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그때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던 말>은 익명의 작가 '손씨'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전작 <어른은 겁이 많다>에 이어 2016년 출간됐다. 전작이 2015년 출간됐고, 1년 뒤 이 작품이 나온 것인데 그 이후 아직까지 신간 소식은 없다. 작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활발하진 않더라도 꾸준하게 글이 올라오는 걸 보면 조만간 신간 소식이 들려올 것 같다. 두 번째 작품은 전작과 결을 같이 한다. 컨셉이나 내용의 분위기 등 전부 유사하다. 번뜩이는 센스도 여전하다.
선배들이 말한 대로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들이 줄어 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언젠가 끊어질 인연이 아니었을까?
나에게 그때가 온 것이고.
친구가 줄어 드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마는
친구가 줄었단 건,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게 아닐까.
# 내 옆에 소중한 사람을 남기는 일
- 손씨 <그때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던 말> 중에서
사실 이런 책은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는 것보다 어떤 구절이 직접적으로 와닿았는지 소개하는 것이 감상을 전하는 데 효과적이다. 100편의 글 중 한두 편이라도 건졌다면 그 책은 좋은 책이다. 이 작품에서 많은 글을 건졌으니 좋은 책이라 하겠다.
어른이 되어서 조금 서글퍼진 것이 있다.
당연한 것이지만
친구는 이제 약속을 해야 만날 수 있다는 사실.
# 친구야 놀자
- 손씨 <그때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던 말> 중에서
이 책이 다른 글귀집과 다른 점은, 바로 '사랑 타령'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책에선 지나칠 정도로 사랑 타령에 집착해서 금방 질려버린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은 그것뿐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한 현실적 고찰까지 함께하고 있어 좀 더 공감이 되었다.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닌 진정 작가가 느낀 바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느낌. 그러한 진정성이 나는 좋았다. 짧은 글인데도 작가만의 목소리가 녹여져 있었다.
우리는 연애를 하고 싶어 하지만
연애를 망설이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안전한 내 일상의 패턴이 깨진다는 것.
다른 말로는 내 삶에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
그것이 두려운 것 아닐까?
아침이면 일어나 회사를 가고
퇴근을 하면 나만의 시간을 갖고
정해진 시간에 눈을 감는
반복되는 일상을
우리는 지겨워하면서도
안전한 이 삶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한다.
지금처럼 이대로 살면 아무 일 없을 텐데
날 뒤흔들 사람이 나타나 노크를 하니
좋다가도
두려운 거지.
# 만남을 미루는 사람들
- 손씨 <그때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던 말> 중에서
이 책은 시집처럼 곱씹으며 읽을 필요가 없다. 그저 과자 먹듯 휙휙 넘기며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하면 그때 그것만 마음에 담으면 된다. 그 순간의 감정에 따라 딱 맞는 글이 달리 나타날 테니. 그 글은 내게 생각보다 큰 위로를 건넨다.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옮겨 적은 것처럼 대변한다. 이 책은 그런 매력이 있다.
서른 살이 되니 그렇다.
금전적 여유가 생기니
취미를 즐기게 되고,
지금의 자리를 지키려니
자기계발을 하게 되고,
목적 없이 친구를
만나지 않게 되고,
오로지 나에게 쏟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렇게 된 이유를 굳이 꼽자면,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관심 단계에서 여자는 만나지 않게 되고,
그렇다 할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밀당이 되기도 하고,
한 번 고백해서 넘어오지 않으면
자존심에 포기하게 되더라.
그만큼 나를 굽혀가며,
노력을 쏟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 거겠지
이런 서른 살의 자기계발의 단점은
혼자인 시간을 즐기게 되고,
이성을 보는 눈높이를 높이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른들의
사랑은 참으로 놀랍다.
그럼에도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니까.
# 지나친 자기애
- 손씨 <그때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던 말> 중에서
그러나 짧은 글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될지언정 그 작가에 대해 폭넓게 알기란 어렵다. 개인적인 이야기도 다수 포함되긴 했지만, 이 책에서 작가란 사람의 실체는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을 온전히 보여주는 긴 글이 필요하다. 짧은 글에 자신을 담기란 한계가 있다. 그건 그저 나의 기호일지 모른다. 그 글 자체의 매력을 느끼기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 게 더 크다. 그래서 나는 에세이 작가가 좋고, 직접 에세이 쓰는 것을 선호한다.
갈증이 돋을 때가 있다.
해결되지 않는 그 무엇에 대해.
그건 아마도 세상 사는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한 지금이 아닐까?
무엇을 얻을 때가 아닌
얻은 걸 지킬 때
우리는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소중한 가족이 늙어가는 것을 볼 때,
모든 걸 함께할 것 같았던 친구들의 부재,
직장에서의 내 위치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악착같은 나를 발견했을 때.
우린 갈증을 느낀다.
해결되지 않은 그 무엇에 대해
과연 행복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누군가 그랬다.
행복은 두근거림이 아닌
평온한 상태라고...
우린 어쩌면 행복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은 도전해서 취득하는 특별한 물건이나 일이 아닌
소소한 것일지 모른다.
늦은 밤 전화해도 받아주는 이가 있고,
밥은 먹었는지 걱정하는 부모님이 있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와 맥주 한 잔을 하며 잠들 곳이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행복일 수도 있다.
행복은 특별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잃는 걸 두려워하는 것이이말로.
현재를 낭비하는 것일지도.
# 행복이란
- 손씨 <그때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던 말> 중에서
그래도 이 책을 갖고 싶어 소장하려 한다. 손씨 작가의 두 권, <어른은 겁이 많다>와 <그때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던 말>을 방구석 서점 책장에 꽂아두고 싶다. 이로써 좋은 책 한 권을 또 발견했다.
2019.08.22.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