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감성, 하루의 기록
감성에세이집 6편 '인디음악'
인디음악
이번 주말에 아무런 일정을 잡지 않고 집 근처 카페를 찾았다. 이른 아침에 올해의 첫눈이 내렸다고 한다. 늦잠을 자느라 직접 보진 못했지만 첫눈의 의미는 언제나 특별하다. 눈은 한 해의 끝을, 그리고 시작을 상징한다. 눈은 시작과 끝에 걸쳐 있다. 그래서 눈에는 항상 설렘과 아쉬움이 공존해 있다. 이제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집 밖으로 나온 오후의 시간엔 눈이 비로 바뀌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냉기만큼은 여전했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거리의 모습은 거무스름했다. 요즘은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동네 카페가 좋았고, 웬만한 동네 카페도 인테리어가 잘 꾸며져 있고 아늑했다. 카페 안에는 평소에 내가 찾을 때보다 사람이 많았다. 아무래도 날선 바람과 비가 내리는 바깥보다는 실내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고민 끝에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결국 항상 시키던 대로 시키게 되어 있다. 다르다면 차가운 아메리카노 대신 따뜻한 것으로.
동네 카페를 즐겨 찾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온다는 점인데, 나는 그 분위기에 취하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들도 별로 없고, 혼자만의 생각에 온전히 잠길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유독 카페 안에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로 노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이어폰을 꺼내 스마트폰의 노래를 듣기로 했다. 뮤직 온.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디 음악이 이어폰을 통해 흘러 들어왔다. 나는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인디 음악이 좋았다.
문득 군대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선임들이 자기 전에 CD플레이어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잠을 청하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웠다. 나도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달콤한 잠을 자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상병 때부터 가능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나도 CD플레이어를 들을 수 있었을 때 나는 전역하는 선임에게서 CD플레이어와 다수의 음악CD를 얻을 수 있었다. 드디어 나도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할 수 있다는 부푼 마음을 부둥켜안은 채 처음 음악을 듣던 순간,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화로움과 평안함, 그 자체였다. 그때 흘러나온 노래가 가을방학의 ‘가끔 네가 미치도록 안고 싶을 때가 있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디음악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때였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온몸의 힘이 스르르 빠지면서 가사와 선율 하나하나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한 마디로 음악에게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네가 고생한 거 안다고’, ‘너의 마음 다 안다고’. 그것을 시작으로 나는 휴가를 나갈 때마다 없는 돈을 털어 음악 CD를 한 장씩 사들고 들어왔다. 전부 인디음악으로. 군생활 동안 굉장히 즐겨 들었던 노래가 악동뮤지션의 ‘작은별’, ‘잔디’와 같은 노래였다. 나는 취침시간을 넘겨 행정관실에서 매일 같이 연등을 하곤 했었는데, 그때도 CD플레이어를 가지고 들어갔다. 모든 소음이 사라진 그 공간에서,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음악에 집중하면서 일기를 썼었다. 고된 일과에 정신도, 몸도, 뭣하나 성한 곳이 없을 때 나는 음악을 통해 그것을 쾌유하고 부정적인 마음을 깨끗이 씻어냈다. 그 후로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복잡하면 자연스럽게 인디음악을 찾게 된 것 같다.
나처럼 인디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야기할 것이 무척이나 많다. 그 사람과는 정말 밤새도록 이야기할 자신이 있다. 작년에 인간관계로 한창 힘들었을 당시 나는 제이레빗의 ‘웃으며 넘길래’로 크게 위로를 받았다. 이 노래는 일단 반주서부터 반은 먹고 들어간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선율이 꼭 내 마음과도 같았다.
가슴속 깊은 사연들
저마다 아픈 구석 하나쯤은 있네
그렇게 모두 살아가지
가끔은 뭐 하나 되는 일이 없고
한없이 작아지고 주저앉고 싶어도
하지만 단 한 가지 나에게 꿈이 있다네
-제이레빗의 <웃으며 넘길래> 중에서-
인디음악이 좋은 이유는 대부분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가사로 쓴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한번쯤 느낄 만한 감정을 콕 집어준다. 마치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그리고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대신 해주는 것처럼. 그러면 왠지 내가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처럼 조금은 후련하고 뭔지 모를 감정이 해소가 되었다. 그래서 자꾸 인디음악을 찾게 되는 것 같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그것을 털어놓질 못해서.
