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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Aug 21. 2019

영화 봉오동 전투 후기, 유해진 류준열 배우의 호연!

영화리뷰



솔직히 이제 항일 컨셉의 영화는 지겹다. 그간 이 소재는 지나치게 소모되었다. 세부 소재가 아무리 신선해도 뻔한 느낌이 든다. <봉오동 전투>도 그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독립군의 첫 승리란 상징적인 전투임에도 소재의 진부함이 뒤따랐다. 그 컨셉만 그럴까.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다룬 역사 컨셉도, 6,70년대를 다룬 군부 독재 컨셉도 마찬가지다. 이제 과거가 아닌 현실을 이야기하는 신선한 소재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나 이재규 감독의 <완벽한 타인>이 유독 반가웠다. 허나 이 두 영화 모두 한국 원작이 아니란 점이 아이러니다. 제대로 된 현실을 짚는, 또는 실현 가능한 미래를 그리는 영화가 한국에도 나왔으면 한다.     





그러나 소재의 진부함에도 이 영화는 충분히 흥미를 유발시켰다. 그 이유를 나는 세 가지로 꼽는다. 하나는 역시나 배우들의 연기력. 믿고 보는 배우들의 호연이 펼쳐졌다. 특히 나는 배우 유해진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에서도 유해진은 그야말로 미친 존재감을 발휘했다. 기존 그의 이미지답게 코믹 연기도 기대에 부응했을 뿐 아니라 쉽게 보지 못했던 화려한 액션신까지 멋지게 소화해냈다. 그가 칼을 잡고 휘황찬란하게 휘두르는 모습을 그간 본 적이 있었는가. (내가 알지 못하는 영화에서 물론 했을 수 있다.) 사람 키보다 높은 갈대숲에서 칼 한 자루 쥐고 칼총 든 일본군을 십수 명 헤치울 때 탄성을 내질렀다. 그것을 유해진이 해서가 아니라, 다른 영화와 비춰봐도 그만큼 시원한 액션신을 찾기 어렵다. 그 장면이 이 영화의 베스트 장면으로 꼽히기 손색없다.    


 



류준열의 존재 또한 무시 못 했다. 독립군 분대장 이장하 역을 맡은 그는 황해철(유해진), 마병구(조우진)보다 어린 나이였지만 독립군을 진두지휘할 만큼 냉철하고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의 사격 실력과 산을 오르내리는 발 빠르기도 빛을 발했다. 유해진만큼이나 류준열의 액션신도 시선을 집중시켰다. 조우진은 주연 삼인방 중에 가장 보조 역할을 맡았다. 원래 마적 출신이었던 그는 독립군의 임무에 가담하길 꺼려했는데, 형님처럼 따르는 황해철의 존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참했다. 그는 주로 유해진과의 투닥거리는 케미에서 존재감을 발휘했다. 특히 그 장면들은 이 영화의 주요 웃음 유발 포인트였다. 매번 짧지만 강렬했다.    


 



