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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정용하 Dec 17. 2019

22. 지금은 안 돼

정용하 에세이



벌써 12월이다. 아니, 12월도 중순을 넘어가고 있다. 올 한 해가 별로 남지 않았다. 올해가 끝나간다는 것이, 벌써 12월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되돌아보면 한 게 많은 것 같긴 한데, 한 달 넘어가는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이러다 금방 나이를 먹을 것 같다. 앞으로는 더 빨라지겠지. 생각해보니 대학 졸업한 지도 이 년이 다 돼간다. 소름.     


결국 올해도 아무도 못 만났다. 몇 번의 스침은 있었지만, 강렬한 접촉은 만들지 못했다. 연인 만드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잠시 꼬여버린 팔자를 탓해 본다. 인연은 돌고 돌아 만난다고, 몇 년째 주문을 외우고 있는지, 이제 지겨울 정도다. 인연이 정말 있기나 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이 정도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점점 혼자 지내는 것이 편해지는 것은 또 다른 심각한 문제다. 이러다 영영 혼자만의 삶을 살게 되는 건 아닌지. 독신주의는 아닌데.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지금은 누군가를 만날 여력이 없다는 것. 현재의 나는 연인보다 생계가 더욱 중요하다. 확실한 성과를 내야 하는 시기에 서 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내 미래는 없다. 막말로 연인에게 빼앗길 시간이 없다. 모든 시간을 오로지 내 미래를 위해서만 써야 한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냐 싶겠지만 현재 내 마음은 간절하다. 지금 승부를 보지 못하면 사는 것이 힘들겠다는 판단이 섰다. 여기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봐야 한다.     


나에게 연애는 책임이다. 사귀기로 했으면 그 사람을 일 순위로 올려놓아야 한다. 시간을 꼭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그런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 실제 마음이 어떻든 사귀기로 했으면 기본적으로 그래야 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럴 여력이 되지 못한다. 상대를 일 순위로 두지 못한다. 시간을 마련하지 못한다. 그런데 무슨 연애겠는가. 만날 사람이 없기도 하지만, 있다 해도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하지 못할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그에 대한 이성적 판단이 나의 마음을 제어할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이 젊은 시절을 낭비한 것을 훗날 그리워하게 될지라 해도 지금의 사정은 다른 선택지가 없다.     


그런데도 사귀고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내 편을 만들고 싶다. 사랑의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 함께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 또한 너무 크다. 하지만 그건 내 이기적인 마음이다. 상대방을 사랑할 여력은 되지 않으면서 받고만 싶은 거니까. 책임을 다할 준비도 돼 있지 않으면서 내 욕심만 챙기겠다는 거니까. 그런 사랑은 시작하면 안 된다. 최선을 다할 사랑만 시작해야 한다. 마음이 꼭 정답은 아니다.     


2019년 연말, 결국 아무 인연도 만나지 못했다. 작년, 재작년의 이때와 비슷한 상황을 맞이했다. 그래도 누군가는 만나겠지, 하는 희망이 점차 옅어지고 있다. 누군가에겐 쉬운 만남이, 누군가에겐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많이 만나본 사람이 더 매력 있다. 많이 만나 봐야 스스로의 매력을 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역행한 지 꽤 됐다. 점점 더 매력을 잃고 있다. 상대방과의 '조화'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내 고집만 세지고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이 이상의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 멀어져가는 나를 빨리 붙잡아 돌려 세워야 하는데, 지금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나는 계속 달려야 한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야 한다. 그리 해서 어느 정도 '살 길'을 마련해야 한다. 남들이 보기엔 세상 편한 길만 걷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이렇게 내 속은 날마다 이성과 마음이 치고 박고 싸우고, 잡생각으로 볶음밥을 해먹는다. 이러니 허구한 날 신경성 위장병에 시달리지. 비구한 내 팔자가 안쓰럽다.     




2019.12.17.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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