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감성극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정용하 Oct 11. 2019

영화 <조커> 후기
디테일의 끝을 보여주다

영화리뷰



영화 <조커> 열풍이다. 참고로 나는 관련 영화를 한 편도 본 적이 없다. 이 영화만 보고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적었으며, 그 과정에서 나의 무지가 드러날 수 있다. 그 점 깊이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사실 이 영화가 이토록 인기를 끌지 몰랐다. 개봉 전부터 기대보단 우려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커 역을 새로 맡은 호아킨 피닉스가 그 배역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는 훌륭히 소화해냈고 여러 찬사를 이끌어냈다. 직접 영화를 보니 정말 연기가 미쳤다.     





나는 충분히 이 영화가 흥행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엄청난 대중성을 띤 영화는 아니지만 작품성이 그것을 압도한다. 영화 내내 긴박감을 유지해서 그런지 잠시도 눈을 떼기 어렵다. 영화가 만들어내는 이야깃거리가 풍부할 것이다. 이미 그 해석을 두고 많은 이야기가 쏟아진 것으로 안다. 또, 과연 이 작품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지도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이다. 나 역시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볼지 많은 고민을 거쳤다. 과연 감독은 영화 <조커>를 통해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려 했을까. 이 리뷰를 통해 나름대로 추측하는 과정을 거쳐보자.     





영화 <조커>는 사회 최하위 계층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그들이 어떻게 분노를 쌓아가며, 어느 지점에서 폭발하는지를 그렸다. 이것을 보면 극대화되긴 했지만 사회 혁명이 어느 지점에서 발생하는지 추측할 수 있다. 현실에서 전혀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개연성 있으며, 사회는 오늘도 분노를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정치권과 기득권은 민중의 삶에 무관심해지고, 점점 양극화는 심해지며 개인주의는 개인을 더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내가 이 사회에서 느끼는 감정은 점점 더 소외, 고독, 차별과 같은 것들이고, 그것은 점점 더 분노를 키운다. 그것을 해결해줘야 하는 사회 복지 서비스도 점점 더 서면주의화 돼가고, 재정의 압박에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 최하위 계층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그런 현실이 꼭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주인공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은 삐에로 분장을 하고 사람들 앞에 웃음을 주는 광대다. 코미디언 꿈을 꾸었으나 이루지 못하고 흘러 흘러 여기까지 오게 됐다. 그러나 그 삶도 쉽지 않았다. 대중은 그를 무시하기 십상이며 때때로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광대끼리의 연대도 약했으며 서로 시기질투했다. 이런 상황 속에 아서는 점점 더 분노를 키워 가는데, 우연히 동료에게 권총 한 자루를 넘겨 받는다. 분노를 참을 수 없을 때 사용하라는 동료의 말에 지니고 다니다가 결국, 금융 직원 셋을 쏴서 죽여 버린다.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무서울 게 없어진다. 사회도 그 일로 쌓였던 분노가 폭발해 곳곳에서 폭동 사태가 일어난다. 그 일을 보고 아서는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느낌을 받는다. 과연 이 사태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이 영화를 보고 찝찝하다는 주위 평도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고, 마음만 무거워진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보고 나니까 내가 사회 부적응자가 된 것처럼 분노가 일더라. 또 무서워지더라. 주변에 이러한 싸이코패스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또 얼마나 더 많아질까. 그것을 생각하면 살아가는 것이 정말 무서워진다.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어느 날 살해당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것에는 이유도 없다. 그냥 한 정신병자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살인했다는 것밖에. 현 사회구조상 그것이 늘 수밖에 없는 구조라 더더욱 두렵기만 하다. 아무튼 그러해도 나는 재밌게 봤다. 꼭 볼 만한 작품성과 재미를 지녔다. 조금은 찝찝해도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가 있습니다. 해석 포함.     





