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세이집 7편 '영원한 내 편'

인간적인 감성, 하루의 기록

by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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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집 7편 '영원한 내 편'


영원한 내 편


사람은 누구나 든든한 내 편이 있을 때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진 듯한 안정감을 느낀다. 또한 그 내 편을 향한 갈증을 항상 안고 살아간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연인을 사귄다든지, 부모님께 의지한다든지, 일에 집중한다든지, 몇 가지 방법들이 있다. 나 또한 심리적 안정을 위해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요즘 따라 내 편은 없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무게감 있게 자리 잡았다. 내 편이라는 건 일단 내가 전폭적으로 신뢰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로서의 연식이 기본적으로 몇 해를 넘겨야 하는데,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깨질지 모르는 것이다. 줬던 마음을 상처로 거둬들이는 것은 완전히 나의 몫이기에 관계를 맺기 전에 먼저 주저거림이 생긴다. 떠나간 인연의 빈자리와 상처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 낙인으로 남게 되기 때문. 여태껏 살면서 배운 건 영원한 내 편은 없으니 함부로 마음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내 편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사람 자체가 없었던 듯하다. 내 편이라 믿었던 적은 많아도. 오히려 그런 경험 자체가 없기 때문에 내 편은 없다, 라는 확신이 선 것일 수 있다. 내게는 어렸을 때부터 일관적으로 가져온 관계의 방식이 있다. 그것은 내가 전혀 의도치 않았던 것이다. 나는 받기보다 주기에 익숙했다는 것. 친구를 만나고 싶으면 항상 내가 먼저, 여자를 사귀고 싶어도 항상 내가 먼저. 내 이름을 정겹게 불러주면서 나를 불러주는 이는 보기 드물었다. 이것은 아직까지 숙제로 남아 있다. 내 주위엔 망부석처럼 수동적인 사람만 있는 건지, 아니면 나란 사람이 매력이 바닥을 치고 있어 딱히 놀고 싶지 않은 건지. 가만히 있어도 주위의 연락이 줄줄이 잇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기도 부럽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과거의 결론을 자꾸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으로 짓게 되는 것이 문제다.


어쩌면 원래 내 편이라는 건 없을지도 모른다. 내 편이 되어 달라는 몸부림은 있을지라도. 나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내가 누군갈 반복적으로 찾는 이유도, 그 사람이 너무 좋아서라기보다 그 사람은 왠지 내 편이 되어줄 것만 같아서이다. 그러니까 내 편이 되어줄 적절한 사람을 찾는 것이다. 내게 소홀한 연인과 함께 있으면 공허한 이유도 내 편이어야 할 사람이 그렇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자신의 피가 섞인 부모의 사랑이 아니고서야 무조건적 사랑이 존재하진 않는다고 본다. 이런 말을 하면 이해타산적인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대가를 바라고 행동을 한다. 그 대가가 심리적인 안정감인 것. 내가 요즘 연애에 겁을 내는 것도 바로 그것을 깨달아서일 수도 있다. 여자가 내게 잘해주는 것도, 나와 사귀려는 것도,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내가 당신의 안정을 안겨다줄 거라는 그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편이 되어 달라는 그 몸부림을 받아줄 마음의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다.


내가 이 년 전부터 가져온 하나의 습관이 있는데, 그것은 카카오톡의 연락처 인원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카카오톡을 실행시키면 23명의 프로필만 뜬다.(현재 그러하다) 그것도 가족을 제외하면 지인들은 열다섯 명 정도에 불과하다. 내 편이라 확신을 짓긴 어려워도 그에 가까운 사람들을 한눈에 보기 위함이다. 나머지는 전부 ‘숨김’처리를 했다. 확실히 이렇게 해놓고 보니 무엇보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내가 지금 집중해야 할 사람이 한눈에 들어왔다. 때문에 그들에게 ‘뭐해’나 ‘잘 지내’와 같은 연락을 한 번 더 건넬 수 있게 되었다. 내 편이 될 후보군을 선정하고, 제외하는 데 있어서 그 기준은 명확하다. 바로 상대방은 내게 먼저 연락을 할 수 있느냐이다. 한 마디로 나를 필요로 하느냐이다. 나는 인간관계라는 것이 한 사람만 질척댄다고 해서 맺어지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쌍방 소통의 관계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만 연락을 하는 관계는 관계라 할 수도 없고 의미도 없는 것이다.


나는 일종의 관계의 벽을 만든 셈이다. 혹자는 이런 날 보고 너무 폐쇄적이라 일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듯 나도 나를 지키기 위함이다. 관계에 있어서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과 기준을 만든 것이다. 분명 이것이 벽이 되어 이제 사람과 만나는 데 있어서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또는 이것이 나를 오히려 ‘외톨이’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외톨이로 가는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키고 싶은 단 하나가 있다. 그건 바로 나 자신. 내 편을 만들려는 몸부림보단 나를 지키려는 몸부림이 먼저이고 더 큰 것이다.


분명 이것이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겠지. 사람들이 이토록 불안해하는 이유도 혼자라는 느낌 때문일 것. 외롭다는 감정은 여자(남자)친구가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건 인생이란 성난 바다에 홀로 돛단배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 여객선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그럼에도 멀쩡히 살아가고 있는, 최소한 그러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누군가 내 편이 되어줄지도 그리고 내가 누군가의 편이 되는 것도. 항상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무언의 외침을 터트리곤 하지만 사실 자신이 없다. 차라리 이곳이 무인도이고 주위에 서너 사람 정도밖에 없다면 그것을 숙명이라 받아들이고 살겠지만 세상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이 세상을 혼자 살 수 없는 걸 뼈저리게 알면서도 외톨이의 삶을 택했다. 영원한 내 편이 없다, 단정 짓고 혼자 사는 인생을 최대한 즐기려 하고 있다. 분명 그럴 수 없음을 아는데도 나는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다. 그런데 마음속 지하 끝을 내려가 보면 사랑받고 싶은 마음의 지하수가 콸콸 흐르고 있다. 언제 넘칠지 모르게 그 마음은 계속 차고만 있다.


작가 정용하/2016.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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