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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Dec 03. 2019

21. 직업, 일 얘기하면 퇴출입니다

정용하 에세이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내 공간에서만큼은 '인간들(훗날 내 독립서점에 찾아주는 애정 손님들의 별칭)'이 그럴듯한 명함이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 존재했으면 하는 것. 당신이 얼마나 잘 나가고 돈 잘 벌고 인기 많은지 경쟁하듯 앞다투어 얘기하는 것이 아닌, 그저 소소한 살아가는 얘기를 나눴으면 하는 것. 저 사람이 잘 나가고 멋있어서 가까이 하려는 게 아닌, 그저 누구에게나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것. 나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내 공간에서는 자신의 직업을 언급하면 퇴출이다. 한 번에 퇴출시키면 너무 야박하니까, 특별히 삼진 아웃 제도다. 일 얘기를 해도 아웃이다. 일과 삶을 나눴을 때 나의 독립서점은 철저히 삶의 영역이다. 일은 직장에서, 삶은 우리 독립서점에서 풀자. 개인적 꿈을 얘기하는 건 열렬히 환영이다.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에겐 밤새도록 시간을 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 센스 있게, 다른 '인간들' 눈치 봐가면서 말하자. 적절한 눈치야말로 현대사회의 미덕이다.     


그냥 책 이야기하자. 그러면서 삶 이야기하자. 어떻게 삶 이야기하면서 일 얘기를 뺄 수 있겠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그것도 공감한다. 맞다. 삶과 일을 무 자르듯 분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 얘기는 다른 데 가서도 많이 하지 않은가. 직장에서도, 친구 만나서도 쉼 없이 꺼내놨을 텐데 꼭 여기 와서까지 털어놔야 하겠는가. 그러나 삶 이야기는 이제 어디 가서도 잘 하지 못한다. 할 데가 점점 없어진다. 그런 얘기를 하자는 건데 꼭 일 얘기 꺼내야겠는가.     


삶 이야기? 그게 뭔데, 하고 또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그것도 마찬가지로 명확하게 구분 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람 이야기'라는 것. 그것이 사람간의 이야기일 수 있고, 개인의 감정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다. 사랑, 우정. 그 명확한 주제가 있지 않은가. 외로움, 슬픔, 기쁨, 또한 명확하다. 그것에 관해 얼마나 할 이야기가 많겠는가. 한 번 털어놓기 시작하면 밤새도 모자라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밤새는 건 좋지만 타인의 눈치 봐가면서 얘기하자. 내가 조금 얘기했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질문할 줄 아는 인간관계의 지혜를 펼치자.    

 

그냥 삶 이야기하며 잘 들어주는 분위기. 그것이 우리 독립서점의 분위기다. '너 요즘 걔랑 잘 돼가?', '걔랑 화해했어?'라고 편히 물어봐줄 수 있는 관계. '인간들'이 외로움에 떨면 말없이 맥주 한 잔 건넬 수 있는 주인장의 센스. 그런 관계 속에 일 년, 이 년, 아무렇지도 않게 시간을 보내는 것. 그렇게 자연스레 독립서점이 우리 삶 속에 자리하게 되는 것. 그것이 내가 만들고 싶은 독립서점의 모습이다. 어떤가. 특색이 느껴지는가. 한 번 와 보고 싶은가.     


그냥 출퇴근길에 가볍게 들릴 수 있는 곳, 한 십 분이라도 좋으니 잠시 안부라도 주고받을 수 있는 곳, 오늘은 말하고 싶지 않은데 따듯한 공간에서 잠시 있다 가고 싶을 때 들릴 수 있는 곳, 아주 한적한 동네에 언제나 한결같이 존재하는 곳, 친한 친구 사이처럼 자기도 모르게 가까워진 곳, 그런 곳이 됐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나의 바람이자, 정체성이자, 가치관이다.     


인간적인 감성을 솔직하게 내보일 수 있는 곳.







2019.12.03.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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