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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Aug 24. 2019

영화 <최악의 하루>,나도 너도 진짜가 무엇인지 모른다

영화리뷰



나는 상대를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 상대는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을까. 그것이 어떤 모습이라고 명확히 규정지을 수 있을까. 그러면 그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일까. '진짜'란 무엇인가. 어느 것이 나의 '진짜' 모습일까. '진짜'란 존재할까. 무엇이 나고, 나는 누구일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행동의 경향성은 나타나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어느 때든 달라질 수 있고,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행동과 태도를 달리한다. 그렇다고 혼자 있는 순간이 본모습이라고 답하기도 애매하다.     





이 영화는 인간이 풀기 난해한 철학적 질문으로 시작돼 만들어졌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지, 그 사람의 옳고 그름을 타인이 판단내릴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왜냐하면 너도 나도 부족한 존재이고, 진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떳떳하지 못한 인생을 살았고, 수없이 부족함을 드러냈는데, 누가 누구의 잘못을 나무랄 수 있겠는가. 그건 후안무치의 자세다.     





영화 <최악의 하루>는 김종관 감독의 2016년 작품이다. 주연으로 한예리, 권율, 일본 배우 이와세 료가 등장한다. 하루 동안 벌어지는 최악의 일을 다루고 있다. 극중 주인공 은희(한예리)는 배우 지망생으로 연기수업을 마치고 길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러던 중 길을 찾고 있는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길을 안내해준다. 여기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후 약속 때문에 은희는 남산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남자친구 현오(권율)를 만난다. 현오는 드라마에 출연 중인 배우로, 그 근처에서 촬영 중이어서 그녀를 그곳으로 불렀다. 티격태격하긴 하지만 여느 커플과 비슷했고 특별히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데, 운철(이희준)의 등장으로 모든 상황이 뒤엉키게 된다. 하필 그가 남산으로 찾아올 줄이야.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은희는 당혹스러워하는데, 그는 대체 누구일까. 그녀는 어떤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사실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이동 경로도 마찬가지다. 서촌과 남산, 주 무대는 그 두 곳뿐이다. 감독은 그런 평범한 일상 속에 의미를 첨가하려 했다. 2016년작 <더 테이블>에서도 그런 점이 드러났다. 그는 평범한 듯 아닌 일상 속에서 소재를 찾고 메시지를 담았다. 


    



"요즘 살고 있는 게 연극이에요."     





그렇다면 이 영화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은희의 말처럼 '진짜' 모습을 알기 어렵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상대를 대할 땐 진심인데 끝나고 보면 가짜 같은 모순을. 어쩌면 '어른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연극해야 하는 순간이 점점 많아지는. 누구에게도 진짜 내 모습을 보이기 어려워지고, 그러다 보니 그게 무엇인지도 잊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의미를 담은 대사를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전달했던 것도 어쩌면 완전한 타인 앞에서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이고. 여행지에서는 연극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와 마주치든 나의 본모습을 내보일 수 있다. 감독은 그런 현실이 안타까워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 것이다. 친한 사이임에도 때론 거짓을 얘기해야 하는 게 답답해서. 그게 누가 잘못해서라기보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야속해서.     





나는 타인 앞에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건 힘들 것 같다. 그것이 상대를 위해 꼭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떨 땐 배려도, 관심도 꾸며진 행위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본의와 상관없이 겉으로 드러난 호의는 관계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 그래도 사랑이란 건 자신의 본모습을 조금씩 꺼내놓는 과정 아닐까. 타인보단 애인이 자신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야 사랑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연기고, 거짓이다. 즉 사랑이 아니란 뜻이다. 본모습과 본모습이 함께하는 둘. 그런 형태가 사랑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한편 영어실력이 뛰어난데도 미숙한 척 애쓰는 한예리가 귀여웠다. 감독은 의무교육만 받은 대한민국 표준의 영어실력 소유자 연기를 주문한 것 같은데, 그녀는 그것에 부응하지 못한다. 일반 사람들에겐 그 정도 회화 능력이 없다. 아무래도 극중에 필요한 의미 전달을 위해 상급 수준의 영어실력을 요구한 것이었겠지만, 억지로 못하는 척 애쓰는 한예리의 모습이 안쓰럽고 어색해 보였다. 반면 일본 배우 이와세 료는 그것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그는 실제 못하는 것 아닐는지.     





이 영화는 감독의 세심한 연출이 빛났다. 먼저 거짓을 쓰고, 거짓을 연기하는 소설가, 배우를 주인공의 직업으로 설정했다는 점. 그들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경계를 구분 짓지 못하는 순간에 빠지기도 하는데, 그 장면이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또, 영화 인트로에 이 모든 이야기가 허구일 수 있음을 밝혔다. 즉 감독도 관객도 영화 속 주인공도 뭐가 진실이고 허구인지 알 수 없단 의미를 내포한 것이다. 그리고 곧 우리는 실제 그런 일상을 살고 있다. 진짜는 실종됐고, 가짜만 판을 치는 세상에.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이다. 감독은 일본인 료헤이를 통해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 료헤이는 새로운 이야기가 떠올랐다면서 한 구절을 이야기하는데, 짧지만 강렬했다. 그 말을 끝으로 감상을 마치겠다.     





지금이랑 계절이 달라요.

이 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예요.

저 길에 눈이 내리고

한 여자가 걸어옵니다.

무표정하게 내리는 눈 사이를 걸어오다가

뒤를 돌아봐요.

어두워진 저 산책로 너머로.

하지만 안심하세요.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입니다.

주인공은 행복해질 거예요.     




2019.08.24.

작가 정용하

# 사진 출처 - 네이버 스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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