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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Jan 21. 2021

서른의 연애는 달라야 돼

정용하 에세이



그래도 서른 전에는 그럴 듯한 연애를 한 번 할 줄 알았다. 예전에 좋아했던 TV 프로그램 '마녀사냥'에서 삼십 대인데도 제대로 된 연애를 못 해본 사람의 사연을 보며 어떻게 그 나이 먹도록 진득한 연애를 한 번 못 해봤을까 납득이 가지 않았는데 지금 내 신세가 딱 그렇다. 내가 그때 사연의 주인공을 바라본 시선처럼 남들도 그렇게 나를 바라볼 것이다. 변명처럼 말하자면 나는 진득한 연애를 못 해본 것이지, 아예 모태솔로는 아니다. 그게 그거 아니냐, 생각할지 몰라도 나 같은 사람에겐 다른 문제다.


이 정도 되니 내가 얼마나 매력이 없으면 그럴까 싶다. 사실 그렇게 인정한 지 꽤 됐다. 그런 말을 하면 주위 사람들은, 아니야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야, 라고 위로해준다. 하지만 그건 흔한 위로라는 걸 나는 안다. 그렇지 않다는 건 내가 증명했어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그걸 증명하지 못했다. 한편으로 나는 그걸 왜 증명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진득한 연애도 해본 괜찮은 사람이에요, 라고 말이다.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 싫다. 사람들은, 진득한 연애를 해본 사람은 짧은 연애를 해도 그냥 맞지 않은 인연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짧은 연애만 계속한 사람은 그 사람이 문제여서 연애를 오래 '못'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데도 걸림돌이 된다.


무엇보다 그 사실이 나를 괴롭힌다. 이미 짧은 연애가 내게 트라우마가 됐다. 누군가를 만나도 상대는 나를 떠날 것이라고 지레짐작 해버리거나 마음의 벽을 미리 쌓는다. 일종의 관계 불안. 언제든 그 사람과 관계가 끊길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홀로 불안해 한다. 그래서 썸탈 때와 연애 초반에 상대방에게 과한 애정표현을 한다. 어서 나를 잡으라고. 잡고서 놓지 말라고. 그러다 상대가 나를 놓으려고 하는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내 쪽에서 먼저 상대를 확 놓아 버린다. 마음이 빠르게 식는다. 다치기 싫어서. 내가 생각해도 정말 비겁한 행동이다.


관계 불안을 극복하지 못하면 나는 연애뿐 아니라 누구와도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못 쌓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관계 불안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냥 받아들이려 한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가 보다, 라고. 어차피 오래 볼 사람이라고 마음먹는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내 할 일 하자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관계 불안을 극복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전부 나의 문제였다. 내가 관계 불안만 없었다면, 나의 불안만 앞세우지 않았다면, 나의 인연들은 나를 떠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인연을 내쫓았다. 다행히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내가 나름 노력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모든 애를 다 쓰던 인간관계에 요즘 관심이 크게 떨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일이 더 중요해졌다. 그러다 보니 관계에 집착하지 않게 됐고, 자연스레 불안해 하지 않게 됐다.


하지만 또 인연이 찾아오면 관계 불안이 언제든 도질지 모른다. 작년에도 그랬다. 분명 이제는 달라졌다고 그때도 그렇게 여겼는데 막상 인연이 찾아오자 관계 불안을 느꼈다. 그 사람을 잡으려고 온갖 애를 쓰고 애정표현을 적극적으로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지치고, 그 불안은 해소되지 않았다. 결국 건강한 방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작년의 인연도 결정적으로 나의 관계 불안 때문에 헤어졌다.


새로운 인연이 찾아오면 나는 더 이상 관계에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이성적으로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작년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될지 모른다. 행동을 연기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마음을 고쳐 먹어야 한다. 어차피 오래 볼 사람이니 그렇게 아등바등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상대는 내 옆에 있어 줄 거라고. 그런 믿음이 우리 사이를 분명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어찌 됐든 올해도 분명 새로운 인연을 만날 텐데 그 인연에겐 나의 관계 불안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어차피 오래 볼 사람이라고 끊임없이 주문을 외울 것이다.


어느덧 서른 살이다. 이제 진짜 연애를 하기 충분히 좋은 나이가 됐다. 과거의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더 단단해졌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일 것이다. 그럴 자신이 있다. 한 단계 더 성숙할 것이다. 서른을 맞이한 1월의 어느 날, 불현듯 20대의 연애를 돌아보게 됐다.


-2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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