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감성책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정용하 Aug 26. 2019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리뷰

책리뷰



유시민의 글은 그것이 어떤 글이든 술술 잘 읽히고 재미가 있다. 난해한 내용도 쉽게 풀어 쓰고 단번에 이해시킨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그가 스스로 붙인 별명처럼 '지식소매상'의 역할을 대한민국 그 어떤 지식인보다 잘 해낸다. 나는 그런 그가 '정치인'이 아닌 작가로 계속 활동하기 바란다. 더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그의 단언을 꼭 지켰으면 한다. 정치인보다 작가로서의 유시민이 나는 더 좋다.     





유시민의 글이 매력적인 이유는, 나는 '정확함'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글은 화려함 하고는 거리가 멀다. 딱 필요한 말만, 아주 정확하게 써내려 간다. 그러면서 전혀 어렵지 않게, 글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든 쉬이 읽어 내려갈 수 있게 글을 쓴다. 그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뽐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면서, 독자와 소통하겠단 마음이 크다는 것이니. 대부분의 지식인이 자신의 지식을 뽐내기 위해 일부러 어려운 글을 쓰곤 하는데, 그것은 자기만족이 될 수 있을지언정 독자에게 친절한 글이 되진 못한다. 독자에게 읽히지 못하는 글은 죽은 글이나 다를 바 없고, 결과적으로 쓸모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글 쓴다는 사람이 독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컸으면 한다. 글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아주 쉽고 간결하게 써 내려갔으면 한다. 다행히 유시민은 그런 사람이었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은 작가가 직접 유럽의 네 도시(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를 다니며 쓴 여행기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 여행기로 분류하기엔 보다 폭넓은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 유시민도 자신의 책을 '관광 안내서, 여행 에세이, 도시의 역사와 건축물에 대해 보고서, 인문학 기행, 그 무엇도 아니면서 조금씩은 그 모두이기도' 하다고 고백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어디서 무얼 보고 먹었는지, 그 도시의 역사는 어떠한지, 건축학 지식은 무엇이 있는지 등 다양한 정보를 망라하고 있다.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데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나는 도시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 나 자신과 인간과 우리의 삶에 대해 여러 감정을 맛본다. 그게 좋아서 여행을 한다.


그러려면 도시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건축물과 박물관, 미술관, 길과 공원, 도시의 모든 것은 ‘텍스트(text)'일 뿐이다. 모든 텍스트가 그러하듯 도시의 텍스트도 해석을 요구하는데, 그 요구에 응답하려면 ’콘텍스트(context)'를 파악해야 한다. 콘텍스트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말한다. 도시의 건축물과 공간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욕망, 그들이 처해 있었던 환경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누가, 언제, 왜, 어떤 제약 조건 아래서,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는지 살피지 않는 사람에게, 도시는 그저 자신을 보여줄 뿐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다. p7 



-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중에서





워낙 작가의 필력이 좋다 보니 사소한 내용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단순히 여행하면서 어떻게 이토록 많은 지식을 쏟아낼 수 있는지 경이로웠다. '알쓸신잡' 특별편을 혼자 찍으러 다닌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처럼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면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냥 쉽게 지나치고 싶은 것도 자기도 모르게 사색에 빠진 자신을 발견할 것 같았다. 그것을 즐거워하면서도 피곤해 할 것 같았다.    


 



'여행 문외한'이다 보니 작가의 감상이 온전히 와닿진 않았다. 익숙지 않은 명칭도 홍수처럼 쏟아져, 솔직히 뭐가 뭔지 몰랐다. 한 번 읽고 전부 휘발될 지식이었다. 이 책의 결과적인 감상이 그러하다. 유시민의 글이 좋긴 하나, 내용은 깊이 와닿지 않는다는 것. 한 번 보고 더 이상 들춰보지 않을 것 같다는 것. 작가만의 고유의 생각을 들어보지 못해 아쉽다는 것. 그것이다.     





<유럽 도시 기행>은 앞으로 시리즈 별로 계속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2편의 도시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 도시는 빈, 프라하, 부다페스트, 드레스덴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2편이 출간되고서 찾아볼 것인가. 그 질문을 스스로 던졌을 때 나는 쉬이 답하지 못하겠다. 유시민의 글은 언제나 반갑지만 이 책은 크게 흥미롭지 못했다.     





이 책을 읽으며 여행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어떤 여행이 유익한 여행인가.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려 보았다. 그 답은 사람마다 다르고, 나에게 맞는 여행이 유익한 여행이라는 것이었다. 유시민처럼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 떠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여행지에서 휴양만을 목적으로 떠나는 사람이 있다. 누굴 일부러 따라할 필요가 없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몸이 이끌리는 대로 행하면 된다. 그게 자신에게 유익한 여행이다. 혹여나 이 책을 보고 자신은 너무 무턱대고 관광지만 둘러본 것 아닐까, 하는 자책에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굳이 그 곳의 상세한 역사를 몰라도 그 관광지에서 행복하면 된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기가 되어주었다면 그 목적을 다한 것이다. 지겨운 일상을 잊기 위해 떠난 여행 아닌가. 유시민은 유시민 나름대로, 나는 내 나름대로 여행의 방식이 있는 것뿐이다.   


  


2019.08.26.

작가 정용하












              


매거진의 이전글 손씨 <그때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던 말>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