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세이
스무 살 넘어 줄곧 이용하던 미용실을 최근 바꿨다. 남들은 그게 뭐 대수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에겐 큰일이었다. 나는 웬만해선 루틴을 잘 바꾸지 않는 성향의 사람이었다. 서비스가 좋든 말든 정해진 루틴을 따르는 편이었다. 그런 내가 바꿨다는 것은 그만큼 서비스가 심각하단 뜻이었다. 아마 그 미용실은 나뿐 아니라 많은 고객을 잃었을 것이다. 큰 변혁의 시기를 맞이했을지 모른다.
그곳은 중년 부부가 운영하는 집 근처 미용실이다. 나는 보통 남자 사장님에게 머리카락을 잘랐다. 남자 사장님이 잘 잘라서라기보다 그와 대화하는 것을 꽤나 즐겼기 때문이다. 사실 대화라기보다 일방적 청취에 가까웠다. 오늘은 어쨌고, 아내가 어쨌고, 남자 사장님이 떠드는 이야기를 잠자코 듣다 보면 시간이 금세 흘렀다. 그것이 때론 여성혐오에 가까운 것이나 다단계 비슷한 얘기일 땐 다소 거북하긴 했지만 그래도 대체로 들어줄 만했다.
한데 남자 사장님이 최근 일을 그만두었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대충 듣기론 일이 힘들어서, 또는 부업이었던 (그 다단계 비슷한) 일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뭐, 조금 아쉽긴 했지만 어차피 나는 여자 사장님에게 자르면 되어서 크게 괘념치 않았다.
한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남자 사장님에게 자르던 고객들이 전부 여자 사장님에게 몰렸고, 대체 인원을 구하지 못한 채 여자 사장님이 그들을 몽땅 떠안게 돼버린 것이다. 남자 사장님이 모르긴 몰라도 갑작스럽게 그만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분들의 입장. 그것까지 이해해주면서 내 머리카락을 자를 이유는 없었다. 자를 상황이 아니라면 자를 수 없다고 그쪽에서 먼저 끊어주면 그만이었다. 그럼 나는 다른 데서 자르면 되었다. 차라리 그렇게 했다면 서로 불편한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자 사장님은 있는 대로 손님을 받아버렸고, 이번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가기 전에 세 번이나 예약하고 갔다. 기다리는 게 싫어서 보통 하루 전이나 반나절 전에 예약을 했다. 남자 사장님에게 자를 땐 그렇게 해서 별 기다림 없이 자를 수 있었다. 사실 그게 미용실의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하지만 똑같이 여자 사장님에게 자를 땐 어찌된 일인지 예약을 해도 꼭 30분 넘게 기다려야 했다. 갈 때마다 늘 앞 손님이 꽉꽉 차 있었다. 더욱 심각한 건 여자 사장님의 태도였다. 그녀의 말 때문에 더욱 화가 났다.
“우리 원래 예약해도 30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데, 뒷약속 있으세요?”
‘원래’라는 말이 참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러면 예약은 왜 한단 말인가. 앞 손님이 꽉꽉 차 있고 중간에 텀이 안 난다면 당연히 거절해야 마땅한데, 다 받아 놓고 기다려야 한다니. 그래 놓고 여자 사장님은 뒷약속이 있는 내가 이상하다는 듯 비꼬았다. 처음에는 그마저도 이해했다. 남자 사장님이 그만둔 마당에 당신도 힘들 테니 참자고. 그냥 다음에 다시 온다는 말을 남기고 미용실을 나왔다. 그렇게 한 것도 세 번. 세 번이나 나는 허탕을 쳤다. 그런데도 여자 사장님은 전혀 미안한 기색 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말만 거듭했다. 그럴 거면 대체 예약은 왜 받는 건지. 한 소리 쏘아붙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뭐라 해서 무엇하겠나. 어차피 내가 다시 안 가면 그만인 것을. 그래도 나는 참을성 좋게 세 번이나 갔지, 아마 다른 고객은 그 정도 서비스면 일찌감치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여자 사장님이 중요한 것을 간과했다. 서비스 직종은 신뢰가 깨지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분명 티 안 나게 한두 고객 잃다가, 순식간에 폭삭 가라앉을 것이다. 그녀는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미용실을 바꾸게 됐다. 특별히 대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번 노량진에서 마셨던 술집 옆집에 예쁜 미용실이 있었던 게 떠올랐다. 하얀색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마치 분위기 좋은 카페 같았다. 따라서 당연히 커트 가격도 비쌀 것 같았다. 한데 알고 보니 오히려 전의 곳보다 쌌다. 노량진이라 그런가. 노량진은 뭐든 쌌다.
