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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Feb 20. 2019

모나지 않은 사람이 좋다



지난 주말, 졸업 후 1년 만에 천안을 찾았다. 그곳에서 지내던 대학 동기가 곧 방을 빼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천안 갈 이유를 만들어주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마저 없으면 나는 더 이상 그곳에 갈 일이 없다. 설마 재학생 후배님들이 나를 불러주겠어. 애당초 그들의 부름은 기대하지 않는다. 게다가 부른다 해서 내가 시간을 빼 서울에서 천안까지 갈 리도 희박했다. 그런 점에서 왠지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천안행이었다.     



천안은 그대로였다. 1년 사이 크게 바뀔 리도 만무했지만 정말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사이 내 마음만 바뀌어 있었다. 졸업 후 사회에 뛰어든 지난 1년 동안 나는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맞이했다. 가장 큰 건 사회란 육중한 무게감을 현실로 맞닥뜨렸다. 이제 마냥 가볍게만 마음먹을 수 없었다. 그만큼 나는 달라졌는데 천안은 너무 그대로여서 살짝 배신감이 들기도 했다. 예전의 그곳이 아닌 듯한 느낌. 내가 달라진 게 아니라 그곳이 변한 것이라고 우기고 싶었다. 날씨도 어찌나 지랄 맞던지. 진눈깨비가 오후 내내 몰아닥쳤다.     



우리 삼인방의 조합은 신기한 구석이 있다. 둘 다 대학교에 와서 만났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처음 봤다. 그러나 사실 한 친구는 처음 본 게 아니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는 중고등학교 동창이다. 그 친구의 얼굴은 이미 알고 있었다. 둘 다 운동을 좋아했던 터라 중고등학교 시절 운동장에서 늘 상대편으로 만나곤 했었다. 그럼에도 말 한마디 나눈 적 없었다. 한데 대학교에 와서 만나게 될 줄이야.      



다른 한 친구도 알고 보니 용산에 살았다. 근처 고등학교를 나왔다. 늘 뛰어놀던 거리를 그 친구도 누볐을 것이다. 지나가다 학교 근처에서 마주쳤을지 모를 인연이었다. 아무튼 우리가 친해진 건 단순 그 이유였다. 용산이란 공감대. 같은 동네에서 학교를 나왔다는 공통 관심사.     



사실 그렇다고 그 친구들과 자주 놀았던 건 아니었다. 대학시절 노는 무리가 서로 달랐다. 나는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대외적으로 놀았다면, 그 친구들은 몇몇 친구와 소규모로 놀았다. 그 친구들과는 그냥 어쩌다 한두 번 약속 잡고 논 게 전부였다. 용산에 살면서 용산에서 본 적도 한 번 없었다. 친하다 하기엔 다소 무엇 한 사이였다. 


     

그래도 생각이 많이 났다. 언제든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친구였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친구였다. 실제로 그들은 늘 한결같았다. 화려하진 않지만 담백함이 담긴 친구. 진지한 얘기도 웃긴 얘기도 나눌 수 있는 친구. 무엇보다 편안한 친구. 그렇게 그들을 표현할 수 있다. 그 친구들과 여전히 연을 맺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이를 먹을수록 모나지 않은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왜 이렇게 점점 상대방의 장점보다 모난 부분을 먼저 찾게 되는지. 그것을 빨리 찾아 나와 맞는지 빨리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괜한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한데 그 친구들은 모나지가 않았다. 모나지가 않았다는 건 내 주관적인 인상이겠지만, 그 친구들은 배려가 몸에 배어 있어 누구나 그렇게 느낄 만했다. 사람으로서 참 괜찮았다.     



참 착한 친구들이다. 아무리 친해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는다. 상대방의 표정, 감정까지 신경 써준다. 혹자는 친구란 막말할 수 있는 사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 서로 존중하고 지속적으로 신경 써줄 수 있는 사이가 진짜 친구다. 나는 그 친구들의 배려에 한 수 배운다.     



대학이란 울타리를 벗어난 지금. 앞으로 셋이서 자주 보긴 힘들 것이다. 심지어 한 친구는 경상도 김천으로 내려갔다. 그나마 한 친구는 옆 동네에 살지만 셋이 모여야 퍼즐이 완성된 느낌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도 진짜 친구를 새롭게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20대 초반까지 만난 인연이 평생 가는 거라면 나는 그 친구들을 정말 놓쳐선 안 되었다. 그렇게 배려를 아는 친구는 만나기 어려웠다.     



그런데 팔자가 참 사납다. 그렇게 괜찮은 친구들인데 다 사귀는 여자가 없다. 만나면 맨날 아쉬운 소리만 서로 나누게 된다. 우린 언제쯤 진짜 인연을 만날 수 있을까. 그래서 더 친한 친구인지 모른다. 원래 친구는 끼리끼리라 하지 않던가. 그런 ‘끼리끼리’라면 원치 않는데. 왜 그런 것만 닮아서 친구 하고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 다 같이 여자 친구 사귀어서 커플 여행도 떠나고 싶다. 그런 ‘끼리끼리’라면 참 좋을 텐데.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이니까 내가 먼저 스타트 끊어서 그들도 여자 친구 생기게끔 해줘야겠다. 근거 없는 자신감 좀 부려 본다.  




2019.02.20.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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