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영화감독 김종관의 신작 에세이 <나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가 지난 9월 4일 출간됐다. 김종관 감독은 영화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등을 연출한 감독이다. 그는 한국 독립 예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 그의 작품을 영화가 아닌 에세이로 만나볼 수 있게 됐는데, 이 책은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 아니고, 2012년 출간된 <사라지고 있습니까> 개정증보판이다. 그래도 그의 열렬한 팬이 아니라면 이번에 그의 책을 처음 알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나 또한 그렇다.
이 책은 중후반까지 10년 전의 이야기, 후반부부턴 10년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 5부부터 증보된 분량이라 할 수 있다. 책 말미엔 <밤을 걷다>란 시나리오도 수록돼 있다. 한 편당 분량은 그리 많지 않고, 두 페이지 이내로 끝나는 편도 많다. 에세이라기보단 작가의 단편적인 생각을 담은 것에 가깝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도 상당 부분 담겨 있다.
작가의 글에서 다소 불친절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하나의 에피소드, 생각을 이야기하려면 전후 사정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독자를 이해시켰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생략돼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생각만 나열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독자 입장에선 작가의 감정을 공감하기 어렵고, 정확히 어떤 상황에 놓였던 건지 알지 못한다. 독자와의 소통 면에서 다소 부족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전후 사정을 세세하게 그려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완벽하게 좋은 순간, 그것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나 자신에게 유익한 것인지.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억은 스러져가는 환영을 잃어버리지 않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p136
이 책은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에 따르는 일반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했다. 그 직업에 어떤 명과 암이 있고, 주위엔 어떤 사람이 있고, 또 어떤 배우와 작업했는지 등을 밝혔다면 더 흥미롭게 읽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내용은 거의 전무했고, 단순히 단편적인 생각을 언급한 것에 그쳤다. 분명 그런 쪽으로도 할 이야기는 많았을 텐데 말이다. 그것은 독자와의 소통 능력에 관한 부분이다. 독자가 무엇에 흥미를 가질지 예측하고 그것을 북돋아 주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저 자기 글만 써 내려간 것이다. 대체로 그런 글은 흥미를 유발시키기 어렵다. 자기 글을 쓰고 싶다 하더라도 일정 부분 대중의 호기심을 해소시켜 줬어야 한다. 그런 소통 능력이 대체로 부족했다.
길 위에 시간들이 놓여 있다.
길을 가면서 자주 뒤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목적지도 모른 채 달려가는 것도 의미는 없다.
오늘은 어제가 되고 내일은 오늘을 지나 어제가 될 것이다.
오늘은 오늘일 뿐이지만, 수많은 어제가 나의 오늘을 움직인다.
그러니까 오늘을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거나,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후회하며 엉망진창으로 살든, 고민하며 살든, 우리는 어제가 만들어낸 길들을 밟고 오늘이라는 길 위를 걷는다는 걸 생각한다. p175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감독의 목소리가 담긴 책이라 마음이 갔다.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에 담으려고 애썼다. 그 내용의 면면이 어떻든 나는 이 책을 나의 <방구석서점> 책장에 꽂을 것이다. 충분히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이다. 때론 그 내용이 다소 아쉬움을 남겨도 그 작가가 좋아 책을 사고 아끼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이 그런 책이 될 것 같다. 중간 중간 예쁜 사진이 삽입돼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문득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다. 남자는 먼 여행에서 돌아와 고향을 찾았지만 모든 것이 나이 들고, 사라지고, 변했다. 오직 자신만이 그대로다. 점점 낯설어진 고향에서 유령이 된 듯 배회하다 사실은 고향이 변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떠났던 날이 어제였던 듯 고향은 그대로였고 오로지 자신만이 백발 성성한 노인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잠시 상상 속 그처럼 기쁨과 고통의 기억들이 마치 어제 그 자리에 있던 것 같았는데, 나만 변했다고 느낀다. 십여 년 사이 나는 어느새 청춘을 슬쩍 비켜난 사람이 되었다. p210-211
그럼에도 아쉬운 건, 글이 찝찝하게 끝난다는 것이다. 흥미를 유발시켜 긴장감을 막 증폭시켜 나가다가 갑자기 끝이 나버린다. 김이 샌다는 표현이 딱 맞다. 분명 뒷얘기가 남았을 텐데, 왜 이대로 끝나지, 란 생각이 매 글마다 든다. 그럴 때마다 진한 찝찝함이 남는다. 쓰다가 급작스럽게 중단시켜 버린 듯한 모양새다. 모르겠다. 내가 감히 글에 대해 평가를 내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글 자체만 놓고 봤을 때 완결성이 다소 미흡하다. 감독을 좋아하는 마음이 없다면 재밌게 읽힐지 미지수다. 반대로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면 무난하게 읽힐 것이다. 다행히 나는 후자였다.
2019.09.17.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