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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Sep 22. 2019

손수현 에세이
<지극히 사적인 하루> 리뷰

책리뷰



손수현 작가의 책은 전작 <누구에게나 그런 날>로 먼저 만나봤다. 여러 글에서도 수차례 언급한 바 있듯 내가 인상 깊게 본 에세이 중 하나다. 사소한 일상을 포착해내는 능력이 가히 인상적이다. 글의 따듯함이 물씬 흘러나온다. 작가는 카피라이터인데, 그 직업 특유의 공감 가는 문구가 전작에서도 빛을 발했다. 전작은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그녀의 작품을 워낙 인상 깊게 봐서 두 번째 작품을 찾아보게 됐다. 두 번째 작품은 전작과 다른 색깔의 책이었다.     





자존감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게 있더라.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떤 사람처럼 될 수 없겠지만

그 어떤 사람도

결코, 나처럼 될 수 없을 거라는

단단하고도 튼튼한 마음. 

    

그래, 기죽지 마.

네가 될 수 있는 건

오직 너뿐이니까.     





손수현 작가의 최근 작 <지극히 사적인 하루>는 일상에서 포착해낸 감정을 짧은 글로 옮겨적은 글귀집이자 시집이다. 일상적인 이야기도 많아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녀는 카피라이터답게 이 책을 통해 공감 가는 문구를 많이 쏟아냈다. 그 몇몇은 마음속에 담았다. 다른 글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듯 이런 글귀집은 한두 편의 글만 얻어도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여러 글을 얻었으니 인상 깊게 읽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인상 깊게 읽은 글은 이 리뷰에서도 소개하고 있다.     





센스 있는 사람          



남들보다

한 박자 빨리 알아차리거나

한 박자 빨리 움직이는 사람을 보며     


타고나길 그런가 보다, 라거나

사회 생활하며 터특했구나, 라고

쉽게 생각해버리고 싶지 않다.   

  

상대방을 한 번 더 생각하는

그 쉽지 않은 노력을,

나보다 다른 이를 앞에 두는

그 흔치 않은 배려를

가벼이 여기고 싶지 않다.          






초심         


 

꽤 오랜 기간 마음고생을 하고서야

비로소 밥벌이를 하게 되었을 때


매번 내 넋두리를 들어 준 선배는

생애 첫 명함지갑을 선물해주었다.

그 안엔 손으로 쓴 편지도 함께 있었다.     


카피라이터가 된 것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 걸 축하한다고.   

  

그 편지는 어느덧 4년 차가 된 내게

카피라이터가 절실히 되고 싶던 시절을

금세 떠올리게 만드는 부적 같은 것이 되었다.    

 

오늘도 내 자리,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어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 흔히 범하는 오류가 있어 보이려고 무리한 표현을 남발하는 것이다. 공감 가지 않게 과한 수사 표현을 넣는다거나 느낀 것 이상의 감정을 허구적으로 표현해내기도 한다. 그런 글은 어찌 됐거나 실제와 괴리를 보여 그것에 담긴 감정이나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독자 입장에선 딱 보면 안다. 그래서 글을 쓸 때 너무 힘주지 않는 것이 꼭 필요한 자세다. 그리고 그런 글을 보통 잘 썼다고 우린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이 책은 굉장히 쉽게 쉽게 쓰면서,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원활히 전했다고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별것 아닌 글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그렇게 쉽게 쓴 글이 진정 좋은 글이다.     





꾸준한 애정         



출근은 잘했느냐고

점심은 뭘 먹었느냐고

저녁엔 뭘 할 거냐고     


서로에게 당연해진 일상을

일관되게 지켜가는 것만큼

커다란 애정도 없다.     


어쩌다 표현하는 화려한 애정보다

몇 배는 더 어려운 꾸준한 애정.        


  




싫증          



어른이 되고부터 줄곧 생각했다.     


지금껏 좋아해 온 것들을

같은 농도만큼

꾸준히 좋아할 수 있는 것도     


지금껏 즐겨온 것들을

같은 빈도만큼

꾸준히 해나갈 수 있는 것도     


실은 엄청난 재능일지도 모른다고.    


 



내가 다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요즘의 짧은 글이 담긴 책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 타령'에 그친 경우가 많다. 들었을 때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는 것에 그친다. 그것을 좋아하고 위로를 받는 사람이 있어 그런 책이 꾸준히 사랑을 받는 것이겠지만, 나로선 그저 위선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위로의 마음이 담겨 있을까 의심이 든다. 그저 책을 팔기 위한 장사치의 검은 속내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물론 전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런 책을 극도로 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사랑 타령만 하지 않고, 인간관계, 사소한 일상, 솔직한 감정에 대해서도 글을 쓰고 있어 좀 더 마음이 가고,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어른에게 필요한 용기      


    

내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 것.     


아무래도 싫은 사람을

좋아해보려 애쓰지 않는 것.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

내가 미워지는 일은 하지 않는 것.     


그땐 몰랐다.

어떤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게 될 줄은.     





그렇다 해도 단순 비교하자면, 나는 전작 <누구에게나 그런 날>에 좀 더 마음이 간다. 긴 글을 썼을 때 좀 더 그 매력을 꽃피우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책이 크게 뒤떨어지는 건 아니고, 개인적 선호도에 따라 갈릴 것 같다. 어찌 됐든 작가는 글을 잘 쓴다. 잘 쓴 글을 읽는 건 언제나 즐겁다. 짧은 글을 좋아한다면 이 책부터, 긴 에세이 형식을 좋아한다면 전작부터 읽어보길 권한다. 두 책 다 좋은 책임에는 확실하다.




2019.09.22.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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