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박정민이란 배우를 처음 알게 된 건 영화 <동주>에서였다. 당시 송몽규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그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오히려 강하늘보다 그가 더욱 시선이 갈 정도였다.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나는 이 배우가 머지않아 대한민국을 주름잡는 연기파 배우로 거듭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아직 그 정도 위치에 올라서진 못했지만, 그가 현재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영화 <변산>에서도 그를 만나봤다. 래퍼, 사투리 연기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이 인상 깊었다. 그의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였다. 진지한 연기면 진지한 연기, 우스꽝스러운 연기면 우스꽝스러운 연기,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앞으로 그가 어떤 작품에서 어떤 연기를 선보일지 무척 기대되는 바다. 참고로 그는 <타짜: 원 아이드 잭>에도 출연해 내일(11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가 될 성부른 나무라는 것은 글을 쓴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게 있다. 그런 사람 치고 내공이 부실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런 이는 보통 생각이 깊고 묵직하다. 하물며 연예인이라고 다르랴. 그들의 예술성은 글을 쓴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증명됐다. 하정우가 그렇고, 박정민이 그렇다. 자신의 연기 철학이나 삶의 자세를 끊임없이 되뇌고 확인하는 과정이 그들의 내공을 더욱 두텁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본다. 글쓰기란 원래 그렇다.
이 책(에세이 베스트셀러 <쓸 만한 인간>)은 배우 박정민이 '언희'란 필명으로 2013년부터 잡지 [topclass]에 연재한 글을 모아 2016년 출간한 책으로, 내가 읽은 책은 그것을 개정증보하여 최근 재출간한 작품이다. 다달이 1편씩 써내려가 이 책에선 약 50개 정도의 글을 만나볼 수 있고, 그의 성장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 배우 박정민은 소위 말하는 '엄친아'인데 명문대를 다녔을 만큼 학업 성적도 우수했다. 공부도 잘하는 그는 심지어 글도 잘 쓴다. 이 책을 보면 그가 평범한 글 실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인데, 그 스스로는 본인을 굉장히 평범하다고 여기는 것이 또 아이러니다. 나는 그가 부러운데, 그는 자기보다 잘난 누군가가 부러운가 보다. 역시 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찌질하다의 반대말이 뭔가. 특별하다? 잘나간다? 바지통 6반으로 줄이고 머리에 젤 바르는 상남자 스타일? 아니, 찌질하다의 반대말은,
찌질했었다.
라고 할 수 있겠다.
모두, 행복하시라. p69
나는 자신의 색깔이 드러난 글을 좋아한다. 글만 봐도 '아, 이건 누구의 작품이네' 하고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는 글. 박정민의 글이 그렇다. 해학적인 요소가 다분히 담겨 있다. 평범히 쓸 수 있는 글도 한두 번 꼬아서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한다. 웃음을 유도한 적도 많은 것 같은데, 솔직히 글을 보고 웃음이 났던 적은 없다. 그래도 그 표현이 무리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다 적절했고, 작가의 색깔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의 고유한 스타일로 작가의 글은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또, 어떤 글을 남기게 될까. 무척 기대가 된다. 그러나 이 책(에세이 베스트셀러 <쓸 만한 인간>)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고 넌지시 암시하긴 했는데, 내가 봤을 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두 번째 책이 나오긴 나올 것 같다.
무엇보다 작가의 장점은 독자와의 소통이다. 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독자와 소통해 나간다. 마치 옆에서 말을 전하는 듯한 느낌. 그런 글은 대체로 가독성이 좋다. 이 책(에세이 베스트셀러 <쓸 만한 인간>)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리드에 따라 나의 시선도 부드럽게 옮겨져 갔다. 보통 글 깨나 쓴다는 사람이 간과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감정에 취해 독자를 염두해 두지 않는 것. 속사포로 글을 쏟아내지만 가독성은 떨어지는 것. 그것이 아무리 표현력과 완성도가 좋아도 독자를 염두해 두지 않는 글은 그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박정민의 글은 굉장히 매력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배우 박정민은 스스로 평범하다고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내 눈엔 특별해 보이기만 하는데) 헌데 나는 그런 그의 평범함이 좋다. (일반 사람보단 잘생기긴 했는데) 솔직히 숱한 배우들보단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긴 하다. 외적으론 특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그가 영화에서 비춰질 땐 더욱 현실감 있는 분위기를 준다. 그 같은 평범한 사람이 드라마나 영화에 더욱 출연해야 한다. 그래서 영화와 현실의 괴리를 더욱 줄여야 한다. 그래야 더 작품성 있는 영화가 나온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것이 류준열, 박정민 등의 배우가 반가운 이유다.
사실 빨리 서른 살이 되어보고도 싶었다. 서른쯤이면 뭔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열심히 산다고도 살았다. 소신도 있고, 신념도 있고, 그것들을 크게 배신한 적도 없었다. 유혹이 있을 때마다 넘어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도 같다. 그런 고집들이 나 자신을 점점 땅 속으로 꺼지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지만, 아직까지 그것들을 굽힐 의사는 없다. 그렇게 서른이 되었고, 소신과 신념만 남은 다 큰 어른아이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다. p198-199
배우 박정민은 배우 같은데 배우 같지 않다. 영화 관련된 얘기만 제하고 보면 그의 글(에세이 베스트셀러 <쓸 만한 인간>)은 평범한 회사원의 것이라도 해도 믿겠다. 그에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배우병(?) 증세가 안 보인다. 허세 가득하고, 자기 우월감에 빠져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의 그런 점이 좋다. 평범한 세계에 머물며 직업적인 배우 역할만 수행하는 것. 나는 그것을 균형감각이라고 생각하는데, 누구나 필요한 것이지만 특히나 사람들 앞에 서는 공인이나 권력을 가진 기득권에게는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더 수월히 이룰 수 있다. 요즘엔 일반 대중을 사로잡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되지 못한다. 특히 상업적인 결과는 결코 얻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배우 박정민은 지금에서 변심만 하지 않는다면 대중의 마음을 휘어잡을 만한 잠재력이 있다. 당신도 어떤 것에 성과를 얻고 싶다면 일반 대중을 상대로 행동하라.
2019.09.10.
작가 정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