다른 하나는 전투신이다. 그간 수많은 전쟁 영화에서 전투신이 있어왔지만 산악 지형에서 이뤄진 것은 드물었다. 허허벌판이나 건물 많은 도시에서 이뤄지는 것보단 규모 면에서 떨어질지 모르나 다양성, 박진감 면에선 훨씬 매력 있었다. 또 왠지 모르겠으나 일본군의 추격을 받는 과정에서 영화 <반지의 제왕>이 떠올랐다. 확실히 우리나라 전투 장면의 디테일이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일본군 장교 역에 실제 일본 배우를 출연시켰다는 것이다. 그 점이 영화의 몰입도를 상승시켰다. 그간 많은 항일영화가 있어왔지만 실제 일본 배우가 출연한 적은 드물었다. 대부분 한국 배우가 열심히 일본어를 배워 일본인과 비슷하게 연기를 한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다 해도 역시 한국인은 한국인이었다. 그들이 실제 일본인이라는 몰입감은 주지 못했다. 그런데 실제 일본인이 출연하니 확실히 영화의 몰입이 달라졌다. 그들을 보니 그 시절 그 울분이 그대로 전이됐다. 한편 항일영화에 출연을 결심한 일본 배우의 선택에도 존중을 한다. 자국에서 환영받지 못할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과감히 선택했고, 멋진 연기를 선보였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아쉬웠던 부분 중 하나는 15세 이상 관람가임에도 불구하고 잔인한 장면이 다수 포함됐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너무 잔인해서 눈을 질끈 감아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관람 등급이 잘못된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특히 야스카와 지로(키타무라 카즈키)가 호랑이의 목을 수차례 찌르는 장면은 눈 뜨고 못 볼 정도였다. 물론 CG라는 걸 알았지만 소리와 상상력이 더해지니 굉장히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것 외에도 잘린 목만 시체 위에 나뒹구는 장면이나 그대로 목이 잘리는 장면 등은 영화의 잔인함을 더했다. 그런 장면이 이 영화에 꼭 필요했고, 15세 이상 관람등급이 적절했는지 연출진에 묻고 싶다.     





영화가 주는 의미는 크지 않다. 그래도 요즘 시국에 적절한 영화로 여겨진다. 이 영화를 보고 일본을 더 미워할지 말지는 본인 자유다. 나는 그저 한 편의 오락 영화로서만 이것을 보았다. 우리 역사에 대해 고찰하는 계기가 되어주진 못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영화는 영화일 뿐. 그것이 지금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전투신은 정말 끝내주었다. 볼 만했다.   


  



예전엔 이런 애국영화, 항일영화, 역사영화가 불편하지 않았는데, 이젠 좀 불편하다. 국가가, 또는 거대 조직이 하나의 관점을 주입시키려는 시도로 느껴진다. 요즘 한일 양국 간의 상황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한국의 국민으로서 그들이 한 행태에 분노가 솟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의 반일감정은 다르다.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그것을 무조건 갖고 있어야 하는가. 일본 제품 보이콧에 무조건 동참해야 하는가. 그것은 개인의 자유 아닌가. 한 개인이 신념을 가지고 반일감정을 품고 일본 제품 보이콧을 하는 건 누가 뭐라 할 행동이 아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것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누가 뭐라 해선 안 된다. 개인의 신념, 가치관까지 국가가, 거대 조직이 주입하려 드는 건 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국가주의적인 접근이다. 이러한 국뽕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이유 또한 그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싫으면 본인이 싫은 것이지, 왜 그걸 다른 사람에게까지 주입시키려 한단 말인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조장하는 매체가 나는 불편하다. 그런 진지한 생각을 버리고 보면 이 영화가 마냥 재밌다. 배우의 연기와 화려한 전투신에 감탄하게 된다. 그거면 된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영화에서 한 가지 의문점은, 개똥이(성유빈)와 춘희(이재인), 유키오(다이고 코타로)를 비중 있게 다룬 이유다. 이 세 명의 조합으로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 했는지 모호하다. 공통점이라면, 세 명 전부 고향을 떠나 갑작스럽게 독립군에 합류했다는 것이다. 이들 사이에 어떤 교차점도 없다. 한창 이들의 이야기를 풀려다가 후반부부턴 별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내가 이해를 잘못한 것인지 감독의 연출력 부족인지 모르겠다.     





그것에 관해 '유진모 칼럼'을 보면 그 이유를 '아직도 진심 어린 사과는커녕 생떼를 쓰는 일본을 향한 점잖은 훈계'라고 추론하고 있다. 일리 있는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덧붙여 말하자면 일본이 진정으로 반성한다면 개똥이와 춘희, 유키오처럼 얼마든지 미래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진심 어린 사과를 할까. 한 세기 가까이 역사 왜곡을 통해 진실을 숨기려고만 했던 그들이 이제 와서 사과를 할지 나는 가능성을 낮게 점친다. 또 모른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앞으로를 한 번 지켜보자.




2019.08.21.

작가 정용하

# 사진 출처 - 네이버 스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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