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감성극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정용하 Jan 18. 2019

일일시호일 후기,
따뜻한 차 한잔 마신 것 같은 영화



키키 키린의 생전 마지막 작품, 일일시호일. 그녀는 지난해 9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영화 <어느 가족>에서 그녀를 처음 본 뒤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 <일일시호일>까지 차례로 만나 뵀다. 그녀의 연기는 진실 됐다. 어느 역할을 맡겨놔도 완벽히 소화해냈다. 그녀의 연기에는 항상 따듯함이 묻어나 있다. 그런 그녀의 연기를 이제 볼 수 없다니 무척 안타깝다.     



일일시호일이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것이 한편 위안이 된다. 마지막 작품으로 손색없는 영화다. 영화라기보다 그녀가 전하는 인생의 마지막 가르침 같았다. ‘같은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는 그녀의 말이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말 그대로 같은 일을, 그것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이고, 행복한 일일까. 소망하기를, 나도 그러한 삶을 살고 싶다.     



일일시호일은 1월 17일 개봉한 영화로 나는 용산 CGV 아트하우스에서 관람했다. 상영관 수도 적고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지만 키키 키린의 마지막 작품이라 해서 찾아보았다. 또 개인적으로 이런 잔잔하고 담백한 영화를 좋아한다. 특히 일본 특유의 감성이 담긴 영화를 좋아한다. 일일시호일은 그런 내 취향에 딱 맞는 영화였다. 힐링 영화나 잔잔한 일본영화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를 관람하길 추천한다. 후회 없는 영화가 될 것이다.    






# 일일시호일 스토리에 대해.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특별한 스토리 없이 사람 사는 모습을 세세하게 조명하기 때문이다. 감동을 전하는 데 굳이 스토리에 힘을 실을 필요가 없다. 사람 사는 이야기만으로 충분히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오모리 타츠시 감독의 일일시호일도 그러한 영화였다. 특별한 스토리 없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여운이 짙게 남았다.     



일일시호일은 다도 영화다. 일반 사람에게 조금 생소할 수 있는데 다도란 ‘차를 달여 손님에게 권하거나 마실 때의 예법(출처-네이버 지식백과)’을 뜻한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다도에 관한 순서나 형식을 오랜 시간 다루는데 개인적으로 그것이 나쁘지 않았다. 차를 타는 동안 나 또한 마음이 차분해져 좋았다. 잔잔한 영화를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은 살짝 졸릴 수도 있겠다.(웃음)     



전체적인 줄거리는 스무 살 노리코(쿠로키 하루)가 다도를 배우는 과정, 그 다도가 그녀의 인생에 끼친 영향을 다루고 있다. 취업에도 실패하고 사랑에도 실패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것이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왈칵 눈물을 쏟아내는 그녀 옆에서 같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남들은 다 순조롭게 앞을 향해 나아가는데 왜 나만 힘든 것인지. 노리코가 느낀 감정을 요즘 나도 똑같이 느끼고 있다. 그런 우울한 상황 속에도 그녀는 다도를 멈추지 않는데 그 다도가 있어 그 시기를 조금 더 잘 이겨내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다도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           





# 일일시호일 연출에 대해.

일일시호일 연출은 오모리 타츠시 감독이 맡았다. 나에겐 생소한 감독이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특이한 방식의 연출을 하였는데 의도한 대로 메시지가 전달된 것 같다. 이번 영화의 특징은 대사 없는 공백의 시간이 상당 부분 차지했다는 것이다. 차를 타는 소리, 자연의 소리가 귀를 매우 즐겁게 했다.     



조심스럽게 예측하건대 오모리 타츠시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명상의 시간을 갖고,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길 원했던 것 같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이 자꾸 과거의 나,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했다. 주인공 노리코가 나와 너무 비슷해서 다소 우울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 심리적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조용한 공간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라고, 감독은 말하는 것 같았다. 노리코가 그렇게 이겨냈듯이.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명상한다는 마음으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면 생각 이상으로 영화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일일시호일이 영화 이상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친 마음을 치료해주는 치료제 같은 영화랄까. 따뜻한 차 한 잔 마신 것 같은 온기가 전해진다. 


         



# 일일시호일 배우에 대해.

일일시호일에서는 주인공 쿠로키 하루의 연기가 볼만했다. 스무 살부터 이십 대 중반, 삼십 대 초, 사십 대 중반의 연기를 모두 훌륭히 소화해냈다. 연출의 힘도 있었지만 배우 본인의 목소리 톤 조절이 인상적이었다. 이 배우의 경우 이번 영화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앞으로 많은 영화에서 만나봤으면 좋겠다. 올해 서른 살(1990년생)로 전도유망한 배우라 할 수 있겠다.     



키키 키린을 다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향년 76세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인생 말년에도 활발한 연기 활동을 이어갔는데 그것은 모두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특히 <어느 가족>과 <일일시호일>이 가슴 깊이 남을 것 같다.           





# 일일시호일 보고 떠올린 생각.

일일시호일의 노리코처럼, 나만 인생이 안 풀리는 것 같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남들은 모두 쉽게 거쳐 가는 삶의 과정도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느껴지는 걸까. 힘든 시기 뒤엔 좋은 날도 있을 거란 걸 알지만 현재의 힘듦이 버겁기만 하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 숨지 말고 앞을 향해 더욱 정진해야 하는데 그런 동력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노리코와 나와의 처지가 너무 비슷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이 시기를 견뎌낼 수 있는 건 그녀에겐 다도가, 나에겐 블로그가 있기 때문 아닐까. 다도를 배운 지 24년이 되던 해 노리코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듯, 나에게도 언젠가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현재의 힘듦이 딱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찾아왔으면. 이겨낼 수 있을 만큼만 힘들었으면. 훗날 이 시간을 웃고 즐길 날이 왔으면. 오늘도 나는 나를 믿고 힘차게 달려 보려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를 응원한다. 일일시호일이란 말처럼 하루하루가 좋은 날이기를 기원한다. 그래도 누구에게나 행복한 순간은 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행복하기를, 불현듯 당신에게 행복이 찾아오기를, 언제나 어디서나 안녕하기를 바란다.




2019.01.18.

작가 정용하

# 사진 출처 - 네이버 스틸이미지




매거진의 이전글 내안의 그놈 후기, 아니 이 영화가 정말 웃기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