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아무래도 확실히 이름값이 작용한 것 같다. 이병률이란 이름의 유명세가 적극적인 구매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이 책의 흥행을 설명할 말이 별로 없다. 그저 흔한 에세이 중 하나다. 유독 이 책이 잘 쓰였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나는 평범한 에세이보다 이 책이 조금 밑이지 않을까도 생각된다. 이 책이 지금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베스트셀러의 위치에 놓여 있는 이유는, 적어도 아직까진, 확실히 작가의 이름값 영향으로 보인다. 나의 예측이 맞는지는 이 책이 얼마나 베스트셀러 순위를 유지하느냐에 달렸다.
이병률 작가를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약간의 설명을 하자면, 1967년생으로 올해 53세다. 시집, 여행산문집 가리지 않고 활발히 출간하고 있다. 이번 산문집은 5년 만에 나왔다. 꾸준한 집필 활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대표작으론 <끌림>, <내 옆에 있는 사람> 등이 있다.
당신이 혼자 있는 시간은 분명 당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어떻게 혼자인 당신에게 위기가 없을 수 있으며, 어떻게 그 막막함으로부터 탈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혼자 시간을 쓰고, 혼자 질문을 하고 혼자 그에 대한 답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닥쳐오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그 외로움 앞에서 의연해지기 위해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면서 써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목숨처럼 써야 한다. 그러면서 쓰러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일어서기도 하는 반복만이 당신을 그럴듯한 사람으로 성장시킨다. 비로소 자신의 주인이 되는 과정이다. 물론 자기 안에다 주인을 '집사'로 거느리고 사는 사람이다. p16
일단 표지가 정말 예쁘다. 하늘색 배경의 딱딱한 양장본이 마음에 든다. 요즘엔 확실히 책 표지 디자인이 매력적이지 않으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어떨 땐 글 자체의 매력보다 표지와 제목의 매력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정도로. 나도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바로 제목과 표지 디자인이다. 먼저 제목이 확 끌어당기느냐, 나는 그것을 책에 대한 첫인상이라 생각하는데, 단번에 끌리는 작품을 우선 뽑아 든다. 그런 다음 찬찬히 표지 디자인을 살피는데, 깔끔하면서 과하지 않아야 구매나 대출을 한다. 때론 책 내용을 아예 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 책이 대개 높은 만족도를 주는 걸 보면 그래도 내 책 고르는 법의 성공률이 꽤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 이런 내 방법이 나만의 방법은 아닐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중요도에 대해선 저마다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요즘 독자들은 이 부분을 다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혼자 있으면 무조건 심심할 거라며 회피하는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란 건 별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진정 하고픈 걸 할 수 있는 상태는 정말로 혼자일 때 아닌가. 세상 눈치보는 일 없이 자유로운 상태일 테니 행동력이 따라오는 건 당연.
혼자는 초라하지 않다. 오히려 외로움은 사람을 입체적으로 다듬어준다. 우리의 혼자 있는 시간은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 특별한 의미로 사람을 빛나게 하고 또 사람관을 선명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외로움이야말로 정말이지 새로운 희망이며 새로 나온 삼각김밥이다. 단 정말로 중요한 건 혼자서도 잘 있되 갇히지 말아야 하는 것이겠지만, 혼자일 수 없는 사람이 억지로 혼자이다 보면 망가지는 경우도 숱하게 있으니 이때 역시도 중요한 건 균형김밥이다. p123
