외면하는지 모르겠다. 왜 자신의 생각만이 옳은 것이라고 확신하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니까 타인의 방식에 대해 간섭하지 말고 자신의 앞가림만 잘 신경 썼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판사는 이 시대 진정한 지식인이다. 혹자는 그의 견해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본인만 생각하면 조직의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조직 내에서 무조건 자기 성향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꼭 조직의 논리대로 개인의 사고 또한 따라갈 필요는 없다. 누구나 다 자신의 색채가 있는 것이고 절차적인 하자가 없는 선에서 자신의 색채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언제쯤 우리나라는 집단주의적 사고를 벗어던질 수 있을까. 대체 언제까지 상명하복 식의 조직 문화가 이어질까. 그러한 변화가 실제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다소 비관적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한동안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영웅이 등장해 단번에 현실 세계를 바꾸기길 꿈꾸지만, 그런 일은 현실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일에는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뿐더러 세상 일이 그렇게 간단히 선과 악을 구분 지을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아무리 선한 의도여도 그것이 꼭 선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악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세상이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해 가고 있는 중이라고 믿는다. 눈에 띌 만큼 확연한 변화는 없지만 조금씩 우리는 성숙된 민주시민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은 모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체제를 조금씩 발전시키면서 얻을 수 있는 결과이다. 그것은 한 개인이 이루어낼 수 있는 성과가 아니다.
나는 세상을 단기간에 변화시키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 개인의 능력으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세상일에 너무 많은 관심을 갖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어차피 쉽게 변하지 않을 바에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관심을 갖는 편이 낫다. 물론 그렇다고 정치에 완전히 관심을 거두는 것은 위험하다. 누군가 불법적인 행위를 하고 있지 않은가에 대해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정도의 관심이 딱 적당하다고 본다. 정치가 나의 일상에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살면서 확인하고 있지 않던가. 그러니 그저 나의 능력 범위 안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더욱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차피 사람들을 피해 혼자 살 것도 아니면서 인간의 본질적 한계, 이기심, 위선, 추악함 운운하며 바뀌지도 않을 것들에 대해 하나마나한 소리 하지 말고 사회적 동물로 태어난 존재답게 최소한의 공존의 지혜를 찾아가자. 그게 각자의 행복 극대화에도 최선의 전략일 것이다. p18
어차피 정답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어사 박문수나 판관 포청천처럼 누군가 강력한 직권 발동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악인을 엄벌하는 것을 바란다. 정의롭고 인간적이고 혜안 있는 영웅적 정치인이 홀연히 백마 타고 나타나서 악인들을 때려잡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p27
기자들은 주로 외형적 행위와 그 결과에만 치중하고 내면의 동기는 돈, 욕정, 복수심 등으로 간명하게 유형화하곤 한다. 사람들은 복잡한 사건을 쉽게 이해하길 원하고,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착한 놈인지 누구에게 분노하면 되는지 결론부터 알려주기를 성마르게 재촉하기 때문이다. 대중의 분노는 즉각적이고 선명한 정의를 요구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법관으로 일해 온 경험에 비춰보면 실제 인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 상당수는 인과관계도, 동기도, 선악 구분도 명확하지 않다. p154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코끼리를 먼저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과 맞서 싸우기보다 슬쩍 다른 길로 유도하는 방법을 택했다. 거창하고 근본적인 해결책만 고집하지 않고 당장 개선 가능한 작은 방법들을 바로 적용했고, 작지만 끊임없이 균열을 일으켰다. 영웅은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p163
2019.01.09.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