날을 잡아 방문을 했다. 처음엔 낯선 곳이어서 조금 어색했다. 다소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들어가자 안에 있던 모든 디자이너 분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런 환대는 낯설었다. 원래 미용실이 다 그런 건지, 하도 오랫동안 동네 미용실만 다녀서 생경했다. 그리고 여긴 젊은 여성 디자이너들이 운영하는 곳이라 더욱 분위기 밝고 생기 넘쳤다. 서비스도 훨씬 좋았다. 진작 여기 올걸. 딱 그 생각이 들었다.
한 달 뒤 나는 다시 그곳을 방문했다. 미용실로 향하는 길이 이제 서서히 적응이 됐다. 오늘은 어떤 분이 잘라주실지 내심 기대도 되었다. 그렇게 미용실에 도착하고 오늘의 디자이너 분이 내게 다가왔다. 환한 미소를 띤 예쁜 여성분이었다. 특히 웃음이 맑고 선했다. 처음엔 그저 인사치레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 디자이너 분은 원래 웃음이 많은 듯했다. 나의 사소한 말에도 크게 반응해주었다.
“원래 그렇게 잘 웃으시나 봐요.”
머리를 감으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 밝은 기운은 오랜만이었다. 웃는 모습만 보아도 왠지 힘이 났다. 물론 처음엔 아주 살짝, 혹시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착각했었다. 남자는 원래 잘 웃는 여자에게 약한 법이었다. 그러나 그 착각은 금방 깨졌다. 그 분은 누구에게나 잘 웃는 사람이었다.
그 웃음이 억지웃음이라면 본인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감정소비가 누구보다 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진심이라면 즐기면서 일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 대단해 보였다. 타인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전해주는 멋진 사람이었다. 아마도 억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억지웃음은 그렇게 해맑을 수 없다. 그 분의 웃음은 티 없이 맑았다.
그 웃음에 나도 모르게 위로를 받았다. 안 그래도 별 웃을 일 없던 요즘인데, 덕분에 나도 실컷 따라 웃었다. 웃으니까 기분이 좋았다. 미용 비용 이상의 서비스를 받은 느낌. 왠지 나는 그 이상의 값을 지불해야 할 것 같았다.
한편으로 나는 왜 그렇게 웃지 못하는지 반성이 들었다. 나도 해맑게 웃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 나는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이 돼버린 듯하다. 웃을 일 자체가 많지 않았다. 잘 웃는 사람은 인상도 웃는 인상이 되었다. 그 디자이너 분은 하도 웃어서 팔자주름이 생겼다고 내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분의 주름은 그냥 주름이 아니었다. 세상 그 어떤 주름보다 아름다운 주름. 모든 주름이 전부 노화를 의미하진 않았다.
그 후로도 세 번을 연달아 그 분에게 잘랐다. 솔직히 미용 자체의 실력은 잘 모르겠다. 워낙 내 머리카락이 자르기 어려워 누구에게 잘라도 속 시원한 적이 없었다. 디자이너마다 다 그냥 고만고만했다. 그건 그 분의 실력이라기보다 내 머리카락의 문제였다. 한 달에 한 번 자르는 미용을 내가 기다리게 될 줄 몰랐다. 이제 미용 날이 기다려졌다.
웬만하면 내가 갈 때는 그 분의 얘기를 들어주려 노력한다. 허구한 날 고객들 이야기를 듣느라 힘들 테니까. 내가 갈 때만큼은 잘 들어주려 한다. 아무리 마음이 넓은 사람이어도, 감정이 단단한 사람이어도, 많은 사람의 얘기를 듣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그 분은 다행히 말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이런 저런 질문을 하면 그녀는 신나서 말을 늘어놓는다. 나는 그 대화 시간을 즐겼다.
미용이라는 게 엄청 고된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쉬는 날도 거의 없고, 주말에 쉬는 건 꿈도 못 꾸고, 하루 12시간 가까이 서서 일하는 직업이었다. 손님이 많으면 밥 때를 놓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고객 불만도 틈만 나면 들어왔다. 자른 머리카락을 청소하고, 고객 얘기도 들어주고, 가게 온갖 잡무도 봐야 했다. 몸이 두 개라도 늘 모자랄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그 분의 모습에서 나는 좋은 기운을 얻었다. 나는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맨날 인상만 쓰고 다녔던 걸까. 웃으면 행복하단 말을 전적으로 믿진 않지만, 그래도 웃기를 노력하면 잠깐의 기분전환은 분명 되는 것 같다. 나도 노력해야겠다. 누군가에게 밝은 기운을 전해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받는 입장에서 그건 너무 행복한 일이었다.
2019.06.09.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