아무래도 '짬밥' 좀 되는 기성작가다 보니 읽을 만한 건 분명하다. 책의 완성도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좋아하는 책의 스타일에 따라 이 책의 호불호가 다소 갈릴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엔 말하고자 하는 것을 간단하고 쉽게 풀어써야 좋은 글이라 생각하고 그런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유시민 작가나 이석원 작가의 글이 그렇다. 그러나 이 책은 쉽게 말할 수 있는 것도 묘사, 비유 등으로 다소 꼬아놓고 돌려 말해서 내용 전달이 잘 되지 않았다. 이게 무슨 말이지, 하며 다시 읽기를 거듭했다. 내 이해력이 달린 것인지 한 번 읽고는 대체로 이해되지 않았다. 전문 서적도 아닌 에세이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글이 전환되는 지점도 너무 갑작스러워 위아래 글이 잘 연결되지 않았다. 한창 위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는데 아래에선 갑자기 다른 내용을 언급하니 이질감이 생겼다. 몰입이 깨졌다. 결을 같이 하는 내용이었다면 금세 몰입이 돌아왔겠지만, 내 기준에선 영 관련 없는 내용도 많았다. 그래서 다시 내용 이해를 하려면 문단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도 이해되지 않았던 적이 다반사.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요즘엔 사랑인지 아닌지 모르는 채 애매한 감정으로 만나고 있는 연인들이 많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 색이 짙지도 않고 감정이 치열하지도 않은 채로 사랑하는 상태를 그들은 사랑이라 한다. 이 또한 시대의 색깔일까. 차오르는 육체의 감정을 해소시킬 대상을 만나는 것이거나, "사귀는 사람 있어요?" 같은 세상의 잦은 질문들에 대답하기 쉬운 상태에 놓이기를 바라는 것일까. 허전한 공백 상태를 못 견디는 세대의 특성이 시대의 물살을 맹물 같은 사랑으로나마 건너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 관계를 통해 위로는 받을 수 있을지라도 요긴하게 성장을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사랑에 온전히 몸을 박고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 사랑에 몸을 들여놓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줄기가 없으니 사랑의 양분이 가닿을 곳이 없는 형국이다. p233
그 원인을 '꼬아 놓기', '돌려 말하기'라고 꼽았는데, 그 밖에도 문장의 길이가 과도하게 길어 오는 난해함이 있었다. 이병률 작가는 유독 한 문장을 길게 쓰는 습관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쉽게 읽힐 만한 어휘를 사용했다면 문제 없었겠지만, 그 긴 문장 안에서도 수차례 묘사하거나 돌려 말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니 첫 시작 문구와 끝 문구가 연결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 내 기준에서 봤을 땐 분명 좋은 글은 아니었다.
이 길을 가야 하나, 저 길을 가야 하나. 이 길을 가면 금방 갈 것 같은데 이 길은 도저히 자신이 없다. 저 길을 가면 멀리 돌아서 가는 억울한 기분이 들지만 숙명처럼 그 지도를 따라야 할 때도 있다.
그냥저냥 만나는 사이도 있기 마련인데 일방적으로 한 사람만 감정의 비중이 과하다면 그 관계는 재미없는 쪽으로 흐른다. 그 사람은 꼼짝도 않는데 나만 열을 내고 화를 내면 내가 괴물이 된다. 그 사람은 나에게 1도 관심이 없는데 내가 그 사람을 1000을 사랑할 때도 나는 괴물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좀 참으라며 그 반대 방향으로 나를 차분히 잡아끌어내는 일은 쉽겠는가. p261-262
그런데도 이병률 작가의 책이 매번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나는 모를 어떤 매력이 존재한다는 것일 테다. 그러니 나의 감상만으로 책 구매 여부를 결정 짓지 말길 바란다. 분명 당신은 다른 감상을 받을 수 있을 거다. 그게 좋은 쪽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개인의 기호에 따라 크게 갈릴 것이라 본다. 그런데도 내게 이 책이 읽을 만한지 묻는다면 나는 'no'라고 과감히 말할 것이다. 나는 꼬아 말하는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주 단순하게, 그저 말하듯 쓰는 작가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스타일을 보면 어떤 글인지 바로 와닿을 것이다. 나의 감상은 하나의 것으로 정확히 어떨지는 본인이 직접 사거나 빌려서 읽어보기 바란다.
나에겐, 둔한 사람만 아니라면 교류하고 싶은 의사가 충분히 있다. 사실 우리는 잘 만나다가도 어느 순간 둔해진 관계라서 안 만나게 되고, 또 멀어지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아예 둔한 사람 자체를 멀리하게도 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안 섬세한 사람들'에게 있어 섬세한 사람이란 '그거 참 머리 아픈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만 같다. p302
참고로 요즘 트렌드이기도 한데, 이 작품도 독립서점 에디션이 따로 판매되고 있다. 요즘 기성작가들이 독립서점을 응원하고 판매 독려하는 차원에서 독립서점 에디션을 따로 만들어 독립서점에서만 살 수 있게 하고 있다. 나는 이 방향이 무척 마음에 든다. 왜냐, 나 역시 독립서점 창업을 꿈꾸고 있고, 이것이 하나의 독립서점 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작은 움직임이지만 큰 반향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나는 그냥 온라인 서점에서 샀다는 거. 부끄럽지만 온라인 서점이 주는 편리함 역시 무시 못 할 것 같다. 아무튼 참고하시라고 알려 드린다.
2019.09.24.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