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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Feb 11. 2019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다시 일을 구했다. 5시까지 일하는 파트타임으로. 특별히 책임질 것 없는 사무보조다. 아직 어떤 것을 책임지기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지금의 마음가짐으로는 어떤 것을 책임져도 금방 그만둘 것 같다. 무작정 참고 버티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그게 너무 어렵다. 단순 버틴단 마음으로 일한다면 그만둘 이유를 금세 수백 가지 이상 찾을 것 같다.      



파트타임은 버틸 수 있다. 어쨌든 나 또한 돈을 벌어야 한다. 언제까지 백수로 지낼 수는 없다. 확실치 않은 것에 모든 것을 투자할 만큼 내 배포는 크지 않다. 제 시간에 일이 끝나기만 한다면 나는 무슨 일이든 오래 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지금 파트타임 일을 구한 이유다.     



한데 중요한 건 출근 날짜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 그곳은 금융권 회사인데 신원조회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출근이 지체되고 있다. 원래 신원조회를 하려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걸린다고 한다. 설 전에 관련 서류를 제출했으니 오늘 내일로 결정이 나야 한다. 그런데 오늘까지 아직 소식이 없다. 먼저 그 회사에 연락해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내일이면 연락이 오겠지 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내 나이 스물여덟. 이제 뭐라도 해서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하는데 마땅치 않다. 책임지고 싶지 않은 일을 책임지기는 싫다. 언제까지 고집피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경제적 안정보다 그것이 지금 내게 더 중요한 가치다. 내가 봐도 철없는 생각이다. 사람이 어찌 원하는 일만 하고, 원치 않다 해서 무작정 피할 수만 있겠는가. 언제까지 부모가 씌워준 우산에 숨어 지낼 수 있겠는가. 한데 나는 지금, 원치 않는 일은 정말 못하겠다.     



삶이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나는 일찌감치 깨달았다. 신년계획, 3년 계획, 미래계획 미명 하에 많은 계획을 짜지만 어차피 그 대부분은 이루지 못한다. 혹자는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이루지 못하더라도 계획을 짜는 것이 조금 더 생산적이고 도전적인 태도라고.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루지 못한 것에 괜한 실패감을 갖는 것보다 조금 덜 생산적이고 도전적인 것이 낫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열심히 살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다. 이 순간, 이 현실에 집중하며 살고 있다. 나는 물 흐르는 대로 산다는 말을 좋아한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다. 어차피 삶은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삶의 과정 속에 예상치 못한 사건이 수두룩하게 터지니까. 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일이 말이다. 나로 인해 촉발되지 않은 일은 나로선 어쩔 수 없다. 그것 때문에 계획한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것은 내 능력 부족이 아니다. 그것 때문에 괜한 실패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냥 그것도 내 삶의 한 과정일 뿐. 물이 흘러가는 중에 잠깐 고인 물에 빠졌다고 해서 영영 멈추게 되는 것은 아니다. 또 어느새 충분한 비가 내려 다시 흘러내릴 수 있다.      



나는 지금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것이 꼭 수익성이 나지 않고, 남들이 보기엔 미래가 불투명해 보여도 말이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 파트타임 일을 구했다. 그렇다 해서 영영 준비만 하는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 언젠가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언제든 나는 비상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지금 준비 작업을 거치는 중이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꼭 쓸모 있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미래에 하는 일의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나 현실만 보면 나는 철없는 사람이다. 능력도 없고 꾸준하지도 않은, 매력 없는 사람이다. 누구나 다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애쓰는 와중에 혼자 자기 것만 찾아 고집피우는 외톨이다. 부모에게 불효를 저지르는 불효자다. 이성에게 어필할 만한 미래 가치도 없는 한심한 남자다. 현실의 나는 그런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친구와 꿈, 미래 이야기하는 걸 즐겼다. 친구 집에서 밤새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 적도 많다. 희망에 가득 찬 미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 안은 긍정 에너지로 넘쳤다. 그런 이야기로 밤새 나눌 친구가 있다는 것에 큰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친구가 없다. 누구나 현실만 이야기한다. 취업, 결혼, 연애, 여행 등 힘든 현실의 도피처만 찾는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순간 철없는 사람이 된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술자리에서 꿈 이야기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황홀한 기분이 든다. 무엇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보다는 훨씬 활기차지 않을까. 물론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데는 그만큼 현실의 상황이 녹록치 않은 것도 있다. 나도 그 현실을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더욱 힘든 건 현실이 아니라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일 것. 이렇게 살다 보면 그래도 어느 정도 여건을 마련하겠다, 라는 가능성이라도 보여야 현재의 불안을 조금 덜 수 있을 텐데 그런 게 실종됐다. 그 현실을 너무 잘 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현실 속에서도 나에게 맞는 것을 더욱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작정 현실을 던져 버리고 자기 것만 고집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루에 단 30분이라도 자기 것을 할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남에게 인정받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한 자유를 느꼈으면 좋겠다.


      

지금 나는 그것보다는 조금 과격한 자유를 추구하는 중이다. 내가 꼭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길을 택한 것이다. 나는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래도 무엇이든 열심히 하다 보면 어떻게든 밥 먹고 살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이것저것 시도하고 꾸준히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나저나 회사에서 연락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최종합격 시켜놓고 이렇게 열흘 동안 방치하다니. 원하든 원치 않든 당장 입에 풀칠하기 위해선 그 일을 꼭 해야 한다. 또 모른다. 그 일이 생각보다 잘 맞아서 평생 동안 그 일을 하게 될지. 나의 사소한 시도가 평생의 일이 될지. 나는 사람이든 일이든 그런 운명을 믿는다. 어찌 됐든 내 인생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 




2019.02.11.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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