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감성극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정용하 Sep 04. 2019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앨런 튜링이 누군지 아는가

영화리뷰



이 영화(이미테이션 게임)를 본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개봉한 지 반년 지났을 즈음에 처음 보고  블로그에 리뷰를 남긴 적이 있다. 지금 보면 부족한 것투성이인 리뷰인데, 그래도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때에 비해 나는 여러모로 성장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이 영화에 대해 별로 기억나는 장면이 없다. 그저 암호 해독 기계인 '크리스토퍼' 앞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고뇌하고, 아역 앨런 튜링이 단짝 크리스토퍼 모컴과 함께 교정을 걷는 모습 정도. 그것 외에는 처음 보는 영화처럼 기억이 깨끗했다. 그러나 결론은, 다시 봐도 재밌는 영화라는 것. 무엇보다 나는 이 영화가 퀄리티에 놀랐다. 연기력, 연출력, 스토리 등 무엇 하나 뒤떨어지는 게 없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수학천재 앨런 튜링이 '애니그마'를 해독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애니그마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로 사용되었는데, 날마다 암호 체계가 변경되는 바람에 해독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그것을 어떻게든 해독하고자 각 분야의 천재를 모아 '비밀 암호 해독팀'을 편성했다. 거기에 당대 수학천재 앨런 튜링이 합류하고, 우여곡절 끝에 현대 컴퓨터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애니그마 해독에 성공한다. 그것이 훗날 2차 세계대전을 2년 단축시키고,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만큼 앨런 튜링은 역사적인 인물임에도 암호 해독팀이 비밀 프로젝트였기에 영국 정부에 의해 철저히 숨겨지다가 2013년이 돼서야 사면 되고 그를 기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생애 말 동성애 혐의로 화학적 거세를 당해 1년간 호르몬 투여를 받다가 자살한 바 있다. 전쟁 영웅의 말로가 참으로 비참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야 뛰어나단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이 영화(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컴버배치는 정말 차원이 다르다. 혼자서 두 차원 높은 수준에서 노는 듯했다. 물론 함께 출연한 키아라 나이틀리나 매튜 구드, 마크 스트롱 역시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였지만,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연기력 이상의 치명적인 아우라가 풍겼다. 그냥 타고난 매력 같은 것. 왜 주변만 봐도 가만히 있어도 시선이 가고 아우라가 흐르는 사람 있지 않은가. 그런 사람은 가만히만 있어도 사람이 줄줄 따른다. 그건 지극히 선천적인 매력에 해당하는데, 컴버배치는 일반 사람이 품고 있는 그 아우라의 몇 백 배 이상은 되는 것 같다. 물론 그만큼 연기력이 뛰어나서 그 아우라가 더 빛을 발하는 것이겠지만.     





이 영화(이미테이션 게임)는 2015년 2월 17일 개봉한 영화로, 국내에선 170만 관객을 끌어 모았다. 블록버스터 대작이 아닌 것에 비해 나쁘지 않은 기록이긴 한데, 나는 이 영화의 작품성, 연기력, 퀄리티에 비해 조금 아쉬운 성적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이 영화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앨런 튜링이란 인물도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지지 않은 시기였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출연하는 영화로 홍보가 되었지만 화제성 면에서 조금 부족했다. 그런 상황 속에도 이 영화는 170만 관객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뒤늦게 VOD로라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 영화가 얼마나 고퀄리티고, 작품성 있는지. 웬만한 전쟁 영화보다도 더 스릴 있고, 몰입감 있으며 다이나믹 했다. 4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재개봉을 한다면 '작은 흥행'이라도 일지 않을까. 난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핵심 대사는 크리스토퍼 모텀이 앨런 튜링에게 한 말이다.   

  

"하지만 가끔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을 해내는 거야."     


이 대사가 영화를 관통하고 있다. 앨런 튜링은 수학 천재이긴 했으나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외톨이에 불과했다. 우리 학창 시절에도 공부는 잘하는데 주위 친구와 잘 어울리지 않는 조용한 공부벌레 한 명쯤은 꼭 있지 않은가. 그런 친구는 있는 듯 없는 듯 한 공간만을 함께할 뿐 큰 인상은 남기지 못한다. 졸업과 동시에 그에 대한 기억도 깔끔히 날라 간다. 그런 친구가 훗날 생각지도 못한 거물이 돼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아직 그 경우는 실제 목도하지 못했고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봤다. 내심 내가 그런 인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학창 시절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이름을 날린다. 앨런 튜링이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보니 극적인 반전이나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나진 않는다. 긴박하게 돌아가긴 해도 대체로 잔잔하게 흐르는 편이다. 화려한 전투 장면 없이도 영화는 몰입감 있게 전개된다. 출연 배우의 연기력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자연스레 빠져든다. 이 영화(이미테이션 게임)를 알지 못했다면, 앨런 튜링의 존재를 몰랐다면 한 번 보기를 권한다. 분명 보통 이상의 재미를 여러분께 선사할 것이다.     





이 영화의 특징은 과거와 현재, 어린 시절이 두서없이 오간다는 것이다. 자칫 정신 없게 여겨질 만하다. 아마 부족한 연출력이었다면 번잡함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이 영화는 시점이 빈번히 바뀌는데도 그 흐름이 깨지지 않았다. 그것은 모튼 틸덤 감독의 공이다. 연출력 면에서도 이 영화(이미테이션 게임)는 완벽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그런 방식을 택했을까. 추측한다면, 앨런 튜링이란 실존 인물의 일생을 좀 더 폭넓게 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어떤 공을 세웠으며 그의 말로는 어땠는지 등을 감독은 최대한 세세하게 담고 싶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만큼 사람들에게 앨런 튜링이란 인물이 생소했기 때문이다. 충분히 교과서에도 언급될 만한 인물인데, 우린 그에 대해 배운 적이 (내 기억으론) 단 한 번도 없다. 그를 영화를 통해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다.




2019.09.04.

작가 정용하

# 사진출처 - 네이버 스틸이미지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최악의 하루>,나도 너도 진짜가 무엇인지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