영화가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해석이 분분한 것 같다. 아서는 망상 장애를 앓고 있어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영화 속 아서가 한 행동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나는 영화 전체가 아서의 상상이라고 생각한다. 흡사 영화 <아이덴티티>가 떠오른다.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장면이 마지막에 나왔다. (마지막 장면만 진짜라고 나는 보고 있다.) 정신병원에 갇힌 아서가 정신과의사(또는 심리상담사)와 이야기하면서 갑자기 미소 짓더니 '재밌는 조크가 떠올랐다'며 웃는 장면. 그것이 이 모든 내용이 그의 머릿속에 이루어진 것이란 걸 알려주고 있다. 그렇다면 아서 엄마도 가짜고, 아서가 광대란 것도 가짜고, 아서가 살인한 것도 가짜란 말인가. 적어도 내 전제 하에서는 그렇다. 정확히는 밝혀진 게 없으니 알 수 없다. 가짜일 수도, 일부분 진짜일 수도 있다.     





영화를 보고 머리 아픈 이유는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좀처럼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영화가 대중성을 갖지 못하는 것이 대체로 그런 이유다. 이 영화도 메시지의 명확성이 다소 부족했는데, 그런 것과 상관없이 영화는 원래 해석하기 나름이다. 나는 사회(또는 기득권)를 향해 던지는 경고로 읽었다. 소외받는 사람이 늘수록, 사회 계층이 신분화 되어 갈수록 민중의 분노는 높아지며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신병자 아서의 행동에 민중이 들고 일어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비단 정신병자의 일로 국한시킬 수 없다는 것. 민중 전체가 분노하고 있단 것이다. 어떤 특정 사건(예를 들어 아서의 살인)은 촉매제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아서는 히어로다. 현실적 히어로. 민중의 분노를 받아들여 적극적인 행동으로 옮겼다. 그것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 속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영웅은 일반 사람이 하지 못한 일을 해낸다. 일반 사람에게 없는 결단력과 실행력을 지녔다. 물론 결과도 가져온다. 그런 점에서 조커는 영화 속에서 히어로였다. 이 영화는 또 다른 히어로물이었다. 나는 그런 새로운 접근이 반가웠다.     





나는 영화가 시작하기 전까지도 이 배우가 그 배우인지 몰랐다. 영화 <HER>에서 'AI 사만다'와 사랑을 나눈 테오도르. 내 인생 영화에 해당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영화 <조커>의 아서였다니. 그것을 일찍 알았다면 더 빨리 봤을 것이다. 호아킨 피닉스란 이름이 아직 생소한 탓이다. 이번을 계기로 그 이름을 절대 안 잊어버릴 것이다. 이 영화에서의 연기는 말하면 입 아프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심도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는지 경이로울 정도다. 워낙 연기가 뛰어나 별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 없는데도 최고의 몰입감을 만들어냈다. 한 번쯤은 꼭 보시길.     





또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게, 바로 사운드다. 영화는 끊임없이 긴박한 배경음악을 깐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처럼 간당간당하다. 한데 그 장면을 따져보면 별거 없다. 그냥 버스를 타고 가는 장면인데도, 그냥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인데도 영화의 사운드는 일촉즉발이다. 나는 그 이유를 아서의 심리상태를 반영한 것이라고 봤다. 정확히는 아서의 망상 속의 심리 상태다. 그만큼 불안하고 변화가 크다는 걸 의미한다. 사운드로 심리 상태를 대변한 것을 보니 영화 <버드맨>이 떠올랐다. 그 촬영기법도 영화 <조커>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영화 <조커>의 스토리는 실현 가능하지만 동시에 실현 불가능하다. 그런 정신이상자가 현실세계에 충분히 나타날 수 있지만 그것에 동조하는 폭동까지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중요한 건, 그렇게 사회가 소외받는 사람이 많아질 정도로 개인주의화 또는 양극화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풀 수 없다면 개인이 할 수 있는 정도의 따듯함을 주변에 베푸는 것도 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도 그것이다.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편의와 호의를 전하는 것. 그런 개인들이 는다면 사회는 그렇게 어두운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충분히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2019.10.11.

작가 정용하

# 사진 출처 - 네이버 스틸이미지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후기, 가볍게 소비하기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