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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Jul 04. 2019

단둘이 만나는 게 이제 힘들다

감성에세이



누구에게나 ‘관계의 안식년’은 필요하다. 그것은 ‘인맥 정리’와는 조금 다르다. 애써 끊지는 않겠다는 것. 그러나 애써 만나지도 않겠다는 것. 안식년을 보내는 중에 누군가 곁을 떠난다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다. 기다려 달라고 잡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그러나 묵묵히 옆에서 지켜봐 준다면 나는 언젠가 그들 곁으로 돌아갈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단둘이 만나는 게 좀 힘들어졌다. 아마 올해부터인 듯하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그냥 이제껏 누적됐던 관계의 피로가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한계치를 넘어섰다. 다 끄집어내 하나하나 분리수거한 다음 쓰레기차에 몽땅 실어버릴 때가 온 것이다. 나는 요즘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혹 괜찮다 지나쳤을지 모를 지난 상처를 탐색하고 있다. 그 상처의 파편이 여전히 나의 마음속 벽면을 할퀴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 상처가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내 지금의 내 상태를 만든 것일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둘이 만나는 게 이토록 힘들어질 리가 없다. 재밌게 놀고 와도 이렇게 왼쪽 가슴이 저릿할 리 없다.     



다행히 셋 이상 만나면 괜찮다. 특별히 내가 나서지 않아도, 잠시 숨을 고르고 있어도 되는 자리라면 괜찮다. 내가 둘의 만남이 힘든 것도 다 그 때문인지 모른다. 둘이 만나면 왠지 내가 그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긴다. 잠깐의 공백이라도 생기면 그것이 꼭 내 책임인 양 마음이 불편하다. 자꾸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게 되고, 재빨리 대화소재를 찾아야겠다는 조바심이 생긴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자리에 있는 내가 영 어색하고 불편하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 해도 그렇다. 상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할 리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은 내게 중요치 않다. 그 자리의 내가 불편하다는 것, 그게 내게 중요한 문제였다.     



그것은 다시 말해 이제껏 살면서 항상 애써 왔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 자리를 어떻게든 재밌는 자리로 만들기 위해 늘 남모르게 노력해왔다. 그 피로감이 조금씩 쌓여 올해 폭발한 것이다. 이제는 둘의 만남을 기피하게 된다. 그런 노력이 헛되었다 말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의 상태를 보면 나는 조금 미련했던 것 같다. 나보단 상대를 위한 시간을 보내왔던 것이다. 단순히 자리뿐 아니라 모든 관계가 그러했다. 항상 상대 눈치 보기 급급했고, 나의 이야기를 하기 보단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더욱 열중했다. 어차피 나의 말은 듣지 않을 거란 걸 알았기에 차라리 듣기라도 하자며 나의 본심을 왜곡했던 것이다. 나는 사실 그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지 않았다. 애써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지, 그렇다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단 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선 누구의 목소리라도 필요했고, 그 대상으론 네가 적절했다. 그렇게 항상 묻고, 듣고, 시답잖은 소리 하는 것에 지쳐 지금의 기피증이 생겨난 것이다.      



이제 좀 쉬고 싶다. 관계의 피로감을 씻고 싶다. 다 나를 떠나간다 하더라도 나를 지키고 싶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부담이 된다면 우리의 관계를 잠시 ‘keep'해두고 싶다. 당분간 일대일 만남은 피하자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너무 이기적이라면 나와 관계를 끊어도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어쩌나.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거란 걸. 내가 만나자 하지 않으면 어차피 그들은 먼저 만나자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이끄는 대로 마음껏 이끌려 주는 고마운(?) 존재다. 먼저 연락 안 하면 같이 안 해준다.     



그런데 참 웃기다. 아이러니하게 나는 여전히 사람을 만나고 싶다. 세 명 이상 모인 화기애애한 풍경 속에 그림자라도 되고 싶다. 그 속에 속해 ‘우리’라는 것을 느끼고 싶다. 나는 지금도 여러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아무래도 난 먼저 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을 지녔나 보다. 하지만 그마저도 운영이 원활히 되진 않는다. 낯선 사이가 가까워지기까진 함께할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에겐 그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우리는 너무 바쁘다. 그럼 대체 어찌해야 할까. 가까운 관계는 자꾸 불편해지고, 새로운 관계는 친해질 시간이 부족한데. 답답하기만 하다.      



올해가 심리적으로 가장 힘든 해다. 아직 아무 데도 자리 잡지 못했고, 관계의 피로감은 폭발했다. 심리적 병이 의심될 정도로 마음의 힘이 많이 약해졌다. 나의 이런 힘듦이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오늘 견딘 만큼 내일은 수월히 견딜 수 있기를 바란다. 올해가 이토록 힘든 건 다 그만큼 단단한 미래를 살기 위해서란 걸, 내년엔 좀 알 수 있었으면 한다. 




2019.07.04.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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