요즘 즐겨 듣는 노래가 또 있다. 안녕하신가영의 ‘좋아하는 마음’인데 이 노래도 가사가 무척 현실적이고, 실제로 몇 달 전 한 달간의 연애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말해준 노래이기 때문에 좋아했다.
누구나 다 하고 있는
일반적인 그것을
너에게 말할 때
특별하던 모든 것들이
익숙한 것들이
되어버리진 않을까
(중략)
좋아한다는 말보다
좋아하는 마음 먼저
생각한다는 말보다
네가 먼저 생각이 나
-안녕하신가영의 <좋아하는 마음> 중에서-
그녀와 사귀었을 당시, 솔직히 그녀에 대한 마음이 크지 않았다. 시작하는 단계에서 호감이었던 감정을 키우는 과정에 있었고, 그것을 천천히 키워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는 내 마음보다 더 큰 것을 바라고 요구했다. ‘나를 애타게 기다려줘’, ‘나를 하루 종일 생각해줘’, ‘좋아한다고, 보고 싶었다고, 표현해줘.’ 그녀는 이런 메시지를 내게 지속적으로 보냈고, 끊임없이 애정표현을 받고 싶어 했다. 연인이라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당연히 애정표현을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지만 솔직히 나는 그녀에 대한 마음이 그 정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솔직하게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아직 우린 그 정도가 아니라서, 난 너에게 네가 원하는 만큼 표현해줄 수가 없다고. 그녀는 당연히 나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리는 짧은 연애 기간 동안 여러 번 삐걱거렸다. 그때 이 노래를 들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에게 이 노래를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너와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좋아’, ‘좋아한다는 말보다 좋아하는 마음이 먼저가 아닐까’라는 말을 건넸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가 애정표현을 받고만 싶어 할 뿐 반대로 나를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갔기 때문이다. 그저 단순히 나의 연인이라면 당연히 나를 사랑해줘야 해, 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녀는 내가 소개시켜준 노래를 듣고도 왜 이 노래를 들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고 얼마 가지 않아 그녀와의 인연은 끝이 났지만, 나는 그 뒤로 누군갈 만나는 것이 더욱 두려워졌다. 여자는 모두가 당연히 사랑받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데. 그 일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그것이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지니게 된 습관이 있다. 아무래도 인디밴드의 노래는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음악이고,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노래가 대부분이다. 나는 그것들을 고집하다 보니 일종의 ‘비주류 감성’이 생겼다. 나만 알고 있고, 또 나만 듣는, 그런 특별한 음악들을 자꾸 찾게 되었다. 또 그런 음악을 나 혼자 알고 있다는 것에 뿌듯하고 으쓱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한 번은 스마트폰 벅스의 최신 음악 파트에 들어가 새로 나온 인디음악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면 더욱 좋고, 새로운 인디밴드의 노래면 또 새롭고. 그렇게 알게 된 가수가 꽤 되는데, 예를 들어 미유, 모범택시, 애프터나잇 프로젝트와 같은 밴드가 그러했다. 비주류 감성이라는 게 어찌 보면 굉장히 웃기는 말일 수 있지만 나는 그들의 노래가 왠지 모르게 진정성이 느껴지고 현실적이어서 마음이 갔다.
인디음악이라면 할 이야기가 정말이나 많다. 이밖에도 모범택시의 ‘쌓일수록’, 미유의 ‘어떤 사람으로 남겨질까요’, 소란의 ‘넌 행복해’, 한올의 ‘길을 걷다’, 센티멘탈시너리의 ‘Epic', 김윤아의 ’going home‘ 등.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은 노래가 셀 수 없이 많다. 나처럼 인디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호감이 생기곤 한다. 아무래도 같은 공감대를 가지고 있고, 할 이야기가 그만큼 많기 때문. 내가 사랑할 누군가도 인디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둘이서 거리를 걸으며 이어폰을 한 쪽씩 귀에 나눠 꽃은 채 아무 말 없이 공원을 거닐고 싶다. 또 함께 인디밴드의 공연을 보러 다니면서 우리만의 추억을 쌓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금전적인 제약이 있기 때문에 공연의 비싼 티켓을 함부로 살 수가 없는 처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갖게 되면 한 달에 한 번 내지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인디 밴드의 공연을 보러 다니고 싶다.
작가 정용하